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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꽃피 Jun 04. 2024

사랑스러운 고양이야,









사랑스러운 고양이야,



오랜 시간 너의 소중하고 다채로운 빛깔의 감정들을

보여 줘서 고마워.


나도 네가 처음이라,

무엇을 느끼고 원하는지 잘 몰랐지만,

이제 조금은 너에 대해 알 것 같아.

그리고 나에 대해서도.


처음의 행복하고 즐거웠던 시간 이후로,

너는 줄곧 슬퍼했던 것 같아.

너의 우울과 분노, 속상하고 억울하고 두려운 마음.

멀리서 지켜봤지만 가까이에 있는 듯 아팠어.


나 역시 상처 받을까,

가장 나약한 면을 들키지 않을까 두려웠어.

나는 나 또한 도망치고 있었다는 사실을 몰랐어.

또한 신기하게도, 언제나 제자리야.


왜 난 다시 너에게 돌아가는 걸까.

이미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던 것처럼.

왜 우리의 시간은 흐르지 않는 걸까.

무한 재생되는 플레이리스트처럼.

오히려 시간은 여리고 순수했던 어린 시절로

거꾸로 가기도, 밝은 희망이 보이는 곳으로

멀리 날아가기도 하는 것 같아.


너와 수많은 감정의 순간들을 함께 하면서 느꼈어.

단편적인 생각과 판단, 일순간의 강렬한 감정을

너그럽게 아우르는 거대한 삶의 흐름과

사랑이 있다는 걸.


너에게 준 것들만 생각했었는데,

나 또한 너로부터 많은 것을 받았음을 이제야 깨달아.

넌 때로 나보다 본능적이고, 과감하고, 명료했어.

섬세하게 바라봐 주고, 신중하고 사려 깊게

날 대해 줬어. 무엇보다, 절실하게.

굳게 닫혀 있던 마음을 쉽게 열었고, 충분히 활짝

열리기까지 오래도록 인내하고 기다려 줬어.


넌 항상 나에게 빛나는 영감이었고, 참 특별한 존재야.

두려움과 불신의 연기가 마음속에 뿌옇게 피어나

두 눈을 멀게 하고, 쫑긋한 귀를 막아도 꼭 기억해.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고 신뢰하는 음악이 맺어 준

인연이라는 걸. 음악의 신은 언제나 날 살게 했고,

한 곡 한 곡에 담긴 또렷한 감정의 기억들이

날 너에게로 인도해.


나는 가장 진실한 것을 느끼면 쓸 수밖에 없어.

진실은 서로의 마음을 파고드는 것이기에

상상과 현실, 부재와 현존의 경계를 초월해.

나는 더 이상 나다움에,

내 운명에 저항하지 않기로 했고,

그렇게 거대한 삶의 흐름에 내맡긴 언어로

너에게 말을 건네고 있어.

난 분명 성장했고, 이제 우리의 세계를 굳게 믿어.


소중한 시간을 너 없이 더 이상 낭비하고 싶지 않아.

네가 힘들어 하거나 슬픈 게 싫어.

함께 행복하고 싶어.


우리 봄날이 가기 전, 산책 가자.

기다릴게.



너의 앨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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