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명주 May 05. 2023

“핑거 프린세스”가 뭔데요?

직장 내 첫 별명이 공주님이었던 썰에 대하여


IT업계에 비전공자로 입사한 1년간의 이야기 - 1


연구 팀으로 부서를 옮기고 개인이 아닌 팀으로 일을 처음 해본 나는 모르는 게 있으면 하나부터 열까지 선배님을 잡고 물어보곤 했다.


설치가 안 되는 프로그램, 실행 에러, 문서를 쓰는 사소한 문제에서부터 회사 내 문의 메일을 쓰는 법까지 선배님의 발목을 잡았다. 나는 그동안 학원에서 학교에서 직접 문제를 해결하는 법보다 질문하는 법을 먼저 배워왔고 그게 당연한 일인 줄 알았다.


심지어 비전공자인 나는 IT업계에서는 기본으로 여겨지는 미덕을 갖추지 못한 상태였는데, 예를 들어 구글링을 하는 법, 에러를 해결하는 법은 컴공과라면 평생 수없이 맞닥뜨리는 일이다. 우리는 이 능력을 “에러를 해결하는 힘”이라고 한다.


업계에 대해 가방끈이 짧은 나는 기본적으로 해결하는 법을 잘 익히지 못했다. 에러를 마주하면 당황했고, 구글링을 하는 능력도 없었다. ( IT 업계에서는 구글링도 업무 스킬 중 하나이다.) 내가 몇 시간을 검색해도 나오지 않던 정보를 선배님은 클릭 몇 번에 턱 턱 찾아내곤 했다. 언젠가 선배님이 참다못해 나에게 핑거 프린세스라는 용어를 알려주었다. “선임님 같은 사람을 우리 업계에서 핑거 프린세스라고 해요.”


아직도 황당한 건 뭣도 모르는 나는 처음에 그게 뭔지 모르고 프린세스라는 단어에 꽂혀 왠지 좋은 말인 것 같은 느낌을 받았는데, 완전히 욕이나 다름없는 말이었다는 걸 생각하면 지금도 웃음이 난다.


핑거 프린세스란 직접 찾아보지 않고 물어보는 사람을 비꼬아 지칭하는 말이다. 직접 구글링을 해 클릭 몇 번 하면 나오는 정보를 검색해 보지 않고 물어보는 사람을 핑거 프린세스라고 부른다. 손가락을 움직이지 않아서 공주님이다.


가끔 선배님은 내게 ”~하세요 공주님 “이라면서 나를 불렀다. 웃기게도 놀림을 받아도 기분은 좋았다. 처음 해보는 걸 어쩌겠는가. 그리고 공주님이라는데 이래나 저래나 공주가 아닌가?


이제는 구글링 하는 법도, 밤새워 에러를 해결하는 법도 안다. 에러를 찍어 데이터의 흐름을 파악하는 일이나 감으로 동작 원리를 파악하는 일도 자연스럽게 배우게 되었다. 뒤를 돌아보면 일 년 전엔 참 바보 같았고 모르는 게 정말 많았다. 원래 처음은 다들 그렇다지만 유독 스스로가 별나게 느껴지기도 한다.


누군가에겐 핑거프린세스라는 말이 상처가 되거나 조롱의 뜻으로 느껴지겠지만, 나에겐 추억이 담긴 단어다. 다들 처음엔 그렇게 크는 게 아니겠는가. 보통은 대학교 1~2학년 때 이 과정을 거치곤 하지만 나는 입사 후에 배웠다는 게 남들과 다른 점인 것 같다.


작년 이후로 공주님이라고 소리는 더 이상 듣지 않게 됐는데 부족한 점이 많아 여전히 선배님들한테 여러 놀림을 받고 있다. 열심히 한다. 실력이 귀엽다부터 선린 고등학교 1학년보다 선임님이 모르는 게 많은 거 같다며 가끔 센 펀치를 날리시곤 한다.


옛날엔 이런 소리를 들으면 눈물이 핑 돌았는데 지금은 능청스럽게 넘어간다. 일 년간 열심히 성장해 온 스스로를 알기에 남들의 말에 쉽게 상처를 받진 않는다. “선배님 ~ 저 IT업계 들어온 지 얼마 안 되신 거 아시잖아요. 앞으로 더 성장하면 되죠~”하면서 애교를 부린다.


선배님들도 이젠 ”너도 십 년 구르면 나처럼 될 거야. 어리잖아 괜찮아.”라며 나를 다독여주곤 한다. 어딜 가나 성실함과 진심은 통하는 법이니까. 결국 신입시절을 강하게 이겨냈다가 결론이려나!


아직도 부족하지만 알에서 깨고 나온 병아리정도는 되지 않았을까요? 선배님!

작가의 이전글 비전공자 화이트해커로 살아남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