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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 앙데팡당 Nov 02. 2021

기록이 예술이 되는 순간

[E앙데팡당X아트렉처/넛]

  예술의 범주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다양한 측면에서 많은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그중 '사진도 미술작품이라 할 수 있는가?'라는 의문도 여전히 사람들에게 남아있는 듯하다. 최근 미술 시장에서 인기 있는 사진작가들의 작품이 한 장에 10억 원 이상으로 팔려도 이런 의문이 남아있는 이유 중 하나는 아마 사진이 우리에게 너무나 가까운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는 누구나 스마트폰만 있으면 멋진 사진을 쉽게 찍을 수 있는 시대이고, 일반인들도 전문 카메라에 쉽게 입문할 수 있을 정도의 접근성이 마련된 시대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찍는 사진과 현재 미술작품이라 불리는 사진 작품의 차이는 무엇일까?


  이 차이의 근원은 19세기 인상주의가 나타난 배경으로 올라가 찾아볼 수 있다. 인상주의가 나타난 배경으로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 가장 큰 촉매제는 사진의 발명이었다. 1826년 프랑스의 화학자 니엡스가 백랍 감광판을 8시간 노출시켜 최초의 사진 영상을 창조하면서, 이전까지 미술의 가장 중요한 기능이었던 외부세계의 재현이 완전히 무의미해졌다. 즉 현실을 재생산하는 회화의 권위가 추락하면서 화가들은 더 이상 기록과 재현을 위해 그림을 그릴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이 변화는 화가들로 하여금 현실의 모방이 아닌 자신들의 시선과 생각들을 그림에 담게 하였다. 이렇게 회화에게 주어진 새로운 자유는 화가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어떤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는지, 그리고 어떤 형식으로 그 생각과 시선을 캔버스에 담는지에 따라 입체주의, 야수주의, 구축주의 등의 이름이 붙으며 현대미술이란 총체적 개념을 완성시켰다. 그러니 사진의 발명이 이후 현대미술의 개념과 역할의 틀을 마련했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의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현대미술의 개념과 역할이 다시금 현대의 사진에게 되돌아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사진 또한 모든 사람들에게 보편적으로 보급되면서 사진 찍는 기술과 사실의 시각적 기록이란 사진의 역할은 더 이상 중요한 것이 아니게 되었다. 그렇다면 현대미술에서 사진은 어떤 역할을 하고 있을까? 사진작가들은 이전 19세기 화가들이 택한 것과 마찬가지로 사진을 기록이 아닌 자신의 생각, 철학을 담아내는 도구로서 쓰고 있다. 즉 일반인의 사진과 미술작품이라 불리며 미술관에 전시된 사진 작품의 차이는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사상과 개념을 사진매체 속에 담았다는 점이란 것이다.



  그리고 여기, 현대미술에서의 사진의 역할을 잘 보여주는 매그넘 포토스를 소개하려 한다. 매그넘 포토스는 전 세계에서 최고의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사진가 그룹으로, 1947년 미국 뉴욕에서 로버트 카파, 데이비드 시무어, 앙리 카르티에-브레송에 의해 설립되었다. 이들은 '기록을 예술의 단계로 끌어올린다'는 공통의 목표 아래 매그넘 포토스를 창립해 오늘날까지도 세상을 연대기적으로 기록하고 지구 상의 사건과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개성을 사진을 통해 해석하고 있다.


  

  이 매그넘 포토스의 작품은 현재 부산에서 만나볼 수 있다. 부산에서 전시 중인 <매그넘 인 파리> 전시회는 매그넘 포토스와 협력해 파리의 역사와 숨겨진 모습들을 매그넘 포토스의 사진작가들이 찍은 350여 점의 사진을 통해 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필자 또한 전시를 보며 사진 작품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편협한 시각을 반성하는 시간을 가졌고, 이렇게 사진이 사색적 주제를 담아낼 수 있고, 사진을 통해 생각지도 못한 방법과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많은 작품 중에서도 인상 깊게 봤던 작품들 몇 점을 함께 공유해보려 한다. 



에펠탑의 수선공, 1953년, 마크 리부

  '사진이 세상을 변화시키지는 못하지만, 어떻게 변화하는지 그 특별한 순간만은 보여줄 수 있다'라고 말한 마크 리부는 대상들과의 공간적 교감을 중시하며 직접적인 표현보다는 간접 화법을 선호했다. 이 작품은 마크 리부의 대표작으로 우연히 올려다본 에펠탑 위에서 도색 작업에 열중한 페인트공을 보고 바로 에펠탑에 올라 안전장치도 없이 목숨을 걸고 찍은 사진이다. 

  페인트공의 우아한 동작과 이를 순간적으로 포착해낸 순발력이 돋보이는 작품이지만, 자세히 보면 페인트공은 안전장치 하나 없이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그제야 까마득한 파리 시내의 풍경이 보이기 시작한다. 정말 페인트공만 보고 있으면 현대무용을 하듯 몸이 곡선으로 우아해 보이지만, 안전장치 하나 없는 위험한 노동을 할 수밖에 없었던 1950년대 파리 노동자의 실상을 사진 하나로 표현하는 것이 너무나 인상 깊었다. 



루브르 뮤지엄의 모나리자, 2012년, 마틴 파

  마틴 파는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회화작품인 모나리자를 보기 위해 루브르 박물관으로 몰려든 인파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포착한다. 모나리자는 전 세계에 한 점뿐인 작품으로 아우라와 희소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 작품 앞에 몰려들어 감탄하며 감상한다.

  그러나 마틴 파는 이 유명한 모나리자 작품이 아니라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고 있는 인파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들의 핸드폰에 저장된 모나리자는 더 이상 유일하거나 고유한 가치를 지니지 못한다. 복제를 통해 아우라는 소멸되고 모나리자는 스마트폰으로 언제든지 원할 때마다 꺼내볼 수 있는 흔한 예술작품으로 전락하게 된다. 이 일련의 과정을 마틴 파는 사진으로 담아내면서 우리에게 예술의 고유성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우리는 멋진 풍경이나 기억하고 싶은 순간, 또는 물건을 보면 기억하고 싶어서, 어떠한 실체로 간직하고 싶어서 스마트폰을 켜서 사진을 찍는다. 하지만 현대 사진작가들은 생각을 먼저 하고, 그 사색의 결과로 나온 주제를 담기 위한 도구로 사진을 쓴다. 미술은 더 이상 우리의 시각을 자극하는 게 목적이 아니다. 우리의 뇌를 자극하고자 한다. 즉 앞서 말한 바와 같이 현대미술은 외부세계를 재현하는 역할보다 개념(concept)을 중시한다. 그러므로 사진은 이런 개념을 담고자 하는 현대미술에 잘 어울리는 매개체로 인기를 얻을 수 있었다. 


  이처럼 예술은 기술의 발전과 함께 더 큰 확장을 시도하고 더 많은 질문을 우리에게 던지고 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빠르게 변화하는 흐름을 타면서 예술이 던지는 질문에 답을 하는 것뿐이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빠른 흐름을 우리 마음 가는 대로, 마음껏 타면서 직접 작품을 마주하며 그 변화를 몸소 체험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제 그 변화를 직접 체험해보고 작품들을 마주하면서 우리만의 예술의 범주와 그 기능, 역할에 대해 고민해보고 답을 적어보는 것은 어떨까? 




*참고

사진은 어떻게 미술작품이 되었을까?, 2014, 이규현

<매그넘 인 파리-부산> 오디오클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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