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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명 Mar 16.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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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형태로 변화하기 위해서는 임계점을 넘어야 한다. 무언가가 끓어 넘쳐 다른 무언가가 되기까지 무수한 점들이 쌓이지만 지속되지 않으면 하나의 선이 되지 않는다. 점들이 이어져 선이 되는 순간은 아무도 알 수 없다. 멀리 떨어져 지켜보는 이들은 그 순간을 하염없이 기다리지 않아도 되지만 점들 각각의 입장에 서면 언젠가 자신 혹은 자신이 하는 일이 선이 되기를 끊임없이 바랄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바람 때문에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지 모른다.


정신질환 및 치유의 문제는 지난 몇 년 간 급격하게 공론화되기 시작했다. 우리 사회는 전과 달리 정신적 어려움을 저항할 수 없는 운명이나 개인의 몫으로만 바라보지 않고 스스로 노출하고, 공유하면서 적극적인 대처를 통해 개선할 수 있는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 의료서비스의 소비자라고 할 수 있는 환자들의 지평이 넓어지면서 전문가들도 의료적 대처 방안뿐만 아니라 다양한 접근을 시도하게 됐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정신질환에 있어 전문가들이 매우 보수적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으며, 젊고 소통을 중시하는 전문가 그룹이 당사자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 시도하는 다양한 활동들의 수혜를 받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문제를 겪고 있는 당사자들의 이야기가 좋은 반응을 얻었다. 기분부전장애, 우울증, 조울증, 조현병, ADHD 등 각각의 증상을 경험하고 또 겪어내고 있는 당사자의 서사와 연구는 의료적 접근이 어려운 이들이나 치료에 진전이 없어 힘들어하는 이들에게 위로를 주고, 당장의 대처 방안을 알려주는 친절하고 세심한 동행자가 되었다.


사회제도적 현실은 미동도 않고 있는 것 같지만 당사자들은 정신질환이 생의학적으로만 결정되지 않으며 사회경제적 환경 안에서 다양하게 발생하고 해석될 수 있음을 알려주었다. 정신질환에 있어 경험적 담론이 중요한 이유는 작용의 방법이 명백히 검증되었고 완치의 프로세스가 선명하게 나타나는 질환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울증이나 조울증에 걸렸을 때 우리는 신체의 한 부분이 전보다 기능하지 못할 때보다 더 많은 불안감을 느낀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된 건지,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치료될 수 있는지 확신할 수 없다. 또한 개개인이 직면하는 문제가 질환 안에서도 수없이 가지를 치기 때문에 경험자의 가이드가 소중할 수밖에 없다. 동반질환의 가능성이 높아 진단의 어려움이 있는 분야이므로 당사자가 질환에 대해 이해하고 스스로에게 맞는 개선법을 찾아가는 것에도 큰 도움을 준다. 의학적 진단 모델은 매우 분명하고 협소한 리스트를 통해 당사자의 상태를 결정하려 하지만 하나의 증상이 어떤 영향을 끼치며 어떻게 뻗어나갈 수 있는지를 알려주지는 못. 특히 아직까지 정신 의학은 어떤 질환을 진단 받고, 치료적 행동을 지속하고, 보다 개선되는 과정 안에서 사회와 관계 사이에 존재하는 인간에 대해서 설명하거나 대처 방안을 알려주지 않다.


우리가 사회 안에서 적응하며 살아가는 방법과 무수한 타협들 그리고 그 흔적과 성패의 과정을 알려줄 수 있는 건 우리 자신들 밖에 없다. 그래서 여전히 나는 더 많은 이야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아직 밝혀지지 않은 부분들도 우리는 이야기할 수 있다. 우리는 어떤 문제가 정확해지기 전까지 입밖에 내어서는 안 되는 의사나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울증과 경계선 인격장애가 결합했을 때, ADHD의 증상이 남들과 다른 이들에 대해, 중증 우울증이 완전히 삶을 가로 막았을 때 그리고 자신만 겪었을지 모를 정체불명의 어려움에 대해서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는 이야기할 수 있고 또 계속 이야기해야만 한다. 나 역시 나의 이야기를 진술하려고 한다. 아직까지는 점이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고 소통하기 시작했을 때 언젠가 선명한 길이 날지 모를 일이니까. 미래가 보이지 않고, 현실이 불가능해 보인다고 해서 선이 되는 일을 꿈꾸지 않을 이유는 없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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