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사랑 출국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배종훈 Apr 10. 2023

사랑 출국5

소설연재-5화. 동행


늦은 시간이라 차가 적어서 천만다행 헤매지 않고 퐁네프다리 근처 골목 입구까지 무사히 도착했다. 그런데 그녀는 내릴 준비도 하지 않고 핸드폰만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집 주인이 계속 연락이 안 되나요? 시간이 너무 늦었나? 주소를 보고 함께 걸어서 찾아볼까요?”
 “계속 민폐군요. 죄송해요.”

 그녀는 미안해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속이 고스란히 읽히는 그녀를 두고 먼저 차에서 내렸다. 그녀도 급히 우산을 챙겨들고 따라 내렸다. 
 분명 숙소 근처에 다 오긴 한 것 같은데, 주소 하나만으로 늦은 시간에 집 찾기가 너무 어려웠다. 비까지 세차게 내려 길을 물을 만한 사람이나 상점도 없었다. 주변 골목을 몇 바퀴 돌다가 하는 수 없이 차로 돌아왔다. 그녀는 다시 집주인에게 전화를 걸었고 긴 통화 연결음이 조용한 자동차 안에 울렸다. 집주인은 전화를 끝내 받지 않았다. 그녀는 조급하고 약간은 울 것처럼 보였다.

 “뭔가 문제가 생겼나 봐요. 여행하다보면 이런 일이 간혹 있어요. 별의 별 문제가 다 생기곤 하죠. 여행이니까. 혹시...... 좀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파리에 특별히 만날 사람이나 일정이 없다면... 저랑 동행해서 아비뇽으로 함께 가는 건 어때요? 아비뇽에서 며칠 묵으며 주변 프로방스를 둘러볼 생각이니 항공사에 이야기하면 짐도 그리로 부쳐 줄 거예요. 가방을 찾으면 여정을 바꾸셔서 거기서 헤어져도 되니까요. 이렇게 비가 오는데 혼자 두고 갈 수가 없네요. 특별히 대안이 없으시다면 제 제안이 어떠세요?”

  나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아무리 남자가 사심 없이 한 말이라 하더라도 늦은 시간, 낯선 나라에서 몇 마디 나눈 게 전부인 모르는 남자와 함께 차를 타고 장거리를 간다는 게 여자로서는 부담스런 일이리라.  
 그녀는 한참동안 가만히 있다가 약간 억지스럽게 밝은 표정을 지었다.

 “정말 그래도 괜찮을까요? 오늘 완전히 민폐녀가 되는군요. 파리도 비도 저랑은 안 맞나 봐요. 어제까지도 연락이 닿은 숙소 주인도 잠적해 버리고 짐은 여전히 중국에 있고요. 후우... 파리에 있으면 여행 시작부터 다 망칠 것만 같아요. 제가 짐이 되지 않도록 할게요. 며칠 지내보고 불편하시면 따로 가자고 하셔도 괜찮아요.”
 “그래요. 불편하면 바로 헤어지자고 말씀드릴게요. 그럼 우선 아비뇽에 숙소를 잡고 그 숙소의 주소를 공항 직원에게 다시 알려줘야겠네요.”
 “네, 그래야 할 것 같아요.”
 “우선 여기서 빨리 벗어나요. 조용한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뭐라도 먹으며 예약도 하고 전화도 해요. 오늘 파리의 날씨는 최악이에요. 어서 출발해요, 우리.”

 그녀는 고심 끝에, 망설임 끝에 꽤 용기를 내어 말한 듯 보였다. 계획과 예상이 틀어져야 여행이 여행다워지는 법. 시나리오라는 게 늘 내가 짜놓은 그대로 흘러가지는 않으니까. 여행의 시나리오든, 인생의 시나리오든.   
 우리는 다시 푸조를 타고 달렸다. 파리에서 아비뇽까지는 약 960킬로미터. 낮에 아홉 시간을 운전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닌데, 열세 시간 비행을 마치자마자 바로 출발하여 밤 운전을 계속 하고 있다. 여전한 긴장감 때문인지, 시차 때문인지 잠도 오지 않는다. 분명 출발 전의 계획은 ‘첫 날 : 파리 도착. 근교나 고속도로 주변에 있는 호텔에서 하루 쉬고’였는데! 
 계획을 벗어나는 순간부터 진정한 여행의 시작이라더니, 나의 여행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셈인가? 공항에서 운전을 시작한 뒤부터 벌써 네 번째 에스프레소를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마시고 있다. 머리는 멍했지만 기분은 좋았다. 비는 리옹을 지나면서 그쳤고, 운전도 익숙해졌으며, 어쨌든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며 갈 수 있다는 것이 괜찮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