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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크핑거 Dec 19. 2021

삶이란 산다는 자체로 충분하다


삶이란 산다라는 단어의 줄임말이다. 그리고 삶을 다시 풀면 사람이 된다. 즉, 사람이란 사는 존재라는 뜻이다. 산다는 것은 그 자체로 목적이 된다. 인간은 어떤 큰 뜻을 품고 위대한 인물이 되기 위해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대부분의, 아니, 모든 인간은 그냥 태어나는 것이고 태어났으니 사는 것이다.


위인전은 그래서 대부분 과장이고 허황된 소설이다. 물론 아닌 사람도 있겠으나 대부분의 위인이란 그냥 하고싶은 대로, 혹은 되는 대로 살다 보니 위인이 된다. 그리고 후세의 소설가가 그런 위인을 멋대로 날조해서 태어날 때부터 큰 뜻을 품고 노력했다는 식으로 서술한다.


뭐, 어느 정도 노력은 할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위인이란 딱히 그렇게 죽자 살자 하는 노력을 하지는 않는다. 대부분의 위인들은 그냥 하는 대로 하다 보니 그렇게 된다. 그냥 그렇게 태어났고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어서 그렇게 된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런 위인은 전체 인간 중 소수에 불과하다. 모두가 위인일 수는 없다. 대부분의, 거의 99.99%의 인간들은 그냥 태어나서 살다 죽는다. 그렇다고 해서 위인만 삶의 의미가 있고 나머지 인간들은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다양한 인간들이 모인 사회(pool)를 만드는 것이다.


살인자나 강간범 같은 인간 망종들만 모아서 마을을 만들어보자. 그리고 시대가 지나면 어떻게 될까. 그 마을은 무법천지의 지옥이 될까? 아니다. 시대가 지나면 결국 그 사이에서 태어나는 인간 중에도 위인이 나타난다. 반대로 성인군자들만 모아놓은 마을은 성인군자만 태어날까? 역시 아니다. 그 사이에서도 살인마 강간범이 나오게 된다. 꿀벌이론이 보여주듯 모든 비율은 정해져 있다. 누가 위인이 될지는 모른다. 하지만 어느 규모를 이루면 그 중에 위인이 나오게 된다.


현대 사회는 그래서 인구 부양을 최우선 목표로 삼는다. 인류의 문명이 폭발적으로 발전한 속도는 인구의 증가와 정비례한다. 위인이 나타나서 비료를 개발했고 그 비료로 식량이 증가하고 인구가 늘어나면서 더 많은 위인이 탄생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위인들로 인해 의학이 발전하고 인구는 더 늘어나는 순환이 이루어진다. 물론 그 중에는 인구를 줄이려는 전쟁광 같은 인간도 나타난다. 하지만 그에 반대하는 더 많은 위인도 나타난다. 그게 바로 인류가 아직까지 생존하고 번성하는 이유다.


누가 위인이 될 지는 아무도 모른다. 위인이 되고자 하는 강렬한 열망을 누군가는 품을 수 있고, 그런 열망으로 위인이 될 수는 있지만 대부분의 위인은 그냥 되는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위인이 되지 못한다. 그렇다고 그 삶이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니다.


기업은 물건을 사 주는 사람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다. 천재적 예술가 역시 그걸 봐 주는 사람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다. 삶에 큰 의미가 없더라도, 자신이 위인이 아니더라도 사람이란 그저 살아있다는 그 자체로 모두가 인간 사회에 중요한 구성 인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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