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넛04]
2016년 이스탄불에서 처음 시작해 전 세계 11개 도시에서 투어를 진행한 후 한국에 상륙한 '아트 오브 뱅크시:위드아웃 리미츠(The Art Of Banksay : Without Limits)' 전시가 여러모로 화제가 되고 있다. '얼굴 없는 화가'로 알려진 뱅크시의 전시인 만큼 주말에는 평균 500~600명, 최고 관람객은 1000명에 달해 화제이기도 하지만, 이 전시가 '뱅크시 없는 뱅크시 전시', '뱅크시도 모르는 가짜 전시'라는 것으로 화제이기도 하다.
이러한 논란이 불거진 것은 전시가 진행되던 중 뱅크시가 자신의 홈페이지에 "최근 잇따르는 '뱅크시 전시'는 작가와 협의 없이 조직됐음을 꼭 알았으면 한다"며 '페이크(FAKE)' 딱지를 붙였다. 또한 현재 뱅크시의 공식 작품 보증기관이자 작품 판매를 주관하는 페스트 컨트롤 역시 뱅크시 관련 모든 전시가 '가짜(FAKE)'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라스베이거스, 부다페스트, 파리, 리스본, 시드니, 암스테르담, 토론토 등 전 세계에서 열린 전시들을 나열했는데 흥미롭게 '서울'은 언급되지 않았다.
서울 전시 홍보 시에 사용된 '아시아 첫 투어 뱅크시전', '오리지널 전시'와 같은 문구가 거짓이라며 전시의 진위 여부에 관해서도 논란이 불거졌다. 실제로 주최사는 '오리지널(원본) 포함 150여 점'이라는 문구를 내걸었지만 그중 오리지널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27점이고 나머지 120여 점은 레플리카이다. 한 매체의 이런 보도 이후 뱅크시 전시회의 포스터에는 위의 문구가 모두 빠지고 '오마주 전시'라는 설명이 추가됐다. 전시를 기획한 이환선 BALC 대표는 "이 전시를 비롯해 세계적으로 열리고 있는 다른 뱅크시 전시 역시 뱅크시가 직접 설립한 회사에서 공인한 전시"라고 강조했다. 전시에 걸린 작품들 역시 POW(뱅크시가 2003년 자신의 작품을 판매하기 위해 설립한 딜러) 인증 원작이 포함되어 있다.
이처럼 뱅크시 전시가 작가와 협의 없이 조직되었는지와 서울 전시회 주관사의 애매모호한 태도에 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겠지만, 논쟁의 핵심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뉘고 있다. 첫 번째는 이러한 전시가 뱅크시의 가치관과 순수성을 망친다고 보는 것이다. 미술계 전문가들은 뱅크시가 인정하지도 않는 상업적인 전시는 작품들이 표방하는 정치, 사회적, 반전의 메시지를 훼손시킨다고 주장한다. 또한 뱅크시는 스스로 상업예술을 거부했는데 상업 전시를 여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는 의견도 있다.
실제로 뱅크시의 여러 퍼포먼스를 보았을 때 그는 예술의 허례허식, 상업화와 제품화를 거부한다고 볼 수 있다. 한 일례로 <풍선과 소녀>라는 그의 대표적인 작품에서 보인 퍼포먼스에서 그는 그의 작품 <풍선과 소녀>가 104만 2천 파운드로 낙찰되자 분쇄기를 원격으로 가동해 작품을 분쇄하는 퍼포먼스를 보였다. 이러한 퍼포먼스는 돈으로 예술을 구매하는 미술시장에 대해 정면으로 비판하고 있다. 또 다른 예시로 2010년 출품한 다큐멘터리 <선물 가게를 지나야 출구>는 전시관에서 아트샵을 통과하지 않으면 밖으로 나갈 수 없는 구조에 대한 이야기로 전시 예술의 상업성에 대한 비판을 다루고 있다. 이외에도 그의 많은 작품들은 반자본주의, 상업적이고 자본적인 미술에 대한 조롱과 반대관이 강하게 들어가 있다.
