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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명 Dec 20. 2022

3. 콜롬비아 아라카타카 - 마르케스의 고향

사실의 비사실성

화살표 위치가 아라카타카, 바로 위 별표는 산타 마르타

여행지에 몇 권의 책을 들고 간 것은 순전히 내 게으름 탓이었다. 특별히 뜻이 있어서 간 여행이 아니었다. 꼭 가보고 싶었던 남미 지역은 콜롬비아에서 에콰도르, 페루, 볼리비아, 칠레, 아르헨티나를 거쳐 브라질까지 루트를 짜놓았지만 유럽 지역은 프랑스의 아비뇽 축제와 영국의 에든버러 축제 기간 맞춰 당도하겠다는 생각 외에는 아무 계획도 없었다.


ADHD의 핑계를 대기에도 무안할 정도의 초등 수준 영어 능력은 회화 학원을 다녀도 일말의 진전도 없었고, 대신 기초 스페인어 학원을 다니면서 숫자를 셀 수 있을 정도의 지식만을 갖춰 남미로 갔다. 의미나 목적이 없었기 때문에 목표도 없었다. 가는 곳마다 그 나라 유명 작가의 책을 현지에서 읽어보자는 어렴풋한 생각뿐이었다.


카르타헤나
카르타헤나


내 정신과 뇌가 보통 사람처럼 기능했다면 그 정도의 책은 한두 달 사이에 다 읽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 정신은 시간도 놓치고 언어도 놓쳤다. 심지어 시야 마저 맑게 개이지 않았던 것 같다. 그 시절 실제로 눈에 초점이 없다는 말을 종종 들었다. 그래서 미처 다 읽지 못한 책을 주섬주섬 가방에 넣어버린 거다.


콜롬비아에서 읽을 작가는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였고 떠나기 전 그의 책 두 편을 읽었다. 당연히 '백년의 고독'을 먼저 읽었고 흥미를 느껴 '콜레라 시대의 사랑'도 완독했다.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을 읽었는지는 기억 나지 않는다. 읽어야 할 다른 책들도 많았기에 거기서 멈추고 콜롬비아 현지에서는 마르케스의 자서전 '이야기하기 위해 살다'를 읽기로 했다. 여행 계획에 마르케스의 고향 아라카타카(aracataca)도 추가했다. 시골에 가까운 지역이기 때문에 수도 보고타나 메데인에서 직행하는 버스는 없었다. 그래서 '콜레라 시대의 사랑'의 배경이 되었던 곳이자 마르케스가 거주하며 글을 썼던 카르타헤나를 거쳐 산타 마르타까지 갔고 그곳에서 아라카타카로 가는 버스를 찾아낼 수 있었다.


카르타헤나 산토 도밍고 광장


카르타헤나는 우리나라의 부산처럼 발달한 항구도시이자 카리브해의 정서를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좋은 관광지이기도 하다. 여행 초기였기 때문인지 그곳이 카르타헤나였기 때문인지 카리브해 문화에 대한 인상이 강렬하게 다가왔다. 이곳의 여름은 습도가 높아 팔에 맺힌 땀방울이 흐르지도 않고 맺혀 있었고 더위가 짓누르는 것처럼 오후를 채우고 있어서 경계석이나 도로변 그늘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앉아 있는 현지인들이 여럿이었다. 하지만 밤이 되면 사람들이 공터 어디에나 모여 단체로 라틴 댄스를 췄고 더위가 그치지 않았는데도 분주한 활력이 가득했다.


카르타헤나 마르케스의 집
카르타헤나 마르케스의 집 - 혼자 이러고 놀았다


마르케스의 자서전을 다 읽고 나서는 그가 살았다던 가히 저택같은 집에 가보기도 했고 '콜레라시대의 사랑'의 주인공들이 마주친 카르타헤나 대성당이나 카르타헤나 역사 박물관 같은 곳을 두루 둘러보았다. 그러고 나서 향한 곳이 아라카타카이다.


아라카타카


지금은 '백년의 고독'도 '콜레라 시대의 사랑도' 마르케스의 자서전도  기억나지 않지만 그때는 꽤 열심히 읽었던 모양인지 당시 썼던 블로그에는 이런 내용이 남아 있다.



