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 04]
사람의 몸은 유한하다. 유한한 몸을 가진 사람들은 과연 몸이 한계에 다다르는 순간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자신의 생이 영원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은 장수를 꿈꾸고 자신의 삶이 한계를 마주하지 않기를 기원한다. 한편 다른 몇몇은 한계를 바라본다. 피할 수 없는 죽음을 인지한 이들은 덧없는 인간의 삶에 대해 고찰하며 때로는 회의감을 느낀다.
이처럼 죽음에 대한 다양한 인식은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문화에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회화 역시 이러한 사람들의 관점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등장했다.
자신의 몸이 영원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소망은 <십장생도>를 통해 드러난다. <십장생도>는 불로장생의 꿈을 자연물을 소재로 그려낸 그림으로 다양한 형태의 그림 안에서 그 대상은 때때로 변하지만 모두가 가지고 있는 공통점은 이들이 불로장생과 연관되어있다는 것이다. 장생불사를 추구하는 도교의 생명사상 아래 <십장생도>를 구성하는 여러 요소들은 도(道)에 순응해 생명을 연장할 수 있다고 여겨졌던 대상들이다. 도교 사상에 따르면 인간은 자연에서 파생된 존재로 자연과 인간은 유기적인 상보 관계에 놓여 있다. 이처럼 자연과 인간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기 때문에 <십장생도>를 통해 장생과 연관된 자연을 회화적으로 그려내 유한한 인간을 무한의 영역으로 이끌고자 한 것이다.
도교적 사상 아래에서 죽음이란 육체적 죽음과 더불어 인간의 실존이 안고 있는 고뇌를 포괄적으로 아우른다. 당시 사람들은 이를 도(道)에서 벗어난 상태로 여겼고 신선이 되는 것을 통해 죽음을 극복하고자 했다. 늙어도 죽지 않는 초월적 존재인 신선이 되는 것을 추구함으로써 사람들은 죽음에 대한 공포에서 자유로워지기를 희망했다.
<십장생도>가 인간의 무한한 삶을 기원한 것과 달리 17세기 네덜란드에서 주로 그려졌던 바니타스 정물화는 죽음을 직면하며 삶의 허무함을 드러낸다. 바니타스라는 말은 ‘vanitas vanitatum et omnia vanitas(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허무하다)’라는 라틴어에서 유래했다. 바니타스 정물화에서 주로 등장하는 도상들은 해골과 함께 시계, 서책, 예술, 악기와 같이 인간이 만들어 내고 가공한 대상들, 벌레와 시든 꽃, 왕권의 상징 등등이다. 이는 항상 죽음을 기억할 것을 강조하고 인생무상을 나타낸다.
바니타스 정물화가 말하는 죽음은 모든 것의 결론이다. 모든 세속적인 삶의 끝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죽음이라는 바니타스 정물화의 메시지에는 혼란스러웠던 유럽 사회의 모습이 반영되어 있다. 종교적 대립에 따른 전쟁, 전염병, 경제 위기 등으로 인해 사람들은 한때 찬란해 보였던 문명의 황폐해진 모습과 마주친다. 혼란 속에서 이들은 스스로를 반성하며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그 결과 바니타스 정물화의 여러 도상들은 부, 권력, 예술, 지식과 같이 문명사회에서 추구하던 것들의 덧없음에 대해 말한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앞선 <십장생도>와의 차이가 도상적 측면에서 드러난다. 인간과 영향을 주고받는 존재로서 이상적으로 여겨지는 자연을 다루는 <십장생도>와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인공물, 그리고 몇몇 자연물을 비관적으로 바라보는 바니타스 정물화는 다루는 대상과 이를 바라보는 방식에서 주된 차이가 나타난다.
몇 달 전, 글의 초안을 작성한 후 당시 개봉했던 ‘소울’을 보게 되었다. <십장생도>, 바니타스 정물화가 그려졌던 먼 과거부터 ‘소울’을 관람하는 지금의 순간까지 죽음이란 인간의 주된 관심사로 자리매김해왔다. 우리의 몸이 그 끝을 바라보는 순간 우리는 무엇을 떠올릴까? 아직 이루지 못한 것들을 아쉬워하는 조 가드너처럼 유한한 자신의 몸을 부정할 것인지, 영혼 22처럼 자신의 불꽃을 찾지 못한 채 허무함만을 간직할 것인지는 모두 우리에게 달려있다.
도교에서 추구하는 장생불사란 현세의 행복을 목적으로 한다. 허무함, 인생무상을 말하는 바니타스 정물화 역시 ‘Carpe Diem, 이 순간에 충실하라’는 말로 이어진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떻게 사느냐이며 오히려 몸에 한계가 있기에 주어진 시간들이 하나하나 소중한 가치를 갖게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유한한 우리가 매 순간에 최선을 다하며 하루하루를 만끽할 때, 죽음은 더 이상 두려워하며 기피할 대상이 아닌 자연스러운 삶의 일부가 되어있지 않을까?
김정은. (2015). 〈십장생도(十長生圖)〉의 상징과 생명사상. 한국민화, (6), 6-40.
정영한. (2013). 바니타스 정물화의 동시대적 담론; 개념과 양식의 변용, 그리고 의미의 확장을 중심으로. 기초조형학연구, 14(3), 287-2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