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에 한국에 다시 왔을 때의 일입니다. 어쩌다 여성 과학인이 되어 과기부(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에이전시에서 일했을 때입니다. 당시 나에게 일어났던 일은 한 번도 상상조차 해보지 않은 일상의 연속이었죠. 아마 그때부터 나는 리얼 세상을 경험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일이 끝나면 집으로 돌아오는 타인에게는 평범한 길이 나에겐 편치 않았죠. 그래서 부러 다른 길로 다녔습니다. 집으로 가지 않고 한 곳을 거쳐 가고는 했죠. 길들여진 장소, 길들여진 길이 싫었습니다. 어린 왕자와 여우의 대화를 아는 분들은 이해하실 겁니다. 길들여진다는 건 괴롭고 위험한 일이기도 한 것이죠.
어찌하여 곧바로 집에 가야 할 때는 그 길을 거쳐갑니다. 과거의 유산이 그대로 남아있는 길이 거든요. 걸을 때마다 우수수 기억이 발끝까지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나에게는 리얼 세상을 경험하는 순간이죠. 한 번씩 고개를 저으며 생각을 떨쳐내야 그나마 큰 숨이 쉬어집니다. 어린 왕자는 얇은 책이지만 함축되어 있는 글이 많습니다. 울림을 주는 글이죠.
우리에게는 길들여진 존재가 있습니다. 가족이 그럴 수 있고, 내가 생활하는 장소, 내가 소유하고 있는 물건이 그럴 수도 있죠. 그런 존재들이 어느 날 사라지면 어떨까요. 당황스럽겠죠. 그런 일을 적어도 한 번은 겪어 보셨을 거예요. 잃고 나서야 소중함을 알게 되는 것이죠. 어린 왕자는 작가의 철학과 통찰력을 여실히 보여주는 책인 것 같습니다. 울림을 주는 글들이 한두 개가 아닙니다. 이런 글을 쓰기 위해 그는 얼마나 많은 리얼 세상을 경험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일상을 사색하고 질문하고 답하는 일을 반복했겠죠. 셀프코칭을 하는 것처럼요.
유난히 울림이 있는 글을 읽고 싶은 날이 있습니다. 오늘이 그랬는데, 여러 책을 헤매다 결국 불변의 책. 어린 왕자를 펼쳤네요. 오래도록 남는 책은 이유가 있었네요. 책을 뒤적이며 사색에 빠집니다. 이번에는 사막이 아름다운 이유에 대해 이야기하는 구절이 있습니다. 사막이 아름다운 이유는 그 속에 오아시스를 감추어 놓아서라고 합니다. 그리고는 아래와 같은 문장이 눈에 들어옵니다.
“그래. 집이건 별이건 혹은 사막이건 그걸 아름답게 하는 건 눈에 보이지 않지!”
눈에 보이지 않은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70여 년 전의 작가는 이미 알고 있었네요. 나는 몇 년 전에야 알았는데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