마르케스의 고향 아라카타카는 산타 마르타에서 버스로 1시간 30분 정도 걸리는 작은 마을이다. 카르타헤나에서 기자로 일하고 있던 20대 중반의 마르케스는 어머니의 요청으로 아라카타카를 다시 찾게 된다. 집을 내놓기 위해 동행하자는 이유로 아들을 불렀지만 사실 마르케스가 법학과를 중퇴하려는 걸 말리려는 심산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마르케스는 오히려 이 여행으로 작가가 되어야겠다는 결심을 굳힌다. 폐허가 된 아라카타카의 정경과 환기된 과거의 기억이 영감을 주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자전적 성격의 <집>이라는 소설을 쓰기 시작했지만 완성하지 못하고 십수 년이 지난 후에야 <백년의 고독>이라는 소설로 탄생하게 된다.      


당시 마르케스가 묘사하는 아라카타카의 이미지는 황무지와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이곳도 한때는 호황을 누리던 적이 있었다. 마르케스가 아직 어렸을 때 콜롬비아의 지원을 받은 미국 기업 유나이티드 프루트 컴퍼니가 아라카타카에 자본을 투입해 대규모 바나나 농장이 들어섰다. 마을은 경제적으로 풍족해졌지만 사람들은 광기와 흥분에 쌓였다고 한다. 그 결과 마르케스가 9살 되던 해, 노동자들의 파업을 콜롬비아 정부가 무력으로 진압하면서 다수의 인명피해가 발생하는 사건이 벌어지게 된다. 외할아버지는 당시 경험한 일들을 손자에게 이야기했고 이 이야기가 마르케스의 머릿속에 깊은 각인을 남긴다. 아라카타카의 갈등과 폭력은 마르케스의 작품에서 콜롬비아 혹은 라틴 아메리카 전체의 현실과 맞닿는 이야기로 확장된다. 그가 어머니와 이곳을 찾았을 때는 자본이 물러나고 나서 마을이 완전히 몰락한 후였다.       


"유일하게 확실한 것은 그들이 돈, 12월의 바람, 빵을 써는 칼, 오후 3시경의 천둥, 재스민 향기, 사랑, 그 모든 것을 가져가버렸다는 것이다. 남은 것은 먼지 뒤집어쓴 편도 나무들과 햇빛 반짝이는 거리들, 기억 때문에 황폐해져 말을 잃은 사람들이 사는 목조 가옥들과 녹슨 양철 지붕들 뿐이었다." (이야기하기 위해 살다, 46p)



아라카타카 마르케스 생가


백년의 고독과 마르케스의 다른 소설들은 마술적 리얼리즘의 대표격으로 평가받는다. 어떤 이들은 이 용어가 제3세계를 특정 짓는다며 난색하지만 나름의 이유가 있는 법이다. 아르헨티나 보르헤스의 문학을 환상소설로 별도로 구분하는 것은 보르헤스의 세계에는 현실과의 접점이 없기 때문이다. 반면 마술적 리얼리즘의 문학들은 등장하는 이야기도, 묘사도 전혀 현실적이지 않지만 그 배경이 남미 대륙과 나라들의 역사와 맞닿아 있다. 불어 역사적 사실이 원형적이고 마술적인 세계 안에서 오히려 개개인의 감각이나 진실과 더 정확하게 맞닿을 수 있음을 확인하게 해주기도 한다.


아라카타카 마르케스 생가 - 안뜰의 나무


그럼에도 궁금했던 것 같다. 마술적 리얼리즘은 왜 뒤이은 작가들도 선택할만큼 남미 문학의 강력한 사조가 되었을까. 아라카타카의 마르케스 생가에서 확인한 것처럼 구전의 영향으로 상상적 세계가 섞여들었다는 것도 분명사실인 것 같았다. 카르타헤나에서 느꼈던 열에 들뜬 기운도 큰 작용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남미의 자연환경만큼 설득력 있는 것은 없었던 것 같다. 이후에 유럽을 여행했지만 남미와 같은 환경을 본 적은 없다. 아라카타카로 향하는 버스에서 봤던 끝도 없이 펼쳐진 바나나 농장이라거나, 볼리비아 고산지대에 올랐을 때 시시때때로 번쩍이던 번갯불, 칠레에서 만났던 거대한 둘레의 고사목들. 그런 풍경을 앞에 두고서 소상히 과거를 되짚는 일은 허무한 일이거나 그도 아니면 따분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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