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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IFT Aug 10. 2015

기도를 미처 마치기도 전에

주인의 며느리감을 구하러 간 하인은 아주 손쉽게 소기의 목적을 성취한다. 심지어 '기도를 미처 마치기도 전에(창24.15)'.

과연 삶에서 그런 일이 일어날까? 누구나 경험했듯 그럴 일은 없다. 있어도 아주 드물다. 하지만 그러길 늘 바란다.  


하인은 '기도를 미처 마치기도 전에' 며느리감을 찾았지만, 큰 맥락에서는 꽤나 오래 걸린 기도이며, 믿음의 걸음이 여전히 필요한 가운데 일어난 에피소드에 가깝다. 심지어 그 뒤에는 '일이 이쯤 되니(창24:26)...' 이건 머 순탄, 형통, 순적 등등으로 표현될 만큼 척척 진행된다.


종교를, 좁게는 기독교에 어느 정도 몸 담은 사람이라면 모두 이런 삶을 꿈꿀 것이다.


하지만 오늘 인생이라는 길 위를 살아가며 동시에 존재하는 나는 실제로는 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있다.


문제는 착오가 신에 대한 오해와 분노로 변이될 때 일어난다. 열에 단백질이 변형되어 뽀글뽀글 파마가 되듯 나의 뜻대로 되지 않을때 그 화(가 담긴 )살은 어딘가로 날아가야 할 거 같다. 여기서 자기와의 싸움이 일어난다. (물론 요즘 현대인들이 매일같이 겪는 자기와의 싸움은 사이트 비밀번호를 모를 때 제일 심각하게 일어난다. 비번을 정하던 날의 나는 타인이 아닌가 싶을 정도니까.. )


조금 더 큰 맥락에서 보자면 이 이벤트 역시 굉장히 길게 기도하고 준비한 흐름 안에서 이 하인이 우연히 기도를 마치기 전에 발생했을 따름이다. 그러니 부러워할 거 없다고 나를 다독이며 화를 삭혀본다.


성경은 case스터디를 위한 거지 기복의 달성을 위한 답지 제공에 초점지워져 있지 않으니까.  창문 열고 잔다고 아문센이 되지 않고, 피아노 치면서 흥얼댄다고 글렌굴드가 되는 게 아닌 것처럼. 기도는 매일 마쳐진다. Pray must go 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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