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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Optimist Jun 27. 2020

인국공 사태, 어떻게 보아야 할까

청년들이 비정규직 정규직화에 분노하는 이유를 알아보자

개인적으로는 공공쪽에서 일하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어서 잘 몰랐는데, 인천국제공항공사(이하 "인국공"이라 함)는 취준생들 사이에서도 굉장히 높은 티어에 꼽히는 직장이라고 한다.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이른바 "공기업 티어표"의 공신력이 얼마나 되겠냐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기업의 순서만큼은 어느정도 취준생들의 선호도를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지 않나 싶다(안타깝게도 역시나 노무사는 저 밑에 처박혀 있다).


"공기업 티어표" (출처 : 디시인사이드 공기업갤러리)


문재인 정부가 입각한 이후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지속적으로 시도되어 왔는데, 이번에 특히나 많은 반응이 나오는 것은 아마도 인국공이 가지고 있는 위치(선호도)가 상당한 영향을 미쳤으리라 보인다.


생각컨대, 청년 층의 급격한 반발이 일어난 것은 직장인 커뮤니티에 이른바 '인국공 단톡방'의 캡처들이 돌아다니기 시작했고 여기에 본인이 서울교통공사 현직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올린 글에 상당한 바이럴이 일었던 시점부터로 보인다. 작성자도 알 수 없이 모두 인터넷에서 떠도는 루머 수준이지만, 그럼에도 이 주장을 뒷받침하는 기사도 있으며, 관련된 사례들을 공기업 재직자들이 계속해서 수면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인천국제공항공사 정규직 전환은 곧 서울교통공사처럼 될 겁니다. (뽐뿌, 2020-06-23)
내부 갈등 극심한 서울교통공사…직원들, 민노총 잇따라 탈퇴 (뉴스핌, 2018-10-17)


그러나 이러한 주장을 성립시키기 위해서는 상당한 과정의 비약이 필요하다. 아래에서는 그 이유에 대해서도 풀어보려고 한다.


인국공 사태를 제대로 바라보기 위해서는 "중규직"이라는 개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마침 정부에서도 이번 정규직화되는 전환직이 '일종의 중규직에 해당한다'고 해명한 바 있다. 중규직을 다른 말로 "무기계약직"이라고도 하는데, 2007년 비정규직법(기간제법 제정, 파견법 개정)의 도입 이후 본격적으로 일간지 사회면에 나타나기 시작한 표현이다. 말 그대로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중간 개념인데, 어떻게 중간이냐면 비정규직과 달리 고용은 안정적이지만 근로조건은 정규직과 다른 식의 중간이다.


(사실 인국공 전환대상자들은 도급직이라고 한다. 인국공이 도급 준 수급업체에 소속된 정규직 근로자로서 인국공의 비정규직 조차 아니다. 사기업의 한 사업부서에 소속된 전 근로자를 공기업이 승계하는 형태인데, 이게 괜찮은 건지 모르겠다. 뭐 어쨌든, 정규직으로 전환된다고 하면 이들의 신분변화는 파견직이 본사에 고용되는 형태에 가깝다. 기존의 형태가 간접고용형태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아래에서는 편의상 비정규직으로 표현한다.)



즉, 정규직과 비교했을 때 비정규직은 고용안정성은 없지만 비정규직법에 의해 차별로부터는 보호되는 반면, 중규직은 고용안정성은 확보되어 있으나 차별에서는 보호받기 어려운 신분이다. 이렇게 중규직이라는 개념을 이해하게 되면, '비정규직 문제'라는 것이 2가지 층위의 과제가 겹쳐있는 것이라는 점을 알 수 있게 된다. 첫번째는 비정규직의 문제인 고용불안정이고, 두번째가 중규직의 문제인 정규직과 차이나는 근로조건이다.


그러나 최근 나타나는 현실의 비정규직은 정규직과 비교했을 때 고용안정성도 없고, 근로조건에서도 차이가 난다. 왜냐하면 차별로부터 보호받는 비정규직은 정규직 중에 동종, 유사한 직무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인국공의 비정규직 보안요원에게 동종, 유사직무를 수행하는 본사 정규직이 없다면 인국공은 본사 직원과 보안요원의 근로조건을 별도로 적용할 수 있다. 요즘의 회사들은 이런 사항을 고려해서 특정한 직군을 대상으로 비정규직화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 보니, 어느새 중규직이라는 말은 잘 쓰지 않게 되고 비정규직이라는 표현이 원래 비정규직과 중규직이 갖고 있는 불리함을 포괄하는 표현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비정규직 문제 해결(정규직화)'이라는 동일한 표현을 놓고, 누구는 고용불안정 해소를 이야기하고 누구는 정규-비정규직간 격차해소를 같이 이야기하고, 누구는 둘 다를 일컫는 등 사회적 논의에 앞선 개념적 정의가 애매(ambiguous, 다의적인)해지는 문제가 생긴 것이다. 


