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럴듯한 제이 Oct 19. 2020

전지적 주변인 시점

우울증 환자를 대하는 방법에 대해


주변인이라 함은, 둘 이상의 이질적인 사회나 집단에 동시에 속하여 양쪽의 영향을 함께 받으면서도, 그 어느 쪽에도 완전히 속하지 아니하는 사람으로 사전에 명시되어 있다.


1. 주변인으로서의 나 자신


현재 살고 있는 가족 구성원들과의 관계를 기준으로 나의 입장에서 봤을 때, '주변인'은 내게 아주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단어였다.

새엄마와 아빠, 새엄마의 딸, 그리고 나. 강아지 두 마리를 합하면 총 여섯의 구성원들 중에 겉으로 보면 가장 그들과 동떨어진 존재. 가족이면서 가족이 아닌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그 외로움을 어떤 문장으로 정의하자니 지금이야 괜히 민망해 헛웃음이 나고 쿨한 척할 수 있지만, 마음속 깊이 그들에게 인정받고 사랑받고자 하는 욕구가 숨어있다. 정확히는 숨어있었다. 참 놀라운 것은 나도 상담을 받기 전까지는 그들에게 받는 인정은 더 이상 나에게 어떤 영향을 줄 수 없다고 단호히 판단했었다는 사실이다. 그 판단은 단지 상처 받고 싶지 않아서 먼저 그들을 외면해버리는 자기 방어적 감정이었던 거다. 그 약하디 약한 속내는 오래전부터 마음 깊이 숨어서 나를 이리저리 조정하고 움직이고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은 나의 주변에 가장 가깝게 존재하는 주변인이자 동시에 주변인일 수 없는 아주 직접적인 존재들이었으므로 부정적인 자극에는 아주 능동적으로 개입되었으며, 나 또한 부정적인 감정에 아주 능동적으로 반응했었다. 그들의 표정이나 말투, 어떤 대화나 뉘앙스, 그 날의 분위기 모든 것에 나의 솜털 하나하나가 곤두서서 모든 신경을 쏟아붓고 있었으니 모든 긴장이 해소되고 안식처가 되어야 할 집에서 나는 가장 피로하고 지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잠들기 직전까지 감정 노동자처럼 나의 감정과 상관없이 계속 웃고 있었고 괜찮은 상태를 보이고 싶어 하는 강박까지. 참 최악의 조건에서 난 10년 넘게 존재를 겨우 부지하고 있었다는 걸 늦게 알아버렸다.


다행히 상담사 선생님을 만나 현재 나의 상태를 객관적으로 보는데 많은 도움을 받았다.


처음에는 가장 먼저 해야 할 행동이 가족들에게 상담받고 있음을, 심적으로 아주 많이 힘든 상태임을 알릴 것 그리고 두 번째가 집에서 분리될 것,이었으니 등 뒤가 낭떠러지 인 줄도 모르고 참 열심히 참고 숨기며 버텼던 것 같다.


나의 우울감에 직접적인 원인인 사람들이 어떤 도움을 주기 위해서는 내가 상담받고 있다는 객관적 상태를 가족들이 전부 알아야 하는데, 난 가족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괜찮아지고 싶었다. 더 이상 상처 받고 싶지 않았고, 어떤 기대가 좌절당하는 일에 신물이 나있던 상태였기에 상담사 선생님께 비밀로 하고 싶다고 몇 번이고 의사를 전달했었다. 그리고 알린다 할지라도 그들의 조치나 반응에 따라 요동칠 내 감정들이 무서웠고, 그들에게 지고 싶지 않다는 이상한 승부욕(?) 때문에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은 이유도 있었다.

그리고 더 이상 그들이 내 상태를 인정한다고 한 들 무엇이 더 바뀔 수 있을까 싶은 회의적인 감정도 컸다.-나중에 숙모가 가족 중 처음 사실을 알게 되고, 삼촌, 고모, 아빠 순으로 알게 되었는데 다행히 부정적인 피드백은 없었다. 그저 아빠는 언제나처럼 침묵할 뿐-나중에 알았지만 그들이 알고 받아들인다는 사실-혹은 인정해준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한 위로가 되었다. 어떤 사건이 있는 게 아니라면 본인이 아니더라도 가족들에게 사실을 알리는 건 중요한 과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가장 중요한 건, 어쨌든 상담사 선생님(제삼자이자 전문성을 가진 인물)을 찾아가 첫 상담을 진행하는 것이지만 그건 이미 언급했던 이야기이기 때문에 따로 이야기하지는 않겠다.




2. 주변인으로서의 당신

 

드디어 본론이다.

전문가도 아니고 당사자도 아닌, 우울증을 가진 사람의 주변 구성원인 당신은 그를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 궁금한 이들도 있을 것이다. 사실 내가 우울증을 겪었던 당사자로서 당시 내 주위 사람들에게 느꼈던 감정을 되새겨보면, 이미 그들에게 바라는 바가 딱히 없거나 어떤 기대도 없는 상태일 확률이 높을 거라 짐작된다. 이미 그 어떤 선을 넘어버린 마음의 이상신호는 여태까지 주고받은 피드백들이 실질적 효과에 대한 반증이니까. 냉정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사실이 그러하다.

그렇다고 해서 주변인들 때문이야라고 생각하느냐 묻는다면 아니, 당사자는 아마 자기 스스로를 가장 큰 원인이라고 생각하며 미워하고 있을 거니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가장 좋은 방법은 역시 그를 괜찮은 상담사 선생님께 데려가 객관적 상태를 보고 적절한 처방과 피드백을 받게 해 주는 일이지만, 그 이후의 일들에 대해서도 굳이 묻고 싶다면 당사자를 대신해 참 고맙다고 말해주고 싶다.


