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다니면서 가장 행복감을 느꼈던 곳을 꼽으라면 콜롬비아의 산마 마르타를 이야기할 것 같다. 코로나19를 전혀 예상도 하지 못했던 2016년 전후, 세계 여행이 일종의 유행이 되면서 여행자들의 글과 영상 속에는 항상 비슷한 다짐이 등장하곤 했다. 첫 번째가 세상의 다양한 풍경을 눈에 담겠다는 포부였다면 두 번째 목적은 언제나 전세계의 사람들과 소통하겠다는 의지였다.
세상을 포기하고 싶어서 여행을 떠났던 나는 처음 몇 개월만 해도 누군가와 소통하고 싶다는 마음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 카리브해를 바라보고 있는 콜롬비아의 작은 해안 도시인 산타마르타는 나에게 거의 완벽한 여행지였다. 특별한 명소가 없어 외국인에게 알려지지 않은 산타 마르타는 그냥 해변이 있는 시골 마을이다. 마르케스의 고향 아라카타카를 들르기 위해 이곳에 올 수밖에 없었는데, 외지고 작은 마을인 아라카타카에는 마땅한 숙박 시설이 없어 산타 마르타에서 버스를 타고 왕복하는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머무는 동안 게스트 하우스에서 일어나면 테라스 해먹 위에 느긋하게 누워 있다가 해변에 다녀오곤 했다. 해변과 상가를 가르는 도로 너머에는 여느 해변 관광지와 달리 늘어선 음식점이나 상점들의 풍경이 없었다. 그래서 이곳에서 시간을 보내는 동안은 무언가를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세계의 일상으로 불쑥 뛰어들어 몰래 훔쳐보는 느낌이 들었다. 아무도 나를 모를 뿐만 아니라 완전히 다른 세계인 이곳으로 도망쳐 은신하는 것만 같은 느낌. 주변의 정경이 그런 감상을 더 강하게 만들었다. 모든 해변은 저마다 다른 개성을 갖고 있다. 산타 마르타의 해변은 풍경이 수려하거나 웅장한 정서를 부추기는 곳은 아니었지만 일상과 휴식이 경계없이 놓여 있어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때 해변의 정감을 품에 넣어갈 수 있을 것만 같은 소박한 느낌을 불어일으켰다.
남미의 북쪽 끝, 지도 위의 점으로 바뀐 내 모습을 그리면서 해변을 걸으면 나는 작고 작아졌다. 그러는 동안 세상의 주변부로 완벽하게 사라지는 데 성공했다는 이상한 만족감이 가슴의 빈 곳을 채워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