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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주 Sep 27. 2023

미국 세 달 살기 일지 (2) 경험

퇴사 후 여행 와서 얻은 두 번째

  

내심 한국에 가는 날을 고대했다. 이동 수단도, 집 앞에 헬스장도, 편의점도 없는 이곳이 답답했다. 한국에 가서 가장 하고 싶은 일은 먹고 싶을 때마다 아이스크림을 사 먹는 일이었다.


그래도 심심하고 사랑스러운 이곳이 좋다. 다시 오고 싶고 다시 꿈꾸고 싶다. 오늘 친구와 통화를 하면서 "한국에 가기 싫어. 더 놀고 싶다. 언제든지 오게 면허증 다시 받아놔."라고 이야기를 했다. 전화를 끊고 나선 계속 기뻤다.


놀고 싶다는 감정이 생소하다. 결과물이 나오는 가치에 집중하며 사는 나에게, 매일 밤 불투명한 미래를 자책해 온 나에게 찾아온 나른함이 작은 쾌감을 준다.


4년 전에 이곳에 왔을 때는 집에만 있었다. 좋아하는 음식점이라곤 흔한 체인점인 Cheesecake Factory가 전부일정도로 무지했다. 이번 삼 개월은 매일을 정의 내릴 수 있을 정도로 다양한 하루를 살았다.


내가 거주하는 곳인 메릴랜드 근처엔 안 가본 곳이 없을 만큼 다녔다. 버지니아, 필라델피아, 워싱턴 DC, 뉴욕 쪽 동부와 LA, 샌디에이고, 라스베이거스, 유타, 시카고를 거쳐 한국에 돌아간다. 맛있는 음식점을 가면 영수증을 오려 다이어리에 붙였다. 티켓이나 사진, 안내 책자 등도 모두 오려 붙였다. 소중한 기억들을 오래 소중하게 여기고 싶었다.



다시 살고 싶은 하루를 여러 번 마주했다. 매일 예쁜 노을을 기대하고 사는 것처럼. 다시 감동을 주는 하루를 기대하면서 살아갈 수 있게 됐다.


길 위에서 친구가 되는 법을 배웠다. 무작정 인스타 아이디를 공유하고 친구가 됐다. 사 년 전에 알게 된 언니를 내일 다시 만나듯 언제든 다시 만날 수 있는 인연들이라고 생각하면 귀하다.


한 달 정도 짧은 연애를 했다. 사촌네 집에서 알게 된 지인들, 지인의 친구들, 바에서 알게 된 친구. 소개받아 알게 된 친구. 그중에 한 명과 연애를 했다. 타국에서 사는 내 모습을 가장 강하게 상상해 봤다. 여기 와서 미숙한 내 영어를 이해해 주는 모든 이들은 상냥했다.


'사랑의 이해(에리히 프롬)'에서 타인을 통해 세상을 보게 되는 것이 사랑이랬나. 연인의 시선으로 미국을 바라보게 된 건 큰 축복이었다고 생각한다. 선물 보따리를 한가득 품에 안고 돌아간다.


얼마 전에 억양이 강한 프랑스 친구와 이야기를 나눴다.

F: 나는 영화감독일을 해.

M: 와 멋지다. 나도 예술을 좋아해. 내가 처음 IT에 들어왔을 때 프로그래밍이 예술적이라고 생각했어.

F: 나는 예술이 모든 것에 들어있다고 생각해. 예술은 어디에나 있어. 예를 들어 **는 전혀 예술이라고 생각이 들지 않지만 **엔 예술이 필요하잖아? (블라블라)


술을 먹다 한 이야기라 정확한 기억은 나지 않는다. 그때의 강한 인상만이 기억에 남는다. 생각이 통했다는 기쁨. 여기 와서 인상에 남는 순간이 많다. 가끔은 언어 문제를 불문하고 생생하게 하고자 하는 말이 와닿았다.


타인의 눈을 빌려 나를 발견하고, 타인의 생각을 살피는 건 즐겁다. 새로운 만남을 두려워할 때마다 생각을 멈추고 행동을 했다. 모든 시도는 값지다고 지나온 삶에서 배워왔기 때문에 시도해볼 수 있었다.


도전하려고 애쓴 삼 개월은 다시 또 나의 근거가 되어 앞으로의 삶에 지표가 되어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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