앞서 본 것과 같이 정규직화에 반발하는 청년들은 (고용불안정 해소에는 반대하지 않음을 전제로) 이번에 전환되는 비정규직이 정규직과 동일한 근로조건을 쟁취해낼 것임을 가정(근로조건 격차해소의 문제)하여 주장을 펼치고 있다. (아래의 카드뉴스는 어떤 유저 개인이 만든 것이나, 커뮤니티 등에서 주로 나타나는 주장 양상을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되어 예시로 인용하였다.)


출처 : 블라인드 공공기관 라운지


반면 정부는 황덕순 일자리수석의 입을 빌려 인국공 정규직화는 고용불안정을 해소하는 것이고, 기존에 업무를 수행하던 사람들을 고용하는 것이어서 아주 불공정하지는 않다(고용불안정의 문제), 해당 비정규직 직원들은 기존 정규직 직원들과 별도의 급여테이블을 적용받는다(근로조건 격차해소의 문제)고 설명하였다.

"이런 게 공정이냐" 분노한 청년들... 靑, 인국공 사태 수습에 진땀 (서울경제, 2020-06-25)


표면적으로 보면 정부의 해명은 타당하다. 개인적으로도 고용불안정이 해소된다고 해서 보안직원 직무가 취준생들이 몰릴 정도의 인기있는 직무일 것이냐에 대해서 별로 그럴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물론, 내가 그들의 입장을 완전히 이해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렇게 함부로 결론내릴 수는 없는 문제다.


그러나 이 해명은 청년들의 주장을 완전히 해명하지는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청년들은 교섭대표노조의 지위를 획득한 전환직들이 미래에 본인들의 근로조건 향상을 시도할 것임을 전제로 주장을 하고 있으나, 정부는 ''지금 당장은' 연봉이 5천이 되지는 않는다는 답변으로 응수한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 양측 모두 비정규직 근로자의 고용불안정 해소에는 의견을 함께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결국 쟁점은 전환 대상 비정규직이 기존 본사 정규직 근로자에 준하는 근로조건을 갖게 될 것이냐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사견으로는 앞서 언급했듯 전환 대상 비정규직이 기존 본사 정규직 근로자에 준하는 근로조건을 갖기 위해서는 상당한 과정의 비약이 필요하다고 본다. 우선 일반적으로 회사는 급여테이블을 직군별로 운영하기 때문에 비정규직이 정규직이 된다고 해서 자동으로 기존 비정규직이 정규직과 동일한 급여테이블과 복리후생을 적용받는다는 주장은 근거가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자회사 정규직화에는 반대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사실 자회사 정규직화가 고용불안정을 해소한다고 보기 어려운 점도 있다. 회사가 정리해고의 회피수단으로 택하는 방법 중 하나가 회사를 자회사로 분할하여 운영하다가 자회사를 폐업하는 것이듯, 자회사 소속이라는 신분이 고용불안에서 아주 자유로운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공기업 특성상 갈 데까지 가지 않고서야 이런 일이 일어날 확률은 상대적으로 적을 것이다.)


교섭대표노조의 지위를 갖는다 하여 마음대로 근로조건을 좌우하기도 쉽지는 않다. 노조법에서 정하고 있는 공정대표의무나, 교섭단위 분리신청 등을 통해 소수노조도 본인들의 교섭권을 방어할 수 있다. 특히 근로양태와 담당업무, 근로조건이 상이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방어수단이 완벽하게 안전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위험성에 대한 불안과 공포를 아주 근거없는 것이라 치부하기도 어렵다. 실제로 다른 공기업에서 문제가 되었던 사례들이 수면위로 떠오르고 있기도 하다. 


반발을 제대로 해소하고 싶었다면 이런 부분에 대한 해명이 있었어야 했다. 그런 것 없이 '지금 당장 연봉 5천 되는 건 아니'라는 식의 해명을 하고 끝내 버리는 것은 그렇게 책임감 있는 대처는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한다. 만약 자회사 정규직 채용으로 결론이 났다면, 본사 정규직으로 간다고 해도 분리 직군 체계를 유지하겠다고 약속했다면, 이런 정도의 반발이 나왔을까.


결국 이 사건은 현 정부의 공정성에 대한 관점을 신뢰하지 못하는 것, 그리고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것에 대한 청년층의 불만이 다른 방식으로 표현된 것이 아닌가 싶다. 




개인적으로 아쉬웠던 것은 청년층의 반발에 대한 으른들의 반응이었다. 고용불안을 해소하는 것을 넘어 근로조건의 역차별(동일노동 동일임금처럼, 근로의 내용이 다르면 보상도 달라야 할 것이므로)을 주장할 미래에 대한 우려를 비정규직의 고용불안정성 해소에 대한 반대로 몰아가는 것은 타당한 반박은 아닐 것이다. 청년들에게 연대의식이 없다며 혀를 차는 어른들 보다는 여유있는 미래는 커녕 안전한 과거조차도 가져본 적 없는 청년들에게 공감이 간다. 콩 한 쪽도 나눠먹으려면 콩 한 쪽은 있어야 하는 법이다. 내가 지금 내 앞가림을 못 하는데 연대 의식을 무슨 수로 갖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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