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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운 Sep 15. 2024

마이너스의 손

   벌써 다섯 개 째다. 올해 여름에만 핸드폰 충전기를 5개를 샀다. 1개는 잃어버렸고, 4개는 고장이 났다. 아무리 핸드폰 충전기도 일종의 소모품이라서 때가 되면 새로 사야 한다지만 이건 좀 심하지 않나? 물론 한 번은 실수로 청소기에 빨려 들어가는 바람에 단자 부분이 휘었긴 했는데 나머지 3번은 당최 이유도 모르겠다. 내가 뭐 전자레인지에 넣고 돌리기를 했나, 자동차 바퀴로 밟기를 했나 이유도 모른 채 계속 ‘충전 연결이 불안정합니다. 충전기를 확인해 주세요.’라는 메시지만 반복적으로 뜰뿐이다.

  비단 핸드폰 충전기뿐만이 아니다. 종류를 가리지 않고 손대는 물건들마다 이상이 생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 같은 사람들이 제법 있는지 손만 대면 물건을 망가뜨리는 사람들을 일컫어 ‘마이너스의 손’이라고 부른다. 심지어 '마이너스의 손'이라는 제목으로 웹툰까지 나왔다. 이때 핵심은 단순히 힘조절을 잘못하거나 수전증 등의 이유로 물건을 떨어뜨려서 이상이 생기는 경우가 아니라 정말, 진심으로, 그저 ‘손을 댔을 뿐인데’ 물건에 이상이 생겼다는 거다. 문자 그대로 손만 대면 모든 물건이 황금으로 바뀌었다던 미다스의 손처럼 손만 댔을 뿐인데 이유도 모른 채 망가지는 거다.       

  

출처 : 네이버웹툰 마이너스의 손 中

   마이너스의 손은 예능 프로그램에서 종종 보이는 ‘꽝손’이니 ‘똥손’과는 비슷하면서도 살짝 다른 느낌이다. 뭐랄까 꽝손/똥손이 웃고 넘어갈 수 있는 가벼운 정도의 해프닝이라면 마이너스의 손은 소위 말하는 ㅅㅂ비용을 불러오는 ‘사건’에 가깝다고 해야 하나?


   어렸을 때부터 내가 손만 대면 멀쩡하던 물건들이 부러지고, 어딘가 하자가 생기는 일이 끊임없이 반복되었기 때문에 초등학교 남자아이 집에 널렸다는 로봇조차 우리 집에는 딱 한 개 있었다. 그것도 완제품으로. 조립하는 로봇을 사봐야 어차피 완성도 못하거나 완성을 하더라도 삐걱댈 테니 돈낭비, 시간낭비라는 걸 나도 부모님도 서로 잘 알았기 때문이다. 


  한 번은 친구들을 따라서 미니카 부품을 여러 가지로 조합해서 사온 적이 있다. 모든 부품이 들어 있는 한 세트짜리 미니카도 있었지만 베어링이니 엔진이니 하는 부품들을 종류별로 개별구매하면 성능을 업그레이드한 미니카를 만들 수도 있었다. 조립에는 자신이 없었지만 친구들이 도와준다는 꼬드김에 넘어가 부품별로 개별 구매하고 집에 갔더니 어머니께서는 “설명서를 보고도 조립을 못하는데 니가 무슨 제주로 설명서도 없이 만들어?! 당장 바꿔와!”라며 불같이 화를 내신적도 있다. 틀린 말은 아니라서 조용히 문방구에 가서 반품하고 왔다. 당연한 얘기지만 학교에서 이벤트성으로 만드는 고무동력기니 하는 것들은 죄다 날지도 못했고, 친구에게 빌린 게임기는 금방 고장이 났으며, 컴퓨터 조립 같은 건 엄두도 내지 못했다. 섣불리 손대다가 나사나 열쇠가 부러진 채 안에 박힌다거나, 부품이 휘어지거나 틀어져서 조립 자체가 불가능했던 적은 셀 수도 없이 많다.


  이쯤 되면 살아있는 마이너스의 손이다. 심지어 저주(?)는 지금까지도 평생을 따라다니고 있다. 얼마 전에는 세탁기 문을 고장내기도 했다. 탈수를 설정하지 않은 채 세탁기 문을 강제로 열다 보니 문에 이상이 생겼고, 제대로 닫히지 않아 AS 기사를 불러야만 했다. 그보다 몇 달 전에는 화장실 전등을 갈다가 전등 덮개를 와장창 깨 먹었다. 욕조에 걸처놨던 걸 실수로 건드렸다가 그대로 욕조 안이 유리 범벅이 되어버렸다. 세탁기 사건이나 전등 덮개 사건을 보면 마동석도 아니고 그걸 강제로 개방할 만큼 멍청하고, 자꾸 억지로 힘만 쓰니 자꾸 기계들이 고장 나는 것 같긴 하지만 이상하게 나한테만 뭔가 하자가 있는 물건들이 걸리는 느낌이다.   


   사과를 쪼개다가 접시를 깨먹지 않나, 밥 먹고 그릇을 싱크대에 가져다 놓으려고 일어서다가 냉장고에 걸려 접시가 깨지고, 얼마 전에는 현관에 걸려 있던 하회탈 액자를 툭 건드렸더니 고리가 툭 끊어져 버렸다. 아니 무슨 내가 아무리 곰이라 불릴 만큼 체격이 크다지만 무슨 최홍만도 아니고 툭 건드렸다고 쪼개지고, 깨지고, 떨어지냔 말이다. 이건 분명히 이미 삭아 있거나, 실금이 가 있었거나 했는데 내가 건드린 타이밍에 우연히 깨진 거다. 그렇지 않고서야 말이 안 되지. 핸드폰 같은 경우도 내가 자주 떨어뜨릴 만큼 부주의한 것도 맞지만 희한하게 새 핸드폰을 사도 하자가 있는 제품이 와서 일주일 만에 무상 교체를 받은 적도 있었다.


   나도 안다. 솔직히 마이너스의 손 따위가 어딨 나. 그냥 성격 자체가 부주의하고, 꼼꼼하지 못하고 급하고, 힘 조절 따위는 모를 만큼 무식하니까 아주 간단한 조립도 못하고 뭘 자꾸 망가뜨리는 거지. 완성도 못하거나 우여곡절 끝에 완성해도 하자가 있거나 하는 둘 중 하나가 반박되니 조립에 흥미를 잃게 되고, 흥미를 잃으니 아예 시도도 안 하게 되고, 악순환이 반복되어 지금은 심각한 기계치가 되어버렸다. 어지간한 일이 아니면 직접 기계를 만지는 일-컴퓨터 포맷이라든가, 자동차 운전이라든가-은 아예 손도 대지 않는다. 이쯤 되면 기계치를 넘어 반 기계공포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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