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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

와인은 막걸리다!

by 장기혁




오랜만에 딸아이가 집에 와서 아내와 셋이 함께 와인 한 병을 나눠 마셨다. 최고급 와인은 아니지만, 가성비가 뛰어나고 인지도가 있는 레드와인을 두 시간쯤 먼저 오픈해 두고 기다리는 동안, 아내는 다양한 치즈를 정성껏 플레이팅 했다. 세 사람이 한 시간 정도 수다를 떨며 마시기에는 한 병이 딱 적당했다. 평소 딸과는 특별한 화젯거리가 없는 나도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가는 걸 보면, 와인이야말로 진정한 ‘소셜 술’이라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중동에 거주하던 시절, 다양한 국적의 익스팻들과 교류할 기회가 많았다. 서구인들은 주로 일상 속 테이블 와인으로 만 원 전후의 저렴한 와인을 많이 마신다. 식사 초대를 받아 와인을 가져갈 때도 대부분 3만 원 이하의 와인을 준비한다. 생각보다 와인에 얽힌 스토리나 품평에는 큰 관심이 없고, 그냥 음식과 함께 곁들이는 하나의 음료로 여긴다. 우리로 치면 소주나 막걸리 같은 존재랄까.


맵고 짜고 기름진 우리 음식에는 라거 맥주나 청주가 잘 어울리듯, 이탈리아나 프랑스 음식에는 와인이 정말 잘 어울린다. 그래서인지 서양 사람들은 식사에 와인이 빠지면 무언가 허전하다고 느낀다. 우리 식탁에 김치가 없으면 허전한 느낌과 비슷할 것이다. 그래서 디저트와 함께 와인을 곁들이는 풍경도 자연스럽다.


요즘은 국내 와인 애호 인구도 늘어나 세계 각국에서 다양한 와인을 수입하다 보니, 최고급 와인을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 한때 ‘신의 물방울’ 같은 만화가 유행하며 과장된 와인 오타쿠 문화가 형성되기도 했다. 나도 10권짜리 전집을 다 읽고, 해외 출장길에 해당 와인을 사 오기도 했다. 돌아보면 괜히 만화 주인공을 흉내 내며 와인에 대해 호들갑을 떨었던 게 아닌가 싶어 부끄럽기도 하다.


와인을 편하게 즐기기 위해서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원산지, 테루아, 품종, 가격 등을 아는 걸 뽐내기보다는, 와인을 하나의 문화로 받아들이고 합리적으로, 즐겁게 즐기는 태도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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