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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운 Oct 06. 2024

말에는 책임을 져야 한다


   제라스를 다니던 시절, 그러니까 내가 극도로 혐오하는 오전 수업을 들으러 다니던 시절의 얘기다. 대학생 때 9시 수업으로 몰아서 시간표를 짰다가 말아먹은 뒤로 두 번 다시 오전 강의를 안 들어야겠다고 다짐했던 내가 8시 수업을 들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대표님이신 민호쌤 직강 수업이 오직 8시에만 열렸기 때문이다. 청주에서 첫 차를 타고 들으러 오고, 대학에서 강의하시는 분들도 들으러 올만큼 인사이트가 넘치는 강의였다.


   전형적인 저녁형 인간인지라 아침에 수업을 들으러 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누군가는 나보고 게으르다고 할지는 모르겠지만... 단순히 게으르고 안 게으르고의 문제는 아니었다. 새벽 5,6시에 깨어났던 날에도 지각했기 때문이다. 만성적인 장 트러블은 희한하게도 출발 직전에 꼭 신호를 보내오곤 했는데 그날도 어김없이 신호가 왔다. 집에서 깔끔하게 비우고 나가지 않으면 반드시 이동 중에 신호가 오곤 했고, 지하철을 잘 타고 가다가 내렸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뭐 여튼... 이유가 뭐가 되었건 사실 나는 지각을 굳이 안 할 생각도 없었다. 이미 지각에 대해 벌금을 내고 있었으니까. 지각이 잘못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특히나 라이브로 진행되는 스피치 수업 특성상 흐름이 끊길 수도 있었다. 다만 잘잘못을 떠나 이미 벌금을 내고 있다면 ‘지각을 하지 마라.’라고 잔소리를 하거나 ‘왜 지각하냐?’라고 비난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거창하게 말하자면 일사부재리의 원칙이라고나 할까.


   내 생각과 별개로 지각을 안 하는 편이 나에게도, 다른 사람들에게도 긍정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하루는 민호쌤이 날을 잡고 나에게 “지각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말씀하셨다. 평소 스타일대로 왜 지각을 하는지를 조심스럽게 먼저 물어보시며 시작된 대화에서는 잔소리도, 강압도 아닌 진심으로 나를 위한다는 마음이 느껴졌다.


   아마 평소 같았으면 나도 굳이 일을 키우고 싶지 않아서 ‘아 네 노력해 볼게요.’하고 대화를 대충 마무리 지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그 말이 나오지 않았다. 게으름 때문이든, 장 트러블 때문이든 내가 8시 수업에 지각할 가능성이 훨씬 높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불편한 자리를 피하기 위해서 지키지 못할 약속을 내뱉을 수는 없다고 생각해서 노력은 하겠지만 힘들 것 같다고 답했다. 진심을 다하는 상대방에 대한 기만이고 위선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옆에서 대화를 지켜보던 동생이 “둘 다 참 대단하네요... 형도 그냥 알겠다고 하고 그만하면 되는데...”라며 고집스럽다고 혀를 내둘렀다. 나도 안다. 내가 고집부렸다는 사실을. 그런데 어쩌겠나. 이게 나란 인간인데.


   민호쌤과의 대화 때뿐만 아니라 주변 친구들과 대화할 때도 늘 그런 식이었다. 한 번은 핸드폰 케이스 좀 제발 바꾸라고 말해도 ‘바꿀게.’라고 말하면 끝날 얘기를 끝까지 바꾸겠다는 말을 안 해서 1시간 넘게 시달렸던 적도 있었다.


   그까짓 알겠다는 말이 뭐라고 쓸데없이 자존심만 세우네, 고집불통이네라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내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다. 말 한 번 잘못했다가 문자 그대로 ㅈ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초등학생 때 미국에 사는 이모가 오랜만에 한국에 들어왔고, 나와 사촌 동생에게 선물을 사주셨다. 사촌 동생은 내가 받은 선물이 더 맘에 들었는지 바꿔달라고 떼를 썼고, 나는 바꿔주기 싫어서 “죽어도 못 바꿔준다. 레고를 다 버려도 안 바꿔.”라고 강하게 나갔다. 선물이 뭐였는지 기억도 안 나는 거 보면 딱히 중요하거나 엄청 마음에 들었던 것도 아닌 듯한데 왜 그리 고집을 부렸는지. 아마 평소에 사촌 동생이 ‘내 거’라고 타령하며 양보라고는 눈곱만큼도 하지 않는 꼴이 얄미웠기 때문이었던 거 같다. 한편으로는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매번 내가 혼나고, 양보해야 하는 상황이 싫었던 것도 같고. 이유가 어찌 되었든 내가 하도 강하게 나가니 동생이 아무리 울고불고 난리를 쳐도 선물을 바꾸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네 입으로 레고를 다 버려도 안 바꾼다고 했으니까 레고 진짜 다 버릴 거야."

   손님들이 돌아가고 어머니가 내가 한 말에 책임을 지라며 한 마디 하셨다. 아니 이게 무슨????? 왜???? 아니 이게 말이 그렇다는 거지 무슨 진짜 다 버리라는 얘기라니... 말도 안 되는... 어이가 없네... 그렇게 그 당시 보물 1호였던 레고 한 보따리가 사라졌다. 어린 마음에 문자 그대로 세상이 무너지는 충격이었다. 

