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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비 Dec 10. 2022

시작은 언제나 두렵다.

나의 일을 다시 시작해 보려고 한다. 고민도 많이 하고 잡념도 많았지만 결국 내 자리는 여기인가 보다. 돌고 돌아서 다시 내 자리로 돌아오기까지 생각이 많았다. 

그 누군가는 " 넌 언제든 나갈 수 있잖아."라며 자신들의 생각을 풀어놓지만 정작 나는 어디로 가야 할지 늘 고민이 된다. 이번에도 나보단 가족을 먼저 생각하고 선택을 해야 했다. 집과 가깝고 아이들을 챙기는데 힘들지 않아야 한다. 이력서를 낼 곳이 없다. 일단 거리가 너무 멀어 엄두도 못 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집 근처 병원에 방문간호사를 구하는 공고가 나왔다. 파트도 지원이 가능하다고 하니 지원해볼 용기가 생겼다. 집도 가깝고 내가 원하는 시간만 받아들여 준다면 나는 그걸로 됐다. 

띠리링~~

"안녕하세요. 00입니다. 저희 병원 지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 혹시 콧줄이랑 소변줄 교체 가능하세요?"

핸드폰 너머로 조용히 들리는 병원 직원의 목소리가 정말 반갑게 느껴졌다.

"네~ 가능해요~"

" 그럼 저희 병원 한 번 나오시겠어요? "

반가운 마음에 

"네네. 내일 방문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나는 방문간호사로 발을 내디뎠다. 


방문간호사는 어떤 일을 하는 것일까. 지역사회에서 일할 수 있는 첫발인 것 같긴 한데.. 사실 이곳에서의 업무는 신규나 다름이 없었다. 나에게 인계해줄 선생님이 건강이 악화로 인해 그만두시게 됐다고 한다. 하루 인계해 주시러 오셨는데 여기저기 나를 불러 대는 통에 정작 인계해줄 선생님과는  함께 있을 시간이 없었다. 그렇게 하루가 어영부영 지나갔고 결국 혼자서 헤쳐 나가야 하는 상황이 오고야 말았다. 

방문간호사를 생각할 때 주어진 환자의 집에 방문하여 기본 간호와 욕창관리, 투약 관리, 소변줄과 콧줄 관리 등  집에서 할 수 있는 간호를 시행하면 되는 줄 알았다. 사실 간호만 생각하고 왔는데 서류 작성이 너무 많아서 많은 곤욕을 치르고 있다. 방문간호를 받기 위해선 환자들이 공단에서 장기요양 이용 계획서를 받아야 하는데 들어보지 못한 서류를 파악하려니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사실 지금도 입에 착 붙지 않는 단어들과 확실하지 않은 지식들이  뒤섞여 나를 당황스럽게 만들고 있다. 다행히 본원에서 방문 요양을 받고 있는 분들만 방문간호를 받을 수 있도록 하기로 바뀌었다고 하니 서류 부분은 그래도 안심이 되었다. 혼자 헤쳐 나가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니 그렇게 마음이 편할 수가 없었다.

하루 종일 서류에만 매달려 있다 보니 내가 사무직으로 들어온 것 같았다. 의자에서 엉덩이를 뗄 수가 없구나... 서류를 한참 보고 있다가 첫 방문의 시간이 돌아왔다. 분주한 마음으로 물품을 챙기고 의욕 뿜뿜한 상태로 한걸음에 차에 탔다 


첫 방문은 콧줄과 소변줄을 모두 하고 있는 어르신이었다. 첫 방문인지라 떨리는 마음으로 도로 위를 달렸다. 내비게이션으로 어르신 집까지 걸리는 시간까지 확인했는데 예정된 시간보다 30분을 늦어 버렸다. 

'아................ 신이시여....'

차로 집을 방문하는 서비스이기 때문에 사실 도로 사정에 따라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근데 그 첫 방문은 시행착오 없이 겪은 일이라 나를 자책하게 만들었다.

  머리가 땅에 닿는 마음으로 어르신 집에 방문하자마자 보호자에게 

"아이고 죄송합니다. 제가 초행길이라 많이 늦었습니다. 다음부턴 좀 일찍 움직일게요. 많이 기다리셨죠?"

보호자는 

" 괜찮아요~" 라며 오히려 괜찮다고 안심시켜 주었다. 

아주 깨끗하고 넓은 집에 관리가 참 잘되어 있는 할머니 환자였다. 

어르신은 참 복도 많지. 이렇게 잘 봐주는 보호자가 있다는 건 할머니가 덕이 많으신 분이라고 생각이 되었다. 

나의 첫 환자는 지식도 많고 깔끔한 보호자 덕분에 힘들이지 않고 지나갈 수 있었다.

방문해서 환자를 보는 일은 낯선 곳에 적응을 해야 하니 아주 힘든 일이었다. 물건이 손에 익어야 잘 다루듯 장소도 마찬가지다. 낯선 곳, 낯선 자리, 낯선 사람이 있는 곳에서 간호를 한다는 것에 익숙해져야 할 것 같다. 


오늘 나의 첫 환자 어르신의 집에서 어르신과 보호자와의 첫 만남은 잊을 수가 없었다. 나의 첫걸음이 너무나 아쉬웠고 후회가 남은 하루였기 때문이었다. 보호자의 전문인 못지않은 환자 보는 실력으로 인해 많은 도움을 받았다. 초보 방문 간호사의 많은 실수가 마음에 안차셨을 텐데.. 벅찬 마음으로 시작한 나의 첫 방문은 그렇게 끝나 버렸다. 지나고 보니. 후회되는 첫 방문이어서 계속 되새김질하게 되었다.

소변줄, 콧줄을 다하고 계시는 환자분들은 거의 요양병원에 많이 계신다. 집에서 누군가 누워 있는  환자를 돌보는 건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보호자분이 얼마나 깔끔하신지 집안을 보아도 알 수 있었다. 어르신에 필요한 물품과 간호 용품들도 잘 구비가 되어 있고 관리 또한 잘되고 있었다. 이렇게 지극 정성인 보호자분을 생각하니 환자만 보고 나온 게 마음에 많이 걸렸다.

사실... 누워 계시는 할머니 곁을 지키는 보호자의 마음을 만져 주는 게  우선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장기간 누워 계시는 어르신을 돌보는 게 얼마나 고되고 힘든 일이었을까. 마음이 힘든 날이 많은 건 누워 계신 어르신뿐만 아니라 보호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보호자의 마음을 만져주는 일을 놓치고 말았다..

다음에 다시 방문할 때는 보호자의 마음을 먼저 알아주어야겠다. 어르신의 병간호 동안 지치고 않고 갈 수 있도록 마음적인 서포트를 하는 것도 내 간호의 하나인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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