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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복희 Oct 25. 2019

을의 연애 14

아플 거면 저기 가서 혼자 아파

생리 주기가 딱딱 맞아떨어져 자기 몸은 기계가 아닐까 한다며 복희는 가끔 우스갯소리를 하곤 했다. 그런 말을 비웃기라도 하듯 그녀의 몸은 점점 이상해져만 갔다. 주환과 크게 싸우고 난 뒤면, 생리 예정일이 아닌데도 갑자기 피를 쏟았다.  불안한 그녀는 주환에게 병원에 같이 가달라고 연락했다. 하지만 그는 싸운 마당에 병원에 같이 가 달라는 소리가 나오냐며 나쁜 말만 했다. 병원 핑계로 만나려는 의도를 모를 것 같냐는 말까지 덧붙였다. 주환의 말을 들은 그녀는 더더욱 불안감만 커졌다.


이럴 때면 항상 병원은 복희 그녀 혼자의 몫이 됐다. 그녀는 접수를 하고 병원에서 대기를 하고 있었다. 종소리가 나며 문이 열렸다. 복희 또래쯤 돼 보이는 여자였다. 그녀의 옆엔 그녀의 남자 친구로 보이는 사람이 서 있었다. 그 여자도 대기명단에 이름을 적더니 남자와 함께 의자에 앉았다. 남자는 여자를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괜찮냐고 물었다. 그 커플을 마주하니 복희는 이 상황이 더 힘들게만 느껴졌다. 


의사는 복희에게 스트레스성 하혈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예상했다는 듯 고개만 끄덕였다. 병원에서 나온 그녀는 주환에게 바로 톡을 보냈다.


-나 스트레스받아서 하혈하는 거래

-그렇구나

-그게 다야?

-넌 대체 원하는 게 뭐야? 내가 어떻게 해줘야 되는데?

-하.. 아니야 됐어


복희는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항상 그에게 병원에 같이 사달라 했지만 결과적으론 항상 그녀 혼자 감당할 수밖에 없었다. 마치 주환은 그녀의 아픔을 꾀병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이번엔 생리 예정일에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불안했던 그녀는 바로 주환에게 연락해 말을 했지만. 그 말을 들은 그는 명확한 답을 하지 않았다. 여러 감정이 뒤섞인 그녀는 그대로 주환의 집으로 향했다. 태평하게 자고 있는 그를 원망스럽게 쳐다보던 그녀가 짜증을 있는 대로 내며 깨웠다. 


"병원 같이 안 갈 거야? 나 무섭다고"

"넌 진짜 미친년이다. 그걸 왜 나한테 그래?"

"그럼 너한테 그러지. 내가 누구한테 그래야 돼?"
"너 다른 새끼랑 처자고 나한테 뒤집어 씌우려는 거지?"

"무슨 말이야? 너 지금 진심으로 하는 소리야?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어?"

"너랑 나랑 지금 사이 안 좋은데 왜 자꾸 병원 같이 가자고 하는 거야? 이렇게 하면 내가 너 용서해줄 것 같아?"

"내가 너한테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 그리고 내가 생리 안 하는 이유는 확실하진 않지만 안 하면 그래도 네가 같이 가줘야 되는 게 맞잖아"

"내가 왜?"

"왜라니? 너 진짜 왜 그래? 몰라서 묻는 거 아니잖아"

"다른 남자한테 가달라고 해"

"무슨 소리하는 거야 진짜? 다른 남자가 어딨어"

"야, 귀찮게 하지 말고 여기서 나가. 너 꼴도 보기 싫으니까"


이번에도 말 같지 않은 말만 듣던 복희는 불안한 마음으로 병원을 향했다. 복희의 상황 설명을 들은 의사는 바로 임신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소변검사를 하자고 했다.  초조해진 그녀는 다리를 떨며 병원에 있는 액자만 쳐다봤다. 왜 이런 불안감은 항상 그녀 혼자 감당해야 하는지 억울했다. 이럴 때 옆에 있어줘야 할 주환이가 없다는 게 원망스러웠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못 온 게 아닌, 자의적으로 오지 않았다는 사실에 마음이 더욱 아팠다.


결과를 기다리는 복희의 시간만 멈춰있는 듯했다. 진정이 되지 않는 그녀는 상처 받을 걸 알면서도 또 주환이에게 연락했다. 그녀가 보낸 톡에서 1이 사라지지 않았다. 불안한 마음에 숫자 1만 바라봤다. 결국 간호사의 입에서 나온 복희라는 단어가 그녀를 1과 떨어트려놨다. 진료실에 들어간 그녀는 의사에게 결과를 들었다. '음성'.

예정일인데도 소식이 없는 이유는 이번에도 아마 스트레스일 것이라고 했다. 복희는 다행이라곤 생각했지만 불안한 마음은 가시질 않았다. 그녀는 바로 주환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 요새 몸 안 좋은 거 스트레스받아서 그런 거래"

"그래"

"넌 나 걱정 안 해? 그냥 걱정이 안 되는 거야?"

"왜 맨날 시비를 걸어?"

"내가 언제 시비를 걸어? 넌 병원도 같이 안 가주면서 걱정도 못해주냐? 매번 너는 평온해. 나만 힘들어 나만 아파. 나 좋아하기는 해?"

"진짜 그만해라. 전화 끊어. 걸지 마"

"왜 맨날 전화 끊으라고 해?"


그녀는 대답을 기다렸지만, 복희의 질문을 끝으로 전화도 끝이 났다. 그에게 스트레스가 원인이라고 전하면 주환의 태도가 좋게 변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부푼 꿈이었을 뿐이었다. 주환의 대답은 복희를 더 아프게 만들었다. 그는 그녀를 위로를 해주지도 걱정을 하지도 보살펴주지도 않았다. 복희는 이런 일을 5년 동안이나 버텼다. 나중엔 그녀를 보면 결핍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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