그런 그의 작품을 직접적인 허락을 받지 않고 그 작가의 오리지널 전시인 것처럼 홍보하며 상업적인 전시를 주최한 것은 분명 작가의 예술관과 모순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주최 측을 비롯한 몇몇 전문가들은 "상업성 논란을 씌우기에는 뱅크시가 대형 브랜드와의 협업이나 경매 참여 등을 통해 이슈를 분명하게 전달하는 능력이 있는 아티스트"라고 반박한다. 모든 전시가 상업적인데 뱅크시에게만 "순수성이라는 이름을 덧씌워 교조주의적으로 바라본 시각"이라고 말한다. 물론 이제 모든 전시가 상업적이란 것에 대해서는 동의한다. 하지만 이러한 반박이 수용 가능할 때는 작가 또한 이러한 상업성에 반대하지 않을 때이다. 뱅크시는 예술의 상업성과 자본으로 점철된 미술시장에 반대하는 수많은 퍼포먼스와 작품을 만들어낸 작가인데 과연 이러한 주장이 설득력이 있을지는 미지수다.
또한 본 서울의 뱅크시 전시에서는 그의 작품을 이용한 MD를 판매하고 있다. 이는 꽤 흥미롭게도 앞서 언급한 뱅크시의 <선물가게를 지나야 출구>와 정확히 부합하는 모습이다. 과연 뱅크시가 자신의 작품관과 완전히 어긋나는 이러한 전시의 형태를 허락했을지 곰곰이 생각해볼 지점이다. 실제로 법적인 문제를 따졌을 때 문제가 없을지는 더 두고 봐야 하겠지만 작가의 작품 세계를 존중하지 않았다는 점에서는 분명 비판의 여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 논쟁의 핵심은 '뱅크시 없는 뱅크시 전시', 즉 오리지널리티 논란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실제로 주최사는 '오리지널(원본) 포함 150여 점'이라는 문구를 내걸었지만 그중 오리지널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27점이고 나머지 120여 점은 레플리카이다. 이는 뱅크시의 작품이 주로 담벼락에 그려졌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주최 측은 "담벼락을 떼올 수는 없진 않느냐"라고 반문한다. 그러면서 "이 전시는 작품 자체보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목적이 더 크다"라고 말했다.
당연히 담벼락을 떼올 수는 없다.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첫째로 본 전시가 작가의 협의 아래 이루어졌는지, 둘째로 레플리카가 대부분인 전시가 과연 '오리지널 전시'라는 이름을 달고 나올 수 있는지다. 첫째는 앞서 다른 것처럼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두 번째에 관해서는 관련 도보 이후 서울 전시 포스터에서 '오리지널 전시'라는 문구가 빠지고 '오마주 전시'라는 설명이 추가됐다. 즉 그의 예술 세계관을 '오마주한 전시'라는 것이다. 오마주란 작가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그 감독이나 작가가 만든 것을 인용하는 일을 의미한다. 과연 작가의 작품 세계와 가치관에 모순되는 것에 작가의 작품을 '오마주'하는 것이 과연 '오마주'라고 볼 수 있을까? 과연 이것이 존경의 표시인가?
개인적으로 전시를 통해 대중이 다양한 작가들과 작품들을 접하는 것은 좋은 현상이고 장려되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전제는 분명 작가의 확실한 허락 및 협의와 작가를 존중하는 태도를 바탕으로 한 전시에 한해서만일 것이다. 그 어떤 것도 불투명한 전시에 대해 이 전시는 대중들에게 작가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때문에 모든 것들이 정당화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이러한 논란에 대해 우리들은 그저 감상하고 주어진 것만을 소비할 줄 아는 관객이 아니라 비판적인 시선으로 볼 줄 아는 관객이 될 필요가 있다.
*참고
가짜(FAKE) 전시? 오마주인가 복제품인가 - 아트 오브 뱅크시, 아트인사이트, 2021.09.02
논란 먹고 자란다... 뱅크시 없는 뱅크시, 뱅크시도 모르는 뱅크시전?, 헤럴드경제, 2021.01.11., http://biz.heraldcorp.com/view.php?ud=20220111000372&ACE_SEARCH=1, 접속일 2021.0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