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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플러 Miyoung Nov 06. 2024

[100-3] 셀프 코칭 2. 두려움이었다

있는 그대로 빛나는 존재

엄마는 서른둘에 나를 나았지요. 나는 무슨 이유로 이 세상에 왔는지를 모르겠습니다. 중년이 되어 아직도 내가 사는 세계를 탐구하는 재미에 푹 빠져있습니다. 내가 태어나기 전 엄마는 반짝이는 아주 아름다운 보석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게 태몽이라고 했어요. 나는 엄마의 태몽처럼 시골에서 매우 반짝거렸다고는 합니다. 시골 주민들이 예쁜 아기가 태어났다며 소문을 듣고 멀리서도 구경 왔다고 했었죠. 그 예쁜 아기가 지금 중년이 된 나입니다. 세월이 무색하네요.


엄마는 나와 많이 다른 사람입니다. 외모는 어느 정도 물려주었을지 모르나, 성격은 조금만 물려줬나 봐요. 엄마는 목소리가 큽니다. 나는 그렇지 않아요. 엄마는 당당하고 매우 외향적이죠. 나는 또 그렇지 않아요. 오히려 내향적이죠. 요즘 하는 말로 E가 아니라 I에 가까운데, MBTI검사에서는 매번 E가 나오는 게 이상할 따름입니다.


엄마는 나를 낳고 많이 아팠습니다. 그래서 젖먹이였던 나는 외가댁에 있어야 했어요. 엄마는 건강이 좋지 않아 나를 돌볼 수가 없었죠. 나는 그래도 형편이 좋은 외가댁에서 이쁨 받으며 잘 먹고 잘 자랐죠. 당시 신문물은 가장 먼저 외가댁에 들어왔었죠. 엄마는 빨래터에서 빨랫비누로 손빨래를 했으나, 외할머니는 신형 세탁기에 가루세제를 넣고 버튼을 눌렀죠. 우리 집 밥상에는 한식이 주였으나 외가댁 식탁에는 여러 나라 음식이 올라가 있었죠. 우리 집에는 제 위 오빠들을 위해 사준 몇 권의 책과 권투 장갑, 스케이트가 있었으나 외가댁에는 진짜 같은 오토바이 장난감, 퍼즐, 수많은 위인전과 디즈니 동화와 소설책이 있었죠. 외가댁은 그야말로 금은보화 가득한 보물섬이었어요. 나는 깡말랐다가 외가댁만 가면 통통하다 못해 토실토실해져 엄마가 안기도 힘들 정도로 무거운 아이로 변신했었죠.


그런 나는 아프기도 했었죠. 그래서 의외로 골골한 날들이 많았어요. 그런 나를 외할머니는 보드랍고 따듯한 손으로 얼굴을 쓰다듬어 주시기도, 배를 만져 주시기도 했죠. 가끔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려보라며 의사선생님처럼 나를 진찰하기도 했죠. 그렇게 나를 잘 돌봐주고 외할머니가 계셨지만 나는 엄마도 많이 보고 싶었어요. 멀리 떨어져 있는 엄마가 그리웠었던 것 같아요. 


내가 너에게 섭섭해서 화를 냈던 이유가 그런 게 아닐까 해요. 너를 엄마처럼 생각했었나 봐요. 멀리 있어도 잘 견뎠었는데. 가까이 있으나 어느 날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르는 것이었죠. 그래요. 견딘 거였어요. 나는 괜찮은 게 아니었어요. 괜찮은 척했을 뿐이에요. 아...! 이제야 그걸 알게 되었군요. 그때는 왜 몰랐었을까요? 그때로 다시 돌아가보니 너에게 냉랭했던 나의 모습이 그대로 보이네요. 섭섭함은 두려움이었어요. 엄마에게서 떨어졌듯이 그렇게 떨어질 것 같은 두려움. 어느 한 학자가 그랬어요. 수십, 수백 가지일 것 같은 인간의 부정적인 감정은 사실 딱 하나라고 말이죠. 그건 바로 두려움이라고 해요. 맞아요. 두려움. 나는 두려워서 화가 났어요. 또다시 혼자될까 봐 두려워서.


그런데 혼자면 두려워해야 할까요? 그때는 그랬는데, 지금은 조금은 다르게 다가와요. 영화 <케스트 어웨이>에서처럼 인간은 절대적으로 홀로 지낼 수 없음은 알고 있죠. 그러나 문명세계에서 절대적인 고독이 가당키나 하나요? 우리는 혼자여도 읽을 수 있는 책과 볼 수 있는 TV, 들을 수 있는 음악으로 둘러싸여 있잖아요. 혼자여도 화를 내지 않을 상황이, 두려워하지 않을 상황이 충분한데 말이죠. 물론 사람과 함께 있는 것과 무생물과 함께 있는 것이 다르기는 하겠죠. 세월이 지나 이제는 무생물과 함께 있는 걸 즐기고 있어요. 엄마와 함께 있지 않아도, 너 없이 혼자여도, 다른 사람과 함께이지 않아도 두렵지 않아요. 내 마음 속에 함께하면 되니까요. 이제 두려움은 물리적으로 혼자이므로 오는 감정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어요.


얼마나 다행인가요? 우리는 서로 혼자 있어도 돼요. 그게 서로를 존중하는 길이기도 하죠. 영원히 혼자여야 한다는 뜻이 아닌 건 알죠. 우리 둘 모두, 그 정도는 알 수 있는 때라고 생각해요. 혼자여도 함께이고, 함께여도 혼자잖아요. 미숙한 자아에서 조금 더 성숙한 자아가 되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인 것 같아요. 그렇다고 삶이 무채색이거나 느릿한 음악만 흐르지는 않아요. 차가운 냉골에서 온기마저 잃어버린 몸뚱이로 살아간다는 건 매우 비약적인 상상이죠. 편견일 뿐이에요.


이왕이면 사람들과 함께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해서 잘못된 건 없어요. 우리는 있는 그대로, 그 모습 그대로 완전하고 온전한 존재잖아요. 엄마의 태몽처럼 보석처럼 빛나는 존재이니까요. 그런 내 모습을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격려하고 응원할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평안해져요. 나는 그런 단계로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는데, 너는 어떠한가요?


2024. 11.06. 수. 다이아 벨플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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