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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주 Jun 26. 2023

퇴사를 고민하게 되는 순간

작별도 연습이 필요하다


IT업계에 비전공자로 입사한 1년간의 이야기 - 10


누군가 나에게 지난 1년 3개월이 넘는 기간 동안 최선을 다해 달려왔는지 물어본다면 나는 잠깐 고민을 한 뒤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다.


온전히 회사에 쏟은 시간이 전부는 아닐지라도 나는 매사에 진심이었다. 울고 웃어가며 열린 마음으로 살았다. 작은 경험이라도 두려워하지 않고 뛰어들었고 작은 말에도 쉽게 상처받았다. 반대로 작은 말들이 나를 나아가게 하기도 했다.


하지만 누군가 나에게 지난 1년 3개월 동안 얼마나 배웠고 얼마나 늘었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잘 모르겠다.’ 고 답할 것이다. 나는 여전히 얇고 좁은 지식으로 모르는 걸 마주하기 급급하다. 나에 대한 부끄러움은 1년 3개월이 넘는 순간동안 내내 나를 따라다녔고 향후 몇 년간 절대 이 감정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란 걸 안다.


모른다는 것이 얼마나 부끄럽냐면, 누군가 이걸 폭언에 가까운 언행으로 나를 직시시켰을 때 주변에서 공황 장애의 초기 증상이 아니냐는 말을 들을 정도로 스트레스가 심했고 부끄러운 순간을 마주할 때마다 일상을 모두 토해내고 나를 몰아붙이곤 했다. 불과 어제 대회에 참가한 순간마저 ’열심히 좀 해라 ‘라는 선배의 말 한마디에 ’나 자신을 괴롭히고 싶을 만큼‘ 스스로 자괴감에 빠지기도 했다.


그동안 눈이 나빠지기도 했고, 강박관념이 심하게 생기기도 했다. 배우고 싶은 원데이 클래스가 생겼을 때 ‘나는 왜 이렇게 하고 싶은 게 많을까. 다른 생각이 드는 것마저 죄책감이 든다.‘고 말하며 내가 욕심을 내도 되는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엄마에게 물음을 구했다.


이 모든 생각들이 속상하다. 보안 업계에 일하면서 매번 어려움을 마주하는 순간이 불행까지는 아니더라도 내 삶을 자꾸만 막다른 길로 내몬다. 그리고 그건 ‘객관적인 누군가의 시야’로 당연한 일이다. 보안 업계에 일하면서 이렇게까지 모르는 게 많은 건 부끄러운 일이다.라는 게 나를 자꾸만 다치면서 달리게 한다.


이제는 어쩌면 이 업계와 작별할 시간이 다가온다는 생각을 한다. 나를 망가뜨리면서까지 살아오고 싶지는 않다. 나는 살면서 취미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던 사람이다. 이장욱 작가의 말마따나 내게 ‘미학은 취향을 바탕으로 독자적인 개인으로서 자유를 성취’할 수 있게 해 주고, 취미를 갖는다는 건 내가 무엇을 할 때 행복하고 명료해지는 지를 알게 해 주는 귀중한 시간이다.


회사 일은 나에게 재미를 주고 성취감을 느끼게 해 준다. 하지만 이 모든 게 내가 가족과 나누는 시간마저 공부와 저울질하고, 내 삶을 누릴 수 있게 하지 못할 정도로 나를 억압하면 안 된다. 다른 걸 모두 내려놓으면서까지 달리는 건, 어렵다. 중요한 걸 놓치면서 살고 있었다며 언젠가 내가 후회를 하는 순간이 있을 것 같다. 나는 이미 삶에서 중요한 걸 잃어봤으니까. 사람이 살아오면서 후회를 느끼는 순간들이 언젠지 어렴풋이 안다. 나를 돌보는 것. 사랑을 나누는 것. 사랑하는 일. 주변을 돌보는 일. 중요한 신념을 잃지 않는 일. 인생에 정말 중요한 건 그런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차라리 내려놓고, 다시 배우는 게 나를 행복하게 하는 올바른 길일 수도 있다. 올 초에 유학을 가는 친구를 보면서. '저런 삶도 내가 행복해질 수 있는 길 중에 하나지 ‘.라는 생각을 했다. 내 곁엔 아직 과감하게 하고 싶은 일을 찾는 친구도 있고, 자신의 꿈을 꼿꼿하게 쫓는 사람도 있다.


사람마다 성격이 다르고 맞는 관계가 다르고, 입는 옷 듣는 노래 취향이 다르듯 사람이 사는 방식도 자신에게 맞는 방식이 있다고 믿는다. 연구직을 내려놓았을 때 더 행복할 수도 있고, 이 업계를 내려놓았을 때 그럴 수 있다. 혹은 포기하지 않고 끝끝내 이 길을 걸어 ’마침내‘ 부끄럽지 않은 나를 마주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자기 검열의 시간은 언제나 필요하다. 그리고 이 자기 검열을 위해 나는 내 삶의 브레이크 포인트를 몇 개 걸어둔다. 3주 동안 미국에 가고, 하와이 휴양을 떠나고, 여러 차례 회사에서 자는 이 모든 순간이 내 선택을 더 명징하게 해 줄 것이라고 믿는다. 포기도 죽어라 해봐야 결정할 수 있을 것 같다며 당분간 몰입을 선택했으니까,


회사를 다니면서 일부 사람들이 느끼듯 가슴 뛰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엔 업계 내에서 사회에 기여하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후배를 양성하는 일도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고 나를 믿어주는 사람들에게 보답하고 싶다는 생각도 한다. 다른 모든 걸 포기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한다. 욕심엔 선택이 필요하다.


착한 딸, 좋은 친구, 실력 있는 팀원, 스스로 행복한 나마저도 모두 하나 내려놓기 어려운 중요한 역할이다. 나를 살아오게 한 책임감이기도 하다. 하지만 누군가 하나를 포기하라고 한다면 과감히 실력 있는 팀원의 역할을 내려놓겠다. 혹은 뭐 업계에 일하면서 워라밸을 찾거나 더 공부를 하는 시간을 갖거나 내 마음을 보호하는 법을 더 배울 수도 있겠다.


결과적으로 최선을 다해야 이 길의 끝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마음을 다해야 애증이 한껏 담긴 이 업계를 뒤돌아보지 않고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언제나 내가 말했듯 ‘어디서든 행복할 수 있는’ 나의 삶을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하는 일과 작별하는 일은 언제나 마음을 다 쏟는 일이다. 작은 마음까지 모두 뱉어내 내가 걷지 못할 길이라는 걸 인정하고 상대와 스스로를 축복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최선을 다해 살아보겠다. 과감히 이별하기 위해서. 부딪히면서 사는 이 모든 순간이 나를 성장하게 해 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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