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박함
종종 올리브 나무가 꿈에 나타납니다. 드넓은 바위 벌판 위에 홀로 서있습니다. 태양열이 쨍쨍 내리쬐는 여름, 바위 옆으로 난 흙길을 걸으니 먼지가 풀풀 일어납니다. 틈이 간 바위들 사이를 따라 나무의 뿌리가 뻗어 있습니다. 늙은 사람의 손등에 불쑥 불거져 나온 심줄처럼 마르고 울퉁불퉁하고 강렬합니다. 살아남기 위해 포기하지 않는 끝없는 몸부림 때문이겠죠.
몸통은 실타래처럼 단단히 비틀어져 세상을 향해 뻗어가는 가지들을 지탱합니다. 풍성한 초록잎과 올리브 열매를 내어줍니다. 나무는 세상에 홀로 우뚝 선 모습이 나와 닮았고 너와 닮았습니다. 엄마의 모습이고 아버지의 모습입니다.
나의 꿈속 그 올리브 나무는 몇 십 년 전 남프랑스의 여름에 있습니다. 사람들과 걸어갔습니다. 그때 저기 언덕 위에 갈라진 바위를 뚫고 울창하게 홀로 피어있었죠.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태양을 피해 나무가 주는 그늘로 들어갔었죠. 뿌리를 의자 삼아 걸터앉고 빽빽이 펼쳐진 올리브 잎을 바라보았죠. 이렇게 척박하고 마른 환경에서 어쩌면 초록잎은 그렇게 싱싱하고 촉촉하기까지 한지요. 토실토실하게 자란 올리브 열매는 또 어떻고요. 뿌리와 몸통과 너무도 상반된 모습을 한 올리브 나무 잎과 열매를 보고 부조화의 조화를 보았죠. 한 그루 나무에서 뿜어져 나오는 그런 강한 카리스마는 처음이었어요. 나는 마치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한참을 나무 아래 있었죠. 그리도 오랜 세월을 견딘 나무의 몸통을 안아보고, 잎사귀를 쓰다듬었었죠. 산신령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었죠.
그 뒤로 나무는 자주 내 꿈에 나타납니다. 너는 어떤가요?
내가 기억하는 그 나무는 고독한 나와 너, 나의 엄마와 아버지를 닮았어요. 끈질기게 생명을 이어가는 모습이 뿌리의 모양새처럼 절박해 보여요. 한때 그랬고, 지금도 어쩌면 그렇죠. 나는 나의 올리브 나무를 자주 보고 싶습니다. 고독 속에 뒤틀어졌으나 풍성한 초록잎과 기름진 열매를 선물하니까요.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을 주니까요. 절박함이 주는 선물이에요. 지금 나에게 필요합니다.
-----
팔레스타인 광야의 올리브 나무 / 박노해
광야에 선 올리브 나무 한 그루
척박한 땅에서 온몸 비틀며
순결한 열매와 기름을 내어준다
불볕을 견디며 그늘은 세상에 주는
신성한 광야의 올리브 나무처럼!
-------
2024. 11.09. 금. 다이아 벨플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