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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복희 Sep 25. 2019

우리는 시간을 내서 만나는 사이는 아니지만

그래도 친구

과거에도 앞으로도 만날 일은 없지만 같은 학교를 나왔다는 이유로, 어렸을 때 인사하던 사이라는 이유로 엮인 존재. 우연히 마주치지 않으면 굳이 시간을 내 만날 일도 없는 사이. 인스타 친구.

연락하지 않는 사이지만 이 친구가 어떤 회사를 다니는지, 저번 주말엔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 여름휴가는 어느 곳으로 떠났는지,  애인이 있는지, 어제는 무슨 옷을 입었는지, 어느 동네에 사는지는 다 알고 있다.

알고 싶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우리는 인스타 친구니까. 하지만 만날 일은 없다. 우리는 인스타에서만 친구니까. 현실에서는 그저 사생활을 굳이 공유할 필요 없는 아는 사이. 하지만 인스타에서는 사생활을 굳이 공유하게 되는 사이.  

이다음엔 어떤 말을 써야 할까 생각하며 다이렉트 메시지를 주고받지만, 굳이 시간을 내 만나서 대화할 사이는 아니다. 하지만 반갑다는 찰나의 감정으로 서로의 팔로워가 되어준다.

앞으로 만날 일은 없지만 같은 중학교를 나왔다는 이유로 서로의 팔로우가 됐던 친구가 있다. 그 친구가 먼저 팔로우를 했지만 언팔 또한 먼저 했다. 언팔할 거면 왜 팔로우를 한 걸까 조금은 찝찝한 마음이 든다. 그러다 내 피드를 쭉 둘러본다. 뭐가 거슬렸을까.

사생활? 아마도 친했던 적 없는, 앞으로도 친해질  없는, 하지만 같은 학교에 다녔던 친구의 사생활이 거슬린 거겠지. 우린 굳이 사생활을 공유할 사이가 아니니까.

이런 생각을 하고 나니, 가끔은 인스타에 사진 올리는 일이 눈치가 보이기 시작한다. 그동안 올린 피드가 아까워 탈퇴할 생각은 하지 않는다. 비활성화 버튼을 누른다. 그러곤 앞으로도 만날 친구만 있는 계정으로 로그인한다. 눈치 볼 필요 없으니까.

나는 왜 인스타그램을 시작했을까.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 옷을 억지로 입고 있는 느낌이다. 다른 친구들은 다 입었다는 이유로, 가끔은 따뜻하다는 이유로 나는 그 옷을 벗지도 못하고 있다. 바보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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