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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운 Aug 25. 2024

남들만큼은 할 줄 알았는데

   초등학교 저학년 때 화가를 장래희망으로 적어냈을 만큼 그림을 좋아했었다. 상상력은 풍부한 편이었는지는 모르겠는데 어쩌다 보니 상도 받고 해서 부모님께서는 예고 입시를 전문으로 준비하는 미술 ‘화실’을 보내주셨다.


   5년 정도 다녔을 즈음, 그러니까 뎃셍과 수채화의 기초를 거의 다 익혔을 무렵 화실을 그만두었다. 나름대로 열심히 그렸는데도 영 머릿속에 그린 이미지만큼 표현하지 못하니까 흥미가 점점 없어졌다. 딱히 선생님이 “넌 재능이 없다”라고 못 박진 않으셨지만 누가 봐도 내게는 미적 감각 따위는 없었기에 스스로도 ‘미술은 내가 갈 길이 아니구나.’ 싶었다.


   미술뿐만은 아니었다. 남들 다 다니는 태권도, 수영, 컴퓨터, 심지어 문화센터에서 단소 수업까지 적지 않은 학원들을 다녔지만 결과는 꽝이었다. 태권도는 같이 시작한 친구들이 이미 전부 국기원에서 승단 시험을 보고도 한참 뒤에야 겨우 승단 시험을 치렀고, 수영도 다른 친구들이 상급반으로 넘어가 깊은 물에서 접영을 배우기 시작할 때 여전히 배영 하나 제대로 못해서 허우적대고 있었다. 컴퓨터는 겨우겨우 자격증을 몇 개 따긴 했지만 그게 전부였다. 단소는 말할 것도 없었다. 혹시나 학교 음악 시간에 다루는 리코더를 불 때 도움이 될까 싶어 단소를 배운 건데 당연한 얘기지만 내가 리코더를 잘 불게 되는 기적 따위는 일어나지 않았다. 어머니 표현을 빌자면 “일단 학원에 보내면 남들만큼은 할 줄 알았는데 남들만큼도 못하더라."라며 혀를 찼을 정도였으니까.


   돈 내고 배우러 간 학원 수업도 그 모양인데 학교 수업이라고 크게 다를 리 없었다. 음악, 미술, 체육은 늘 최하점 아니면 최하점보다 조금 잘한 수준이었다. 특히 음악이 최악이었다. 한 번은 물놀이 실기 시험에서 꽹과리 역할을 맡았는데 계속 박자를 틀리는 나 때문에 다른 팀원들까지 엇박이 나니까 보다 못한 선생님이 나는 최하점을 주고 다른 조에서 꽹과리를 좀 치던 애를 데려온 적도 있었을 정도였다.

   체육이 그나마 배구나 배드민턴 같은 실기는 괜찮았지만 개발이다보니 실기와 자유 시간 모두 합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던 축구부터 머릿수 채우는 역할만 할 뿐이었다. 체력도 썩 좋지 않아서 6명이 달리면 5등, 5명이 달리면 4등 하는 식으로 간신히 꼴찌를 면하는 수준이었고, 국민체조 같은 경우는 몸치에 박치까지 겹쳐서 ‘안 좋은 예’로 앞에서 시범을 보이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빠른 년 생으로 학교를 일 년 빨리 들어간 탓에 한 살 많은 친구들과 경쟁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뒤처졌나 싶기도 하다가도 막상 또 생각해보면 운동 신경은 둘째치고 박자 감각, 음감, 미적 감각 등은 나이와는 하등 관련이 없지 않나? 아니면 뭔가를 잘하겠다는 욕심 자체가 없었기 때문인가? 욕심이 아니라 의지가 박약했다는 표현이 어울릴지도 모르겠지만.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처럼 사물놀이 실기 시험을 보다 쫓겨났다고 하면 화가 나거나 수치스럽겠지만, 나는 놀라우리만큼 아무 생각이 없었다. 기분이 좋았던건 아닌데-심지어 나빴다는 기억도 없다.- ‘난 원래 박치니까 어쩔 수 없지.’라고 빠르게 현실을 받아들였다고나 할까? 


   초등학생 때 같은 반이었던 C라는 친구는 나와는 사뭇 달랐다. C는 반장 선거도 적극적으로 입후보하는 등 꽤나 앞에 나서기를 좋아하는 친구였다. 각 학년별로 그래도 수학을 좀 하는 친구들을 모아놓은 수학경시대회반에도 있었던 C는 수학 올림피아드 대회에 나갈 학교 대표를 뽑는 시험에서 떨어지자 그 자리에서 오열한 적이 있다. 나로서는 전혀 공감할 수 없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 당시 나도 떨어졌는데 아무 반응이 없는 꼴을 보고는 어머니는 너는 화도 안 나냐고 나한테 화를 내셨는데... 내가 왜?... 다른 사람이 나보다 잘하면 그 사람이 나가는 게 왜? ㅇ_ㅇ? 뭐 이런 반응이어서 어이없어하셨던 기억이 있다.


   비슷한 일은 중학생 때도 있었다. 수행평가 과제를 하던 중에 당시 우리 반에서 2등을 하던 H라는 친구의 과제가 선 하나가 잘못 그어졌나? 하는 아주 사소한 문제가 발생한 적이 있었다. 곧잘 장난도 치고 둥글둥글한 성격이었던 H가 불같이 화내는 장면을 그날 처음 봤다. 당시 1등을 하던 J도 실습 과제가 망가지자 그 자리에서 분을 이기지 못하고 울면서 친구와 싸우기도 했었고. 역시 나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였다.


   섬세하지 못한 성격 탓도 있지만, 변명을 하자면 나는 극한의 효율을 추구했을 뿐이었다. 굳이 시간을 투자해 봐야 잘할 수 없는 일에 시간 낭비하지 말자. 경제학에서 말하는 일명 ‘비교우위’ 개념을 초등학생 때부터 빠르게 실천했던 셈이었다. 물론 90년대 초딩이 그런 거창한 개념 따위를 알리는 없었고, 그저 졸리면 자고, 재밌으면 열심히 하고, 조금 어렵고 힘들다 싶으면 쉽게 포기하는, 그런 꼬꼬마였다.


   부모님은 조금이라도 성격이랑 안 맞으면 노력조차 안 하는 내가 못마땅하셨지만, 언젠가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고맙다고 하셨다. 모든 학원이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일부 학원에서는 장삿속으로 “아드님이 재능이 있으시네요.”라며 학부모들에게 더 많이 투자할 것을 종용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지만 나는 그 어떤 분야에서도 재능의 ㅈ조차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오히려 수업 태도가 불량하다거나, 도저히 진도를 못 따라오는 낙제점 수준의 보고서를 전달받으니 부모님께선 일찌감치 ‘이 아이는 공부라도 해야 그나마 먹고살겠구나.’라고 단념하셨다고 한다. 덕분에 애꿎은 학원비-예체능은 학원비도 좀 비싼가-가 굳어서 고마웠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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