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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사랑 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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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종훈 May 16. 2024

사랑 출국 6

아비뇽의 저녁

그녀와 나는 오세르의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아비뇽의 YMCA호스텔을 예약했다. 론강과 구교황청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있고 무료주차가 가능한 곳이었다. 자동차로 이동하는 여행에서 주차문제는 고민거리 중 하나다. 구시가지에 있는 작은 호텔이나 호스텔은 자동차가 지나갈 만한 공간도 없는 곳이 많았다. 그래서 숙소를 찾을 때 가장 먼저 주차 가능 여부를 따졌다. 다행히 이 호스텔은 사진으로 봤을 때도 굉장히 큰 마당이 있어 다른 곳을 더 찾아볼 필요가 없었다. 물론 비용도 저렴했다.

 

 해질 무렵 도착한 아비뇽은 상상한대로 아름다운 도시였다. 자동차의 왼쪽으로 도시를 감싼 오래된 성벽이 늘어서 있고, 오른편으론 론강이 바람과 함께 흐르고 있다. 피곤했는지 꽤 오랫동안 눈을 감고 있던 그녀도 창밖의 론강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여기도 퇴근시간엔 도로에 차가 많네요. 하지만 바람도 시원하고, 강에 비친 저녁 해가 예뻐요. 집 생각이 나네요. 이게 론강이죠?”   
 “론강 맞아요. 바람이 시원하긴 한데 금방 추워지네요. 아까 창문 열었다가 금방 닫았어요.  어릴 때도 놀다가 해질 무렵이면 집 생각이 나곤 했죠. 바로 들어가진 않았지만... 이제 다음 다리를 건너면 도착이에요.”


 분명 네비게이션은 1킬로미터 남짓 남았다고 알려줬는데, 우리가 예약한 유스호스텔은 그 자리에 없었다. 아무 것도 없는 도로 중간쯤에서 네비게이션은 도착을 알리고 입을 닫았다. 나는 우선 차를 길가에 있는 공용주차장에 세웠다. 그녀가 스마트폰에 담아왔다는 구글 지도를 열어 호스텔을 다시 검색했다. 숙소는 다리를 건너 우회전이 아니라 직진을 했어야 했다. 잠시 자동차에서 내려 뻐근한 목과 팔다리를 풀었다. 마음이 한결 놓이는 게 어딘가에 도착하긴 한 모양이었다.


 부산하고 불안하던 마음이 안정되고 나니 이런저런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늘 이 모양이었다. 힘들고 어려운 순간에도 여유를 갖자고 남들에겐 당연한 듯이 늘어놓으면서도 막상 내 자신은 한 치의 여유를 못 찾고 허둥대기 일쑤였다.


 스마트폰 지도를 살펴본 후, 차를 돌려 다시 다리로 돌아갔다. 우회전해서 조금 더 올라가니 건너편으로 드디어 유스호스텔 간판이 보였다. 휴우, 한숨이 절로 나왔다. 비 내리는 샤를드골 공항에서부터 이곳까지 열 시간 가까이를 어떻게 달려왔는지 아득했다. 그래도 처음치고는 나쁘지 않았다고 혼자 다독이며 살짝 웃었다. 그녀는 마치 내 마음을 다 들여다봤다는 듯 웃으며 칭찬을 했다. 

 호스텔 담당자는 친절하고 반갑게 우리를 맞아주었다. 겨울에 찾는 사람이 많지 않은지 약간 신나고 들뜬 것 같아 보이기도 했다. 체크인 후 담당자를 따라 숙소가 있는 건물로 이동했다. 건물은 돌로 만들어져 조금 낡아보였다. 하지만 나름 분위기는 좋았다. 담쟁이나 꽃으로 가득 둘러싸인 여름이라면 한결 아름다웠겠다는 생각을 하며 걸었다. 담쟁이 건물은 초록의 싱그러움이 사라진 계절엔 왠지 쓸쓸하고 서글퍼 보였다.


 삐걱거리는 나무문을 열고 들어선 공간은 조금 을씨년스러웠다. 짙은 갈색의 문, 걸을 때마다 삐그덕 소리가 나는 계단, 빛이 들지 않는 어두운 실내, 붉고 낡은 카펫. 이거 뭐 완벽한 호러영화의 한 공간이었다. 마침 발소리도 없고 표정도 없는 노부인까지 스윽 지나가 주신다. 이곳에 혼자 오지 않은 것이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을 그 사이에 수십 번은 더 한 것 같았다. 그녀와 나의 방은 복도 끝에 나란히 붙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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