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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끼 Mar 26. 2019

자존감, 자신감 그리고 자존심

친구들과 가장 많이 나누는 소재거리 중에 하나는 '자존감, 자신감, 그리고 자존심'에 대한 이야기다. 매번 이 이야기를 할 때마다 처음에는 "잠깐, 그니까 자존심은 뭐였고 자존감은 뭐였지"하면서 인터넷에 검색을 한다. 이렇게 매번 번거로운 수고를 들이면서도, 이 이야기는 주기적으로 할만한 가치가 있다. 인터넷에 찾아보면,


자존감은 자아존중감이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존중하는 마음이다.

자신감은 자기 신뢰감이다. 내가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능력에 대한 신뢰이며 믿음이다.

자존심은 타자 존중감이다. 타인에게 존중받고자 하는 마음이다.


내가 바라는 인간상은, 자아존중감과 자기 신뢰감은 어느 정도 높고, 자존심은 제발 높지 않은 사람이다. 즉, 나는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며, 나의 능력에 대한 믿음도 있지만 타인의 의견과 평가에 쉽게 휘둘리고 싶지 않다. 그러나 항상 그렇듯이, 바랄만한 인간상은 되기가 어렵다. 많은 사람들은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것이 자신이 실력이든, 회사나 학교의 네임벨류든, 외모든, 임금이든, 뭐든 간에 내가 가진 것은 남들이 가진 것에 비해 너무나 부족해 보인다. 그리고 이에 따라 자신감은 당연히 낮다. 내가 가진 것이 너무나 부족한데, 어떻게 내가 무엇인가를 하겠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그러나 자존심은 이와 반대로 높기 일수다. 내부의 스스로에게 받지 못하는 상을, 외부의 사람들에게 받겠다는 것이다. "넌 정말 공부 잘하는구나" "넌 정말 예쁘구나" "정말 좋은 회사를 다니네" "넌 이걸 되게 잘한다" 타인이 주는 칭찬과 좋은 평가는 너무나 달콤하다. 마치 이 칭찬들이 바닥에 있던 자존감과 자신감을 한껏 높여주는 것 같다. 하지만 우리는 언제나 좋은 평가만을 듣고 살지는 않는다. "넌 이것밖에 못해?" "너 사실 얼굴은 그냥 그렇잖아" "한 달에 000도 못 벌면 어떻게 살아?" "잘하는 게 뭐야?"칭찬이 우리를 단지 춤추게 한다면, 비난과 나쁜 평가는 우리를 살기 싫을 정도로 비참하게 만든다. 99개의 칭찬보다 1개의 비난이 밤 새 우리의 머릿속에 떠다니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더 많은 칭찬, 인정, 사랑, 존경을 받기 위해 스스로를 채찍질한다. 사실 채찍질만 하고 속으로만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어쨌든 우리는 계속해서 원한다. 더 높은 점수, 더 나은 얼굴, 더 좋은 직장, 더 좋은 학교, 더 나은 포트폴리오, 더 나은 커리어, 더 높은 임금, 더 좋은 아파트. 더 좋은, 더 높은. 얻기는 힘들지만, 유지하기는 더 힘든 것들.


뒤돌아보면, 나의 3종 세트(자존감, 자신감, 자존심)들은 내 인생 타임라인 위에서 지각변동을 맞은 것처럼 요동쳤다. 몇 번의 터닝포인트가 있었는데, 그중 가장 최근에 있었던 것은 역시 미국에서의 유학생활이다. 2년도 안 되는 기간 동안, 나는 정말 많은 것을 느끼고 보는 중이다. 특히 아시안(그것도 한국인) 여자라는 것은, 1분 1초 내가 이 집단에서 마이너라는 생각을 들게 한다. 나는 마이너라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했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이 집단에서는 쉽게 인정받기 힘들다는 것 또한 인정했다(한국에서처럼). 내가 이 사회에서 사회적 인정과 칭찬과 남들(백인) 보다 나은 평가를 얻는 건 굉장히 힘들 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했다.


그런데 이 것을 인정하는 순간, 마음이 굉장히 편안해졌다. 나는 이 미국 사회에서 바랄만한 외형을 가지고 있지도 않고(백인 아님) 언어와 문화도 다르고, 하여튼 모든 것이 비교대상이 아니다. 그러나 내가 가진 능력만큼은 여전히 유효했다. 나는 내 포트폴리오를 인정받아, 좋은 학교에 우수한 성적으로 들어왔고, 수업에서 교수님들과 서툰 영어로 대화하며 디자인 작업을 해간다. 그리고 언어도 서툴고 문화도 다르지만, 밝고 긍정적인 나의 성격은 좋은 친구들을 많이 사귀게 해 주었다. 나는 내가 마이너라는 것, 나의 마이너리티들을 받아들이는 순간, 내가 가진 진짜 나의 좋은 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자존심이 필요 없고 나쁘다는 이야기가 절대 아니다. 여전히 인정받고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은 나를 더 나은 나로 만들어 주는 원동력이다. 여전히 가족과 친구, 교수, 주변 사람들의 칭찬이 너무나 좋다. 하지만 이런 외부의 평가가 나 자신을 바꿀 수 없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나를 칭찬하든 욕하든 비난하든 환호하든, 나는 여전히 나다. 또한 내가 바꿀 수 없는 요소들, 내가 인종, 젠더, 나이, 그리고 외모에 대한 평가로 내가 흔들려서는 안 된다. 내가 바꿀 수 있고 선택할 수 있는 나의 모습에 주목해야 하고, 그 모습에 가치를 두는 건 나 자신이어야 한다.


솔직히 저 언어들을 심리학적인 측면에서 보면, 내 해석이 틀린 걸 수 도 있다. 그리고 그럴 것 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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