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
너는 절대로 나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죠. 늘 당당했어요. 늘 고개를 빳빳이 들고 다녔죠. 어깨는 긴장되어 있었고, 자주 주먹이 쥐어졌죠. 화난 사람처럼 보일 때도 있었죠. 나는 너의 주먹을 펴고 또 폈어요. 긴장된 어깨를 주무르며 제발 마음을 평온하게 가지길 바랐죠. 보는 내가 힘들었으니까요. 낯선 환경에서 적응해 가려는 너의 모습이 안쓰러웠어요. 그래서 더 미안했었죠. 알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너는 유난히 힘들어 보일 때가 있었어요.
그러나 가끔은 평안해 보일 때도 있었죠. 부모님 댁에서, 나와 함께 있을 때, 가끔은 그랬어요. 순한 양이 되기도 했죠. 어린아이처럼 재잘대는 모습이 귀여울 때가 있었죠. 한 번은 집 근처를 걸었을 때였죠. 로리에 거리에 소시지를 팔던 곳이 있었죠. 그 집은 새벽부터 빵을 만들기도 했어요. 어떤 날 아르바이트로 늦게까지 일하고 들어가는 날이면, 그때부터 불이 켜서 빵을 만들기 시작했죠. 하얀 가루가 날리는 모습과 신선한 밀가루 냄새가 인상적이었어요. 푸르스름한 아침이 되면 어김없이 온갖 빵들이 준비되어 있었죠. 콤파뉴, 바케뜨, 어니언 빵, 페스토 빵 등등, 거기에 다양한 수제 소시지까지. 이른 시각부터 빵과 소시지를 사러 사람들이 줄 섰던 곳이죠.
내가 클래스 친구들을 초대했다 했었죠. 너도 돕겠다고 했어요. 우리는 그 빵집으로 갔어요. 썬드라이드 토마토 빵, 페스토 빵, 콤파뉴 빵 그리고 바케트를 샀어요. 노란 종이봉투에는 제법 모양이 동그란 빵을 담고, 기다란 바케트는 하얀 종이로 둘둘 말아 손으로 들었죠. 향기로운 빵냄새를 맡으며 파브르 거리를 걸으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어요. 너의 발걸음이 그날따라 유난히 가벼워 보였죠. 우리는 어떤 대화를 했어요. 클래스 친구들에 관한 것이라든가, 그날의 날씨라든가, 또는 앞으로의 계획이라든가. 집에 도착하고 빵을 내려놓자, 바케트의 한쪽 끝이 이상했어요. 쥐가 뜯어먹은 것처럼 푹 파여있었죠. 내가 깜짝 놀라 물었죠.
“어머, 이거 어떡하지? 우리가 바게뜨를 잘못 샀나 봐!”
그랬더니 너가 그랬어요.
“아니, 내가 먹은 거야. 파브르 거리에서 걷다가 그만 너무 배고파서 조금 뜯어먹었지 뭐야.”
그때 내 얼굴을 너는 보았을까요? 나는 피식 웃으며 기분이 좋아졌었는데. 평소답지 않은 너의 모습에서 어리고 순수한 아이를 보았기 때문이죠. 여리고 장난기 넘치는 너를. 그런 모습을 자주 보여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는데, 그런 나의 생각을 너는 읽었을까요?
2024. 11.07. 목. 다이아 벨플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