이건 어디까지나 나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개인차가 있을 수 있고, 절대적 방법은 아니라는 것을 먼저 알려주고 몇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첫 번째 조건으로 당신은 우울함을 느끼는 사람이 자신의 가장 약한 모습을 거리낌 없이 보여줄 수 있는 상대여야 한다. 만약 당신이 확신이 없더라도 당사자가 본인의 우울감을 어느 정도 알려왔다면 당신은 그런 존재 중 하나임에 틀림이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의 이야기를 어떤 식으로든 재단하지 말 것, 그리고 본인의 판단으로 답을 내리며 재촉하지 말 것. 그러니까 이야기를 잘 들어주라는 이야기이다.

내가 전문 상담사 선생님 이야기를 자꾸 꺼내는 이유도 결국 들어주는 사람 중에 가장 실직적 도움을 줄 수 있는 최상위가 상담사이기 때문이니까. 게다가 자꾸만 내 이야기를 해서 미안해하는 감정을 느끼지 않아도 되며, 부정적인 이야기나 끝도 없이 바닥을 치는 감정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더라도-역시나-미안해하지 않아도 되고 비밀이 새어나갈까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것. 마음 편히 이야기할 수 있는 내 생활 반경과 떨어져 있는 상대가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아주 큰 위안이 되고 해소가 된다. 게다가 그들은 전문가이기 때문에 환자의 상태에 따른 적절한 솔루션을 제공할 줄 안다.

하지만 진심으로 당사자를 위해주고 인정해주며 어떤 판단도 내리지 않고 품어주는 한 사람이 존재한다면 그 또한 상담사 선생님 이상으로 그에게 많은 위안을 줄 것이라 확신한다.


그리고 두 번째 방법은, 당사자를 당사자 그대로 받아주는 것이다.

우울감에 지칠 대로 지쳐 어떤 활동도 판단도 할 수 없는 이들도 있고, 심각하게는 자해를 하거나 자살에 대해 생각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자살을 생각할 정도라면 두말할 것 없이 전문가와 하루빨리 만나는 것이 가장 좋은 솔루션이지만 이미 상담을 받고 있다면 그들과 함께 있어줄 것, 어둠이 짙어지는 시간에도 어두운 생각이 고조되는 시간에도 계속 함께 있어줄 것, 그리고 그들의 선택에 대해 죄책감을 가지지 않게 평소처럼 대해줄 것이다.

그것이 그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일에 가까운 행위라 감히 생각한다. 심각한 상황에서는 그냥 있어주는 일에 반드시 전문가와의 상담이 병행되어야 한다.

나의 어떤 면들을 바꾸려 하지 않는구나 라고 진심을 느끼게 될 때 당사자는 자신이 존중받는 느낌을 받는다.


세 번째는, 보통 곁에서 힘이 되어주는 이들은 연인들일 확률이 높다는 가정하에 생각해봤을 때, 본인의 육체적 정신적 욕망으로부터 당사자를 대상화하지 말 것.(물론 불순한 의도의 사람들은 이런 재미없는 글을 여기까지 읽지도 않겠지만) 그럴 시간에 그 사람이 마음 놓고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거나, 좋아하는 음식을 함께 먹거나, 자연 속에서 함께 걷기를 바란다.

실제로 난 한창 힘든 시기에 고마운 이를 만나 짧게는 10분이라도 산책을 하고, 바깥공기를 쐐어 많은 도움이 되었었다. 참 신기한 것은 어느 순간부터 흙과 나무 냄새, 그 날의 공기의 질감 같은 오감이 풍부해졌는데 상담사 선생님께 이야기하니 하시는 말씀이, 정서적으로 안정이 되면 오감이 열려서 후각이나 미각, 촉각이 더 잘 느껴진다고 하셨다.

실재로도 그런 활동들이 도움이 되지만 당사자들은 무력감에 시달리며 대부분 어떤 의지를 못 느끼고 있을 확률이 높으므로 옆에서 다독여가며 걷게 하고 조금이라도 먹고, 쾌적하게 쉴 수 있게 도와주기를 바란다.

일반 사람들도 자연과 교감하면 많은 변화가 있듯, 우울감에 시달리는 이들 또한 조금씩 체력이 붙을 것이며, 움직이며 건전하게 소모하는 에너지들로 식욕이 생기고 어떤 자극을 받으며 행복하게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규칙적인 운동, 취미를 즐기는 것, 어떤 일에 몰두하는 것은 그다음의 일인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우울감을 일으키는 원인이 확실히 존재할 경우 당사자를 그 원인으로부터 멀어질 수 있게 할 것. 그 원인이 어떤 사고이든 인물이든 이야기를 들어주되 너무 깊이 파고 들어가 그 감정에 몰두하지 않을 수 있도록 관심을 다른 곳으로 환기시키는 것. 참 쉬운 일이 아니지만, 이야기를 들어주며 다행히 감정이 어느 정도 해소가 되고 당사자가 감정의 여유가 생기면 긍정적인 자극을 주거나 그저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곁에 있어주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언제든 힘들거나 괴로울 땐 전화해도 된다는 그 말 한마디만으로도 당사자는 위로받을 것이다.

  

듣고 보면 참 별거 없다는 생각이 들 것 같다. 전문가도 아닌 내가 이런 글을 써도 될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실제로 내가 도움받았던 경험들을 바탕으로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라 생각해주길 바라며. 많은 가족들이나 지인들이 그리고 우울감을 느끼는 당사자 모두가 자책하지 않기를 마음 깊이 기도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아는 것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