   어머니 딴에는 내가 양보도 하고 해서 좋게좋게 끝났으면 하는 마음, 말을 함부로 하면 안 된다는 교훈을 남기고 싶은 마음 등이 있었겠지만 그런 교훈 따위는 생기지 않았다. 물론 말을 함부로 하면 ㅈ된다고 뼈저리게 느꼈지만, 오히려 말을 바꾸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왜 말을 함부로 하지?”. “왜 말한 대로 행동하지 않아?”라는 오기와 반발심이 생겼다. 이른바 내로남불, 역지사지를 실천한 셈이다. 어머니께서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 레고를 버렸다면, 문자 그대로 내로남불도 하면 안 되니까. 당연히 어머니도 어머니가 한 말씀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면 “된장찌개 해준다면서 왜 김치찌개 해줬냐. 왜 엄마는 엄마가 한 말을 안 지키냐?”라는 식으로. 어머니에게 사사건건 어머니께 따지곤 했던 이유다. “된장찌개 해준다면서 왜 김치찌개 해줬냐. 왜 엄마는 엄마가 한 말을 안 지키냐?”라는 식으로.


   나이가 벼슬인 대한민국에서 절대 용납될 수 없는 패륜이라면 패륜이겠지만... 나는 지금도 이해할 수 없다. 누군가가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 안된다!”라고 반대한다고 해서 그 사람 눈에 흙을 뿌리지는 않고, 뿌려서도 안 된다고 말하지 않나. 그건 그저 비유적인 표현에 불과하다는 것을 모두가 알기 때문이다. 아무리 큰 잘못을 했어도 고작 10살 남짓한 어린아이가 치기 어린 마음에 뱉은 말을 그대로 행동에 옮긴다니. 내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다. ‘레고를 다 버려도’라는 문장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나이, 신분을 떠나 모두가 평등하다’라는 말도 그대로 적용해야 하니까.


   어쨌든 덕분에 나는 지키지 못할 것 같은 말은 아예 하지 않는 성격이 되어버렸고, 반대로 말을 바꾸는 누군가를 절대 용납하지 않게 되어버렸다. 동아리에서건 회사에서건 나이, 직위 고하를 막론하고 틈만 나면 시비가 붙었고, 내가 퇴사하게 된 여러 가지 이유 중 하나기도 했다. 한 번은 “내 의도와 다르게 상대방이 받아들일 수 있다.”라고 내 언행을 지적받았었는데, 그 비슷한 상황에서 “왜 네 마음대로 상대방의 의도를 해석하냐.”라고 내 태도를 지적받았다나로서는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상황이었다. 본부장님께서는 “네가 말이 바뀌는 상황을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인 건 안다. 하지만 상황이 달라졌으니 말도 달라질 수 있다”라고 하셨다. 나도 내가 예민한 걸 알기 때문에 이해하려 해봤지만 아무리 곱씹어 봐도 “무조건 네가 잘못했다.”라고 말하는 느낌이 들었다.




   말이 바뀌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저 사람은 왜 말을 바꾸지?”라며 스트레스인데, 더 큰 문제는 대표님의 의도를 오해하든 오해하지 않든 내가 기분 나빴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는 거다. 심지어 대표님은 ‘화자의 의도’와 ‘받아들이는 사람’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나. 다시 말하자면 내 입장에서는 이미 대표님은 (적어도 나를 설득시킬 수 없는) 자충수를 둔 셈이었고, 나 역시 대표님을 설득시킬 방법은 없었기에 퇴사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서로의 정신건강을 위해서. 




   가끔씩은 내가 남들처럼 그냥 빈말도 쉽게 쉽게 하고 말이 바뀌거나 말거나 신경도 안 쓸 수 있는 그런 무던한 사람이었다면 어땠을까? 아니, 그냥 나부터가 생각나는 대로 대충 씨부리고 다른 사람들처럼 말에 책임을 져야겠다는 강박관념 따위는 못 느끼는 사람이었다면? 민호쌤과의 대화처럼 실랑이를 벌이는 일은 없었을 거다. 대표님의 지적을 그다지 마음에 안 담아두었을 수도 있다. 나라고 허구한 날 사람들하고 지지고 볶고 싸우는 일이 마음 편할 리가 있나. 하지만 어쩌겠나. 우리는 역지사지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배우지 않나. 내로남불은 옳지 못하다고 생각하지 않나. 당연히 자기 유리한 쪽으로 말을 바꾸고, 불리한 말은 나 몰라라 하는 짓거리는 하지 말아야지.


   내가 봐도 사소한 꼬투리로도 사람들과 시비가 붙곤 했으니 참 사회성 없는 사람이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적어도 내 스스로 당당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나 역시 평범한 인간인지라 실수할 때도, 틀릴 때도 있지만, 적어도 내가 내로남불을 욕하는 사람으로서 남에게는 엄격하고, 나에게 관대한 그런 치졸한 짓은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런 노력들 덕분에 단점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내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남아 있는 이유가 아닐까 생각하면,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최소한 나는 내가 한 말은 지켰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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