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남자친구의 소개로 괜찮은 사람을 만났다. 상대를 편안하게 해주는 사람이었다. 그의 노력도 있었겠지만 그의 가치관이, 풍기는 분위기가 편안했다. 그가 말하는 모든 내용은 내가 수용할 수 있는 범위 안에 있었고, 내가 말하는 모든 내용을 그는 수용해 주었다. 게다가 활동적이고 사교적인 면까지 나와 비슷했다. 이런 사람과 연애하면 잔잔한 파도처럼 기분 좋게 떠다닐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가장 치명적인 단점은 이성적인 매력이 없다는 점이었다. 키를 잘 보지 않는 나이지만 168 정도의 남자는 그저 친구로만 보였다. 나보다 두 살 많은 오빠지만 자꾸 나이를 잊게 되기도 했다. 많은 친구들이 사귀다 보니 좋아졌다라고들 하지만, 나는 심히 고민이 되었다.
아직 고백한 것도 아니니 일단 만나보자 했고 느긋해 보여 생각할 시간이 많을 거라 생각했는데 네 번째 만남에 사귀어보자는 요청을 받았다. 생각보다 선뜻 사귀어 보겠다 생각이 들지 않는다. 좋은 사람에게 상처를 줄 것 같은 두려움이 생긴다.
그러자 한 가지 물음이 생긴다.
"좋은 사람에게 상처를 주기 싫은 거라면, 나쁜 사람에겐 상처를 줘도 된다는 건가?"
무척 이분법적인 사고이다.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은 주관적인 것인데 내 가치관대로 둘로 나눠놓고 나쁜 사람에겐 맘껏 상처 주고 싶었던 과거가 떠오른다. 내가 좋게 생각하는 사람, 내 옆에 두고 싶은 사람에게는 지독히도 자기 방어를 하지 못한다. 내 영역을 침범해 와도, 내게 무례하게 굴어도 똑 부러지게 표현하는 법이 없다.
그렇게 쌓인 나의 분노, 나의 공격성은 나쁜 사람에게 쏟아진다. 과도하게...
지나 보면 나쁜 사람이 나쁜 사람이 아닌 적도 많았다. 내 상황 때문에, 나의 기분 때문에, 오해 때문에 잠깐동안 매우 불쾌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과도한 분노 때문에 좋았던 기억들마저 얼룩진 느낌도 들었다. 좋은 사람에게 상처 주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나쁘지 않을지도 모르는 사람과의 관계를 망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좋은 사람에게 상처 주고 싶지 않아."라는 생각을 "좋은 사람에게도 나의 경계는 지키고 싶어."라는 말로 바꾸어 보려고 한다. 나의 경계로 인해 상대가 상처를 받느냐 받지 않느냐보다 중요한 건, 내 경계를 지킴으로써 좋은 관계를 장기적으로 이어갈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상대가 상처를 받더라도 나의 경계를 존중해 줄 수 있는지를 보는 것이다.
좋은 사람에게 상처 주고 싶지 않다는 생각은 잘 접어두고, 좋은 관계를 이어나갈 수 있는 사람인지 좀 더 살펴보고 결정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