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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명 Dec 22. 2022

4. 에콰도르 키토 - 나 자신으로 존재하기

볼리비아 포토시 - 산 로렌조 성당의 파사드

에콰도르 키토 천사상


어딘가를 여행하기에 1년이란 너무 긴 시간이라는 걸 벌써 알았다. 보코타에서 카르타헤나와 아라카타카로, 다시 보고타로 가서 메데인과 포파얀을 들러 에콰도르로 넘어오기까지 한 달. 낯선 세계에 대한 흥분은 점점 잦아들었다. 에콰도르는 가장 기대가 없었던 나라였고, 꼭 보고 싶은 관광지나 유적지도 없어서 이곳저곳을 들러 액티비티에나 열중했다.


패러글라이딩, ATV, 다운힐 라이딩까지 고루고루 시도해봤지만 잠시잠깐의 즐거움일뿐 그때가 지나면 마음은 다시 가라앉았다. 나날이 불안감은 쌓여갔다. 여행 전까지 근 1년간을 방안에서 잘 나가지 않아 거의 은든형 외톨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였으니 무모하고 또 무리한 시도이기도 했다. 심지어 그 당시 나는 낯선 사람들을 만나면 몸을 떨었다. 여행 처방은 그때의 나에게 도움은 되었을까? 아니 그건 처방이 아니라 사실 객기에 불과했을 거다.


에콰도르에서 읽을 만한 책이 없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온라인 서칭을 해봐도 에콰도르 국적의 작가나 관련된 작가가 나오지 않았다. 번역된 도서도 전무한 것 같았다. 그래서 선택한 책이 카를로스 푸엔테스의 '라틴 아메리카의 역사'였다. 카르로스 푸엔테스는 소설 '아우라'를 쓴 멕시코의 유명 작가이니 역사적 사실을 있는 그대로 건조하게 서술하거나 따분하게 나열하지는 않을 거라는 기대가 있었다. 보기 좋게 예상은 빗나가서 에콰도르에 있는 내내 지루한 책을 끙끙거리며 겨우 읽어냈다.


'라틴 아메리카의 역사'는 제목과 달리 친절한 역사책이 아니다. 중남미 인디오의 태동을 신화와 전설에서부터 탐색하고 스페인 침략의 역사까지 면밀하게 살펴보는 이 책은 카를로스 푸엔테스의 뿌리 찾기이자 역사 탐구에 가깝다. 중남미를 둘러싼 다양한 역사적 맥락들은 깊고 상세하게 서술되지만 객관적이라기보다는 사색적인 접근이어서 타문화의 독자에게는 더욱 낯설고 어렵게 느껴진다.


에콰도르 키토 - 산 프란시스코 성당, 성당 안의 황금은 모두 남미 지역에서 얻은 것이라고 한다.
에콰도르 키토 - 산 프란시스코 성당의 성모 조각


대부분의 챕터에서 도통 흥미를 느끼지 못했지만 단 한 페이지, 한 장의 사진이  마음을 끌었다. 스페인인들이 남미 땅에 들어가고 나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원주민들을 카톨릭으로 개종시키고 곳곳에 성당을 세우는 일이었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스페인과 현지 인디오의 문화적 혼융 일어났다. 남미 전역에 세워진 성당들을 둘러보다보면 외적으로나 내적으로나 현지와 결합한 흔적들을 종종 발견할 수 있다. 에콰도르에서도 이런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데 키토에 있는 산 프란시스코 성당의 성모 마리아 조각상을 자세히 보면 인디오 현지인의 외모가 반영되어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책 속에 나왔던 볼리비아 포토시의 산 로렌조 성당은 그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져 보이는 곳이다.


볼리비아 포토시 - 산 로렌조 성당(san lorenzo)


성당의 정면 부조에는 양쪽 기둥으로 치렁치렁한 잉카 전통 복장을 하고 있는 공주가 자리하고 있고, 중앙에는 전투적인 모습의 천사가 우뚝 솟아있다. 현지의 문화적 표현들이 다분히 나타나 있는 이 부조는 성당의 양식 위에 있을 뿐이지 전적으로 인디오 건축 예술처럼 보이기도 한다. 산 로렌조 성당을 건축한 건 포토시 출신의 호세 콘도리라고 하는 고아였는데 무려 목공과 세공을 독학으로 익힌 인물이었다고. 건축가를 소개하면서 카를로스 푸엔테스는 정면 세공에 대해 '패배한 잉카 문화의 모든 상징들을 통해서 새로운 삶에 대한 약속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덧붙이고 있다.


책을 통해 이 조각을 접하고 꽤 많은 상상을 했다. 호세 콘도리는 예수를 믿었을까? 정복자의 요청으로 자신이 믿지도 않는 종교의 세부를 공을 들여 묘사하면서 어떤 생각들을 했을까? 잉카 문화적 표현들은 저항 정신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후 볼리비아에 갔을 때 해발 4060m에 있는 고산도시 포토시에 들러 산 로렌조 성당을 직접 확인해보았다. 내가 성당에 올랐을 때는 허술한 철장 밖으로 시장이 서 있었고 성당 앞으로 쓰레기들이 나뒹굴고 있어서 도저히 이곳이 유적지라고는 생각 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내 상상속에서 인디오 건축가는 열패감의 육화된 상징으로 느껴졌다. 지배자의 양식 안에서 패배한 핏줄의 역사를 아름다운 영감으로 표현할 때 그건 차마 삶에 저항하지 못하고 자신 안으로 도피해가는 과정으로 보이지 않나. 긴긴 시간 세밀한 부조를 깎아나가면서 마음에 품었을 전복의 욕망은 어딘가 서글프다.


꽤 오랫동안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런데 그건 나의 비약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최근에야 하게 됐다. 지배와 피지배의 구도 안에서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 도대체 뭐가 있을까. 건축가가 할 수 있는 것은 결국 건물을 만드는 일일 뿐이다. 호세 콘도리가 특별히 해방에 뜻이 있어서 잉카 문화를 다시 불러낸 것도 아닐 것이다. 오히려 산 로렌조 성당의 파사드는 눈 앞에 맡겨진 일을 하면서 자신의 뿌리를 잊지 않고 최대한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려 했던 한 건축가의 의지 표현인지도 모른다.


종종 타인에게 완전히 복속되는 듯이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다. 맞지 않는 일을 하며 자신만 불완전한 존재로 보일 때, 끔찍할 정도로 이기적이거나 폭력적인 사람들을 만나 절망에 빠질 때, 나완 너무 다른 세상의 모습에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때가 있다. 그런 순간들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전복을 위해 세상 따지거나 폭력을 되갚아 주는 일은 너무나 멀고 요원하다. 그렇다고 세상에 나를 내어주면서 산다는 것도 실은 불가능하다. 그럴 수 있었다면 애초에 고통에 대해 생각하기보다는 적응적인 인물이 되어 넉넉히 살아냈을 거다. 결국 개인이 할 수 있는 것은 자신 그대로 존재하기 위해 애쓰는 일뿐이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최대한 나 자신으로 완성하기. 조악한 타협이든 아름다운 조화이건 간에 지금 나 자신으로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그래야 살아갈 수 있다.


여행의 기억을 다시 불러내면서 산 로렌조 성당은 나에게 남미에서 가장 가치있는 유적이 되었다. 어떤 양식이나 어떤 건축에서도 볼 수 없는 모순된 정서와 힘이 이 파사드 안에 다 담겨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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