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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끼 Jul 01. 2020

메트로폴리탄 인턴쉽 후기–4

7. 전체 인턴 오리엔테이션


첫 주 금요일은 전체 인턴들을 대상으로 오리엔테이션이 있었다. 이 오리엔테이션 전에 전체 리스트를 받았는데 굉장히 놀랐다. 2020년 봄 인턴들은 총 60여 명 정도였다. 이 중 디자이너 전공의 디자인 인턴은 나 포함 3-4명 정도였다. 내가 염원했던 디자인 파트에는 단 한 명의 디자인 인턴이 뽑혔다. 그 외에는 주로 미술사나 미술을 전공한 전 세계의 수많은 학사/석사/박사들이었다. 

전시관별로 들어가는 인턴들이 대부분이었고, 전공에 따라 도서관이나 교육팀에도 인턴들이 있었다. 60명 중에 디자인 인턴이 극소수인 것에도 놀랐고, 박사들이 너무 많아서도 놀랬고, 무엇보다 놀란 것은 오리엔테이션에서 밝혀졌다.


금요일에 오리엔테이션은 다른 오티가 그렇든 책임자들의 발표들로 시작되었다. 그리고 곧


"한 명씩 일어나서 자기소개를 해봅시다"


아이엠 그라운드 시간이 돌아왔다. 그리고 미술을 사랑하고 뮤지엄을 사랑하는 청년들 답게 다들 수줍어하고 있었다...! 마케팅 회사에서 보던 뉴욕 바이브가 아니다! 이것은 젊은 학도들의 바이브다! 농담이고 다들 머뭇머뭇하고 있어서, 결국 사회자가 앞에 있는 친구를 손가락으로 콕 집어서 "이 친구부터 시계방향" 명령하셨다.


그리고 듣고 보니 정말 놀라운 것을 알게 되었다. 바로 영어가 서툰 인터내셔널이 굉장히 극소수라는 것이다. 자랑거리는  절대 아니지만 나는 유학 3년 차(그중 방학에는 한국에 가서, 미국에 있던 기간은 2년 조금 넘은)이고 한국인들이랑 같이 살고, 놀아서 영어가 여전히 서툰 유학생이다. 60명 중에 10명 정도가 영어가 서툰 인터내셔널이고 그 10명도 대부분 중국인이었다.


게다가 다들 왜 이렇게 드레스업하고 오셨어요. 나는 티에 검은 청바지에 운동화 신고 갔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주눅이 들었는데, 내 차례가 되었다.


"나는 유키라고 하고 한국에서 왔어요. 디지털 팀의 유엑스 인턴이고 대학원에서 00 공부했습니다. 반가워요"


기계처럼 말하고 앉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옆에 사람이 교육학을 공부하시는 한국계 미국인이셨다. 발표가 다 끝나고 쉬는 시간에 "저 한국분이시죠..?"로 말을 걸어오셔서 다행히 쉬는 시간은 어색하지  않게 보냈다. 생각해보니 영어가 완벽하지 않아도, 내 에세이와 포폴로 당당하게 인턴이 되었으니 그걸로 된 거 아닌가? 러브 마이셀프.



이후 사회자분이 갑자기 인턴들 간의 친목을 다진다며 게임을 시켰다. 하. 아마도  4개월 인턴 중에 가장 큰 위기였음.  랜덤으로 4-5명씩 조를 짜줬다. 게임명은 "보물찾기"였다. 직접 미술관을 돌아다니며 리스트에 적힌 보물들의 인증사진을 찍어오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고흐의 어떤 작품이 1번 보물이면 "귀를 자른 화가가 말년에 그린 그림"이라고 힌트를 준다. 


보물 리스트가 거의 20개였는데, 20대 후반 석사는 이런 것을 보면 편두통이 오면서 벌써부터 어디 소파에 눕고 싶다. 나의 팀메이트들은 다들 대학 다니는 씽씽한 미술사학+미술학도들이었다. 그리고 전부 미국인이고, 이 커다란 뮤지엄의 지리를 전부 파악하고 있었다. 


그들의 흥분에 가득 찬 표정과 다부진 육체를 보자니 '아, 탑승 가능하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대학과 대학원 시절, 나는 팀 프로젝트를 주도하며 얹혀가는 조원들을 용서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사람일은 모른다. 나는 초장부터 "아 나는 사실 미술관 지리를 잘 모르고, 미술작품들 잘 몰라서... 그래도  최선을 다할게!"라고 밑밥을 깔았다. 


사실을 말하자면 미술관 지리는 진짜 모른다. 그런데 미술작품 모르는 건 사실 반은 거짓말이고 반은 진짜다. 예원-예고-미대 루트를 타다 보면 적어도 3번은 서양사를 공부하게 된다. 그래서 대충은 다 안다. 대충은... 하지만 그들의 빛나는 눈빛과 열띤 토론 ("저 이 작품 뭔지 알아요. 이건 아시안 윙에 있고 작년에 새롭게 전시되었더라고요" "저 이거 지나쳐 오다가 봤어요. 확실합니다.")을 듣자니, 나의 이 가볍고 옅은 미술사 지식으로는 껴서는 안 된다고 판단 내렸다. 옳은 판단이었다.


다행히 참 열정적이고 착한 친구들이었다. 덕분에 대충 20개 중에 8개 정도 찾고 기진맥진( 그들을 뒤따라 걷는 것도 나는 힘이 들었다. ) 한 상태로 다시 오리엔테이션 홀에 오니, 샌드위치들이 차려져 있었다.


약간 곁다리 이야기인데, 어떻게 샌드위치 하나가 식사가 되는지 모르겠다. 물론 샐러드를 좋아하긴 하지만, 그건 그냥 애피타이저고 그날 저녁은 밥 두 그릇 뚝딱이란 말이다. 


아무튼 이런저런 잔잔바리 오티가 끝이 났다. 

노트북 켜놓고 멍하니 있는 첫 주차의 나


이 날이 금요일이었고, 오티 돌아와서 멍하니 있는 나를 보고 E는 다음 주부터 일을 주겠다며, 오늘은 일찍 퇴근하라고 했다. 많은 긴장과 설렘으로 멧에서의 인턴쉽 1주 차가 끝났다.


(>>5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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