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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빵집 사장이 될 줄이야.(1)

by Yujin


"어떻게 이런 비건 빵집을 열게 되셨어요?"

요즘 거의 매주 뵙는 한 손님이 묻는다.


선뜻 답하기 어려워 머뭇거리자 덧붙여 하시는 말씀.

"이런 빵집은 비건에 대한 의식이 있어야 하잖아요."


포스 앞에 있던 남편이 대신 웃으며 대답한다.

"의식이, '많이' 있어요."


어떤 사람이 특정 직업을 선택한 까닭과 여정을 말로 다 설명할 수 있을까?

특히 짧은 시간 내에 충분히 설명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하는데,

매장에서 이런 질문을 꽤 받는다.


포장하는 동안 결국 답변드리지 못한 채 손님은 떠나갔고,

앞으로는 어떻게 답할지 생각해보기로 한다.

비건 빵집의 사장이 되는 데 나도 모르는 이유가 있었는지도 반추해볼겸.


혹시 알까?

차분히 글로 옮기다 보면 어쩌다 이 빵집을 열게 되었는지, 나조차 궁금한 그 까닭을 한 문장으로 정리할 수 있을지.





우리 가족의 구성원들은 빵과 과자를 좋아… 아니, 신봉했다.

요즘은 탄수화물을 먹으면 살이 찐다고 걱정하는 사람이 많지만,

하하. 그것들을 충분히 드시면서도 엄마와 아빠는 항상 날씬하고 멋진 모습을 유지하셨다.


손재주와 감각이 뛰어났던 엄마가 구워주신 쿠키와 빵을 먹던 날은 여전히 진한 흥분의 순간으로 기억된다.

그것들은 삶에서 절대 없어서는 안 될 무엇.

밥보다 월등한 기쁨!


고향을 떠나 홀로 지내던 20-30대의 나날은 삼시세끼를 빵과 케이크로 채울 때가 잦았다.

맛있는데다 편리하니까.

새로운 빵집에 가겠다는 계획, 고를 것 많은 진열대 앞에 서는 것만으로도 쉽게 행복해질 수 있었다.


하지만 많은 빵을 맛볼수록 스스로에게 선택을 허용하는 빵의 기준은 점점 높아졌다.

주식으로 빵을 먹다보니,

충분한 영양을 포함하되 뺄 건 빼야 건강을 지키며 즐길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원하는 빵을 구매하기가 점점 더 쉽지 않게 되자, 어느 순간

'차라리 취향껏 만들어 먹는 편이 낫지' 라는 생각에 이르렀고

그 순간부터 소비자가 아닌, 빵의 창조자 모드에 불이 켜졌다.

오븐은 상상하고 반죽한 과정들의 다양한 결과물을 가감없이 눈앞에 내어놓았다.


빵을 사먹기만 하다가 만드는 영역으로 넘어간 결과는?

전보다 훨씬 다채롭게 맛보면서도 빵 자체에 대한 맹목적 의존을 줄일 수 있었다.

재료가 있으니 언제든 만들어 먹을 수 있다는 안도감이 생겼고, 냉동실은 빵으로 든든하게 꽉 찼다.


스스로 빵을 굽기 시작한 지 5개월째 되던 달, 베이킹 공방을 열었고

직접 만든 특별한 잼들을 가지고 간 플리마켓에서 남편을 만나 결혼했다.

그리고 나중에 그와 함께 간 런던 여행에서 비건을 접하게 된다.


한국과 달리 어느 가게에나 준비되어 있었던 비건 옵션, 낯설지만 놀라운 비건 음식들.

완전채식으로 빵을 만든다면 평생 새롭고 건강하게 즐길 수 있겠다고 직감했다.


그로부터 얼마 후.

우리는 생각지 못한 우연한 기회로 광화문에 디저트와 식사를 겸할 수 있는 매장을 열었다.

그곳에서 나는 약 3년간 열심히 비건 메뉴를 연구, 판매하다가

코로나와 함께 몰아닥친 어떤 거대한 힘과 함께 평택에 도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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