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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기장 Sep 03. 2023

이별에 집착하는 여자

상대방의 결정 수용하기

  20대부터 연애를 시작하여 연애기간이 아무리 짧아도 100일 전후였는데, 작년부터 이상하리만치 짧은 연애들을 하고 있다.

  일주일 혹은 이주일...



  신기하게도 내가 푹 빠져 누군가에게 신나게 자랑하고 싶은 그런 연애였다. 마음이 들뜬 만큼 빨리 끝났기에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해 괴로웠다.

  어떤 이는 애초에 싹이 보였다. 만나고 있을 때는 누구보다 나를 좋아하듯 200%로 애정을 쏟아부었고, 그러다 얼굴이 안 보이면 오늘 굉장히 피곤해서 겨우 너와 연락하고 있노라고 생색을 냈다. 그러면서 무관심하기 일쑤이다가 어느 날 보고 싶다며 갑작스레 집 앞에 찾아오기도 했다. 누가 봐도 비일관적인 행동이었지만 나는 뭐라 그리 좋았는지 200%의 애정에만 집중했다. 그렇게 썸을 타다 사귄 지 일주일 갑작스러운 이별 통보를 받았고 나는 그가 어떤 사람이기에, 어떤 상황이기에 그랬는지, 내가 뭘 잘못했는지 끊임없이 머리를 굴렸다.



  어떤 이는 일관되게 바싹 다가왔다. 자주 만날 땐 이틀에 한 번 만남을 가지고 그렇지 않을 때는 새벽 한 두 시까지 통화를 했다. 외모도 매너도 완벽했던 그였기에 꿈만 같았다. 우리는 서로에게 반한 거라며, 항상 붙어있는 느낌으로 하루를 보냈다.

  그리고 이주 뒤 카톡으로 이별통보를 받았다. 저번 연애는 그 사람의 기복으로 인해 끝난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번엔 달랐다. 일관되게 젠틀하고, 일관되게 애정을 주는, 완벽한....

  아, 어쩌면 완벽함이 주는 부자연스러움을 느끼지 못했다. 말 한마디에 눈치 보고 조심하고, 내가 원하는 모든 것들이 괜찮다고 하고, 나의 모든 것들을 수용한다 했다. 그저 연애 초기에 반했을 때 할 수 있는 행동일 거라고 생각했다.


  너무 괴로웠다. 모든 것을 수용한다고 한 그에게 내가 너무 많은 것을 쏟아낸 것이 아닐까? 너무 내 맘대로만 하고 그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궁금하지 않았던 것일까? 내가 앞으로 뭘 하면 그를 잡을 수 있을까?

  그는 젠틀하게도 정리는 만나서 하고 싶다고 했고, 바로 당일에 약속을 잡았기에 나는 그가 여지를 주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지만 그는 왜 나를 만날 수 없는지 더 정확하게 정보를 전달할 뿐이었다.

  "우리는 성향이 맞지 않아. 처음엔 조금 다르다는 걸 알았지만 이 정도로 다른지는 몰랐어. 나는 큰 갈등을 원하지 않아서 너무 다른 사람은 만나고 싶지 않아."

  그는 놀랍도록 무덤덤했다. 내가 느꼈던 감정은 무엇일까? 그는 나와 모든 걸 함께하고 싶어 했고, 나의 모든 것을 궁금해했다. 이게 감정적인 게 아니었다면 그 누가 이렇게 까지 많은 시간을 함께할 수 있을까?

  내 머릿속의 물음들에 집착했다. 혼자서는 풀어갈 수 없기에 그에게 물음표들을 쏟아냈다. 그는 이성적으로 최대한 대답해 줬지만, 내게 푹 빠져있던 그가 이성적으로 구는 상황이 이해가지 않았다. 내가 정리를 하지 못하자, 일주일을 지내보고 정리가 안되면 연락하라 했다.



  일주일이 지나 그를 만났다. 그는 내가 만나자고 할지 몰랐다고 했다. 당장 놓지를 못하길래 만나자는 여지를 주면 알아서 정리하고 만나지 않을 줄 알았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일주일 동안 수많은 물음표들을 안고 있었다. 그중 가장 큰 물음표는

"내가 뭘 잘못했을까"였다.

  지독히도 괴로운 질문이었다. 상대는 내게 완벽한 사람이 되어줬는데 내가 망쳐버린 것 같다는 자책감. 그는 좋은 사람인데 나의 어느 부분을 엿보고 놀라서 도망갔다는 자괴감.

  온전히 내 탓이면 안되기에 2주짜리 남자친구를 붙잡고 그 이유를 찾으려 노력했다. 결국 그는

"나도 이렇게 빨리 헤어진 적은 없지만, 이건 내 패턴이 맞아. 난 중, 고등학교 때부터 갈등이 크게 생길 것 같으면 싸우는 게 아니라 관계를 끊어버렸어. 그래서 난 싸우지 않을 친구들만 남겼고, 난 그 흔한 말싸움도 안 해봤어. 네가 많은 것을 빨리 이야기해 줘서 빨리 알게 되었을 뿐이고, 천천히 이야기했더라도 언젠가는 알았을 일이야. 오래가지 못했을 거야"라 했다.

  나는 또다시 자책을 했다. 천천히 이야기했다면 나를 받아들일 시간이 충분했을 텐데, 너무 빨리 많은 걸 이야기한 거라고... 한편으로는 그의 말이 맞아 보이기도 했다. 나와 다른 성향의 사람과 안 맞았던 기억을 떠올리며.



  그는 불만 한 번 표현하지 않다 갑자기 떠나버리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나는 이별에 집착하는 사람이었다. 그가 어떤 사람이건 이별을 결정한 것은 그이고, 내가 바꿀 수 있는 건 없었다. 만남을 지속할 이유가 없다 말하는 사람을 앉혀놓고 이유가 뭐냐, 나는 헤어짐의 이유를 너에게서 찾아야겠다며 강요하는 사람이었다. 이유를 알 수 없으면 그게 모두 내 탓이 되는 것 같았다. 상대방은 이주짜리 남자친구였기에 이유를 찾기엔 나는 그를 너무 몰랐다.


  친구는 "이제 이 나이에 2~3주 만에 누군가한테 애착을 가질 상황은 아니잖아. 왜 그렇게 집착하는 거야? 세상에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 너는 상대방의 결정을 수용하지 않고 네 감정을 달래라고 앉혀놓는 거야."라 말했다.

  친구 말이 맞았다. 나는 창피했다. 스쳐 지나가버린 인연, 몇 년 뒤면 잊어버려 내게 아무것도 아닐 인연을 괴롭게 붙잡고, 내 주변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었다. 어린아이가 된 기분이었다.

  난 왜 내게 이런 일이 반복적으로 일어나는지, 내 탓인 것만 같았다. 그런 사람들만 내게 다가오고, 그런 사람들만 승낙하고 있는 것 같았다. 실은 '뭔 이상한 애야. 이런 이상한 애는 빨리 끝난 게 다행이네. 가까워지지 않아 다행이야.'라고 하면 얼굴조차 기억나지 않을 일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를 분석하고, 왜 이렇게 빨리 떠날 수 없는지를 찾아내고, 나의 무엇이 그에게 영향을 끼쳤는지 끊임없이 생각하고 있었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하려 노력하고 있었다. 빠른 이별을 고한 그가 잘못한 것인데 그것만으로는 나의 자책감을 달랠 수 없었다. 나는 왜 자책을 하는 걸까 하면 또 자책을 한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을 그대로 두는 것. 받아들일 수 없는 결정을 받아들이는 것.

  누군가와 잘 이별하는 것보다 이게 우선 되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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