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꿈을 꾸었습니다. 자주 가는 횡단보도의 신호등입니다. 파란불, 빨간불, 노란불. 때에 따라 변하는 곳이죠. 사람과 차가 멈추거나 움직일 수 있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거리에 둥 떠있는 중앙 신호등 위에 쟁반이 보입니다. 쟁반 위에는 음식이 담긴 접시가 보인 듯합니다. 그런데 그 쟁반이 신호등의 열기로 녹아내리고 있었습니다. 마치 캐러멜바 속 캐러멜이 힘없이 녹아내리 듯, 그렇게 슬그러미 귀퉁이부터 녹더니 어느덧 반 이상이 녹아내립니다. 횡단보도 앞에 서서 보고 있노라니 참 이상할 뿐입니다. 쟁반이 신호등 위에 있는 것도 이상하고 녹아내리는 장면도 그렇습니다. 매우 생생한 모습에 짐짓 놀라 쳐다보는데, 순간 온몸이 추워집니다. 꿈에서 깼습니다. 식은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 나를 발견합니다. 과거가 생각납니다.
그때도 그랬습니다. 매일 밤 식은땀을 흘리며 깼습니다. 악몽을 꾸었는지, 옷과 침대보가 흥건히 젖을 정도였으니까요.
꿈에서 가끔 받아들이지 힘든 장면을 볼 때가 있습니다. 멀리서 꿈속에서 일어나는 장면을 바라보며 내가 개입할 수 없을 때 괴롭습니다. 달려가 참견하고 싶지만 몸이 묶여 움직일 수 없어 보입니다. 일정한 거리를 두고 참관할 수밖에 없어 안타깝습니다.
바딤 젤란드의 <리얼리티 트랜서핑>에 의하면 꿈속의 세상은 허상이 아니라 또 다른 실질 세계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나는 여기에도 존재하고 저기에도 존재하는 평행이론 같은 것이요. 동시에 두 개, 여러 개의 세계에 존재하는 가능태를 이야기합니다. 그렇다면 내가 꿈에서 보는 나는 동일한 또 다른 나라는 의미일까요.
정말 그런 건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가끔 그렇게 믿어 보는 것도 세상 살아가는 재미가 아닐까요. 책에서 내가 특히 좋아하는 파트는 ‘펜듈럼’에 관한 설명입니다. 한마디로 부정적인 생각이 떠오르는 건 ‘펜듈럼’이라는 매개체(?)때문이라는 것인데요. 이 펜듈럼을 부정하고 저항하는 것보다 부정적인 감정이 통과하도록 그 존재를 인정해 주면 된다고 합니다.
“어~! 팬둘럼, 너 구나? 그래 안녕~“이라고 인사정도로 하고 다음단계로 넘어가는 것이지요.
삶에서 힘든 순간이 오고, 부정적인 생각이 들 때, 그때 한 번 사용해 보면 어떨까요.
”아~! 잠깐 힘든 순간이 왔구나! 그래 안녕~“이라고 쿨하게 인사하고 보내는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