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없는 물고기 밥은 너나 먹어
그 사람을 보자마자 입가엔 미소가 번졌다. 그렇게나 빠른 속도로 타인의 세계에 빠져 허우적거렸던 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의 얼굴은 내가 정말 싫어하는 이른바 ‘날티’가 났다. 키가 크지도 않았다. 게다가 내가 극도로 싫어하는 수염도 절대 깎지 않았다. 공통점이라고 하면 똑같은 카메라를 사용한다는 점 하나였다. 영양가 없는 대화였지만 그렇게 우리는 가까워졌다.
내가 그를 좋아한다는 사실은 누구라도 쉽게 알 수 있었다. 화장을 다 지우고 자려고 누웠다가도 그가 보고프면 다시 화장을 하고 그를 보러 갔다. 머리가 베개에 닿자마자 코를 골며 자야 할 상태였는데도 말이다. 게다가 그의 동네는 우리 동네에서 30km나 떨어져 있었다.
그는 나를 보자마자 달라붙어 뽀뽀를 해댔다. 사귀지도 않는 사이에 뽀뽀라니 원래의 나라면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뺨을 때리거나 욕을 하면서. 하지만 난 거부하지 않았다. 그런 내 자신이 낯설게 느껴졌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는 나에 대한 마음이 줄어들고 있었던 것 같다. 그게 아니라면 애초에 관심이 없었는데 재밌어서 장난친 걸 수도 있고. 그는 나와 연락을 잘 하다가도 말 한마디 없이 일주일동안 잠수를 타기도 했다. 원래의 나라면 뭐하는 짓이냐며 따졌겠지만 신기하게도 나는 신경 쓰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신경이 쓰이긴 했지만 그 정도는 별 일 아니라는 듯이 무시하고 내 일을 할 수 있는 정도였다. 기다림 같지 않은 기다림을 거치고 나면 그는 내게 다시 연락을 했다.
참 웃긴 사람이었다. 분명 자기가 답장을 하지 않아놓고선 오히려 나에게 왜 연락을 하지 않았냐고 물어봤다. 오빠가 답장을 안 해서 나도 안 했다고 하면 그런 게 어디 있냐며 자기가 걱정이 되지도 않냐는 말을 했다. 정말이지 잠수가 습관인데다 그게 잘못인지 전혀 모르는 느낌. 만약, 내 친구가 이런 사람과 썸을 타고 있다면 나는 ‘미친놈’아니냐며 뜯어 말렸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그가 밉지 않았다. 화도 나지 않았다.
예전의 나였다면 진작에 끊어낼 사람이었다. 하지만 계속해서 그와 연락을 이어갔다. 10분이면 오던 답장이 한 시간이 걸렸고 나중엔 여섯 시간, 더 나중에는 아예 이십사 시간이 넘게 걸리기 시작했다. 차라리 속 편하게 그가 며칠 동안 잠수를 타는 게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이상 연락해봤자 발전 가능성이 1프로도 되지 않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에게 나는 중요한 사람이 아니었다. 슬프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 슬퍼할 만큼 한가롭지 않았다. 내가 아무리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나에게 진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더 이상 에너지를 쏟고 싶지 않았다. 예전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멀어지면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 어떻게든 상대를 잡으려고 했다. 하지만 이번엔 아니었다. 나에게서 멀어지고 싶은 사람을 붙잡아 내 옆에 두고 싶지 않았다. 나 자신보다 소중한 건 없는 거니까.
그는 흥미를 잃은 물고기에겐 밥을 주지 않았다. 그래도 물고기가 아예 사라지는 건 싫었는지 물고기가 죽기 바로 직전에 나타나 죽지 않을 만큼만 밥을 줬다. 어쩌다가 깜빡하고 너무 오랜 시간동안 물고기 밥을 챙겨주지 못했을 땐 물고기가 죽기도 했다. 그래도 그는 개의치 않았다. 다른 물고기를 구해오면 됐으니까. 하지만 이번에 데려온 새로운 물고기는 달랐다. 그가 나타나 물고기 밥을 줘도 먹지 않았다. 굶어 죽지도 않았다. 그 물고기는 더 이상 이곳에서 살아봤자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곤 그 집을 나가버렸다. 그가 앞으로는 밥을 잘 챙겨주겠다며 달래봤지만 너 말고도 내 밥 챙겨줄 사람은 많다며 가버렸다.
그 물고기는 더 이상 남이 주는 밥은 먹지 않았다. 알아서 먹이를 구해 먹었고 새로운 주인을 찾지도 과거의 주인을 기다리지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