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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프 코칭을 하다 보면 어린 시절의 기억이 종종 떠오르게 됩니다. 부모님과의 일들, 언니 오빠들과 기억, 동네 친구들, 학교 반 친구들과의 기억, 방학 때면 만났던 친척들과의 추억 등등. 어릴 적 기억은 사소한 질문에 답을 찾으려 생각하다 보면 단골로 생각나는 소재입니다.
그중 특히 음식에 대한 기억은 본능처럼 떠오릅니다. 나는 음식을 생각하면 엄마가 생각납니다. 엄마를 떠올리면 엄마가 해주었던 음식이 또 생각납니다. 도치김치볶음과 따끈한 흰밥이, 일곱 식구가 넉넉히 자리 잡고 아침, 저녁을 먹었던 큰 직사각형의 밥상이 생각납니다. 나는 상석에서 아버지와 엄마 사이에 앉고, 맞은편에는 큰오빠와 작은 오빠, 작은언니가 차례로, 그 오른쪽에는 큰언니가. 각자 자리는 누가 언제부터 정했는지 내가 기억하는 한 자리는 항상 그랬습니다. 어린 나의 밥공기와 수저는 아기의 그것처럼 작고 귀여웠죠. 엄마는 늘 부엌과 가까운 곳에 자리하고 김치나 물이 더 필요할 때마다 몸을 분주히 움직이고는 했습니다. 우리 집 밥상은 나의 가장 어릴 적 기억 중 하나입니다.
내가 엄마의 밥상을 그리워한다는 걸 안 것은 캐나다에서의 일입니다. 2003년 한국을 떠나온 지 몇 해가 지났을 때의 일이에요. 몇 달후면 잠깐 한국을 다녀갈 계획이었죠. 한국을 갈 생각을 하니 그동안 캐나다에서 먹지 못했던, 또는 한국에 가면 꼭 먹고 싶은 메뉴를 나열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된장찌개, 김치찌개, 소고기뭇국, 족발, 보쌈 등등. 가장 한국적인 음식들이 떠올랐습니다. 가장 먼저 먹고 싶은 음식, 두 번째로 먹고 싶은 음식, 세 번째로.... 음식의 번호를 매겨 하나씩 먹기로 했습니다. 그때 엄마의 밥상이 가장 먼저 생각났죠.
‘어릴 적 먹던 도치 김치볶음. 다시 먹을 수 있을까? 엄마의 막장찌개는?’
우리 집에는 된장이 없었습니다. 된장대신 막장을 사용해서 국과 찌개를 끓이고는 했기 때문입니다. 막장은 된장과 고추장의 중간 맛이라고 할까요. 경상도에도 막장이 있습니다. 한번 맛을 본 적이 있는데 엄마의 막장과 맛이 또 다른 맛이었습니다. 또한 엄마는 주로 흰 살 생선으로 요리를 했습니다. 대구와 명태를 토막 내고, 무를 첨가해 맑은 지리탕을 주로 끓여 주었죠. 엄마는 도치라는 당시에는 흔하고 싼 생선을 많이 사용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집에는 돼지고기대신 도치를 넣어 볶은 도치 김치볶음이 있었죠. 감자볶음은 고춧가루가 들어갔으나 국물이 많고 맵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엄마의 음식은 주로 담백하고 가볍게 칼칼한 매운맛이 있었죠. 나는 그런 엄마의 담백하나 특색 있는 음식이 어느 날부터 너무도 그리워서 침대 머리맡에서 상상하며 잠이 들곤 했습니다.
한국에 와서도 엄마의 음식은 늘 그리웠습니다. 떨어져 살아서 그랬나 봐요. 그래서인지 내가 유일하게 보았던 한국 TV프로그램이 <한국인의 밥상>이었다. 최불암선생님이 구수한 목소리로 지역의 지리적 특징과 기후, 문화를 소개하며, 지역특산물 그와 연결된 지역 고유의 밥상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죠. 정감 있고 따듯했습니다. 그 프로그램을 보며 나는 늘 엄마의 밥상을 떠올리고는 했었죠.
어린 시절의 기억 중, 엄마의 음식이 유독 그리운 건 무엇 때문일까요. 성인이 되었어도 여전히 엄마가 그립다는 의미겠지요. 맞습니다. 나는 여전히 엄마의 사랑이 그립습니다. 엄마의 상냥한 목소리와 따듯한 품이 그립습니다. 나는 아직 어린아이인가 봅니다. 당신도 그렇지 않았나요. 그런 자신의 모습이 보였을까요? 그랬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