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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럴듯한 제이 Sep 20. 2020

03. 사랑엔 국경도 없다는데 카메라라고 별 수 있나요

사랑하는 데는 이유가 있을지도 몰라요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의 나는 내가 좋아하던 것들에 점점 지쳐가고 있던 시기였다. 좋아하는 것들이라고 뭉뚱그려 말하기도 민망할 정도로 아주 확실한 분야가 정해져 있는 취미들을 꽤 오랜 시간 동안 즐겨왔다.


클래식 성악 전공자로 음악교육과를 졸업하여 중등 정교사 2급 자격증을 소지하고 있으면서, 직업으로는 현재 음악 관련 강사이다. 취미는 사물놀이, 합창으로 동호회 활동을 줄곧 해왔다. 그 이외에도 전공의 끈을 놓지 못했던 건지 여러 가지 어쿠스틱 밴드, 우쿨렐레 동호회 등등 지금 생각해보니 징하다 싶을 정도로 음악 관련 취미에 푹 빠져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몸과 마음이 소모되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취미가 하나같이 전공과 조금씩 걸쳐있다 보니 운이 좋게도 관련 강사 자리들을 소개받아 일을 하게 되었고, 일을 하다 보니 자연스레 취미와 일의 경계가 모호해지기 시작하면서 취미를 하여도 마냥 즐겁지 못한 마음으로 시간을 보내야 했다. 취미를 전공과 같은 계통으로 가졌던 나의 판단 미스였던 걸까. 난 그저 좋아하는 일 들을 꾸준히 해왔을 뿐인데.


엎친데 덮친 격으로 점점 10년 넘게 즐겨오던 취미들에 어떤 책임감들까지 더해지면서-여러 가지 직책이나 역할이 과분하게 주어졌고, 당시의 난 그 모든 것들이 힘겨워서 도망치고 싶었다.-일상의 탈출구 혹은 딴짓을 하며 시간을 보낼 일에 목말랐다. 하물며 당시 오랜 시간 겪어왔던 우울감까지 심해져서 음악을 듣는 일까지 버거워 거의 몇 년 동안 스트리밍 어플로 음악조차 듣지 않았다. 그 정도로 마음의 여유가 없던 암울했던 시기였던 것이다.

딱히 용어로 정의하기에는 좀 뭣하지만, 굳이 정하자면 비즈니스 하비라고 해야 할까. 어떤 이들은 두 가지를 동시에 잡을 수 있다니 배부른 소리라 할지도 모르겠지만, 일도 아니고 취미도 아니고 그 중간선에서 갈 곳을 잃었던 나에게 필름 카메라는 한 줄기 빛과 같았다.

귀가 피곤하지도 않고, 굳이 입을 열어 소리를 내지 않아도 되는 일. 잘하지 않아도 되고 실수하더라도 부담이 없으면서, 혹여 실수를 한다고 해도 그로 인한 우연적 결과물이 꽤 봐줄 만한 취미였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취미로 정의하지 않더라도 나에게는 완벽하게 '음악'이라는 장르에서 동떨어진 시간이라면 그것이 어떤 일이든 간절히 필요했던 과도기적 시기였다. 그런 시간이 필연적으로 필요할 수밖에 없었던 때였던 것이다.


하지만 보통의 사람들은 그런 대상을 만나게 되면 당시에는 딱 맞아떨어지는 시기에서 비롯된 마음이라고 생각하지 못하고, 마치 운명적으로 만난 인연처럼 의미부여를 하게 된다. 나 또한 그랬다. 사실 지금도 손톱만큼은 그 어떤 조건 없이 미놀타를 사랑한다고 생각하지만, 여러 가지 조건들과 맞아떨어졌기에 가능한 마음이었다는 것을 어느 정도 인정할 정도로 미놀타를 향한 마음이 이성적인 사랑으로 바뀌었다. 아직 미혼이지만 뜨겁지는 않아도 의리로 똘똘 뭉친 몇 년차 부부의 마음이 이런 것이라면 이런 맘이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아주 구체적이면서도 단단한 감정으로 바뀌었다.


그때가 참 좋았다 싶은 점들이 있다. 먼저 필름의 가격이 그다지 높지 않았다. 당시도 어떤 이들은 비싼 취미를 시작한다며 혀를 내둘렀지만 필름 한 롤에 3천 원 대였고, 스캔만 한다고 했을 때 2 롤 이상이면 할인을 해주어서 보통 1 롤 가격+스캔 가격을 더하면 만원도 하지 않았을 때이다. 게다가 아무리 셔터를 부지런히 눌러댄다고 해도, 생각보다 36컷을 다 찍으려면 시간이 오래 걸렸기 때문에 처음에야 한 달만에 3,4 롤을 모아 부지런히 필름 현상을 맡겼지만 보통 한 달에 한 롤을 다 채워 맡기기가 어렵다. 매주 주말 부지런히 어딘가에 놀러 간다고 해도, 본격적으로 필름 셔터를 누를만한 장면을 찾기가 생각보다는 까다롭다는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필름의 가격도 당시의 나에게 그리 부담스러운 금액이 아니었다. 거기다 필름사마다 고유의 색과 질감이 있기 때문에 보정으로는 만들 수 없는 그 여러 가지 장면들을 필름이라는 2차적 결과물로 내는 일은 아주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그저 내가 보고 있는 이 장면을 담아내기만 하면, 사각 프레임 안에서 또 다른 평형 세계의 모습을 담아 보여주는 듯하다고 하면 어느 정도와 닿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사실적인 장면에서 나아가 색감과 질감을 통해 또 다른 작품을 보여주는 일이었다. 그리고 색과 질을 따지기 그 이전에 필름 카메라는 나의 세상을 보는 눈을 바꾸어 주는데도 한 몫했다.


카메라의 가격 또한 특정 모델의 단가가 거품처럼 부풀지 않았던 시기라 여러 가지 기종과 렌즈들을 직접 경험하고 또 교환하고 거래하며 쏠쏠하게 경험하기 적당한 시기였다. 어떤 연예인이 쓰는 카메라, 어디 드라마에서 나왔던 기종 등등 점점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알려지기 시작하더니 레트로를 넘어선 새로운 장르인 뉴트로 붐이 일어나며 순식간에 필름 카메라 시장이 커졌고, 유저가 늘어났다. 사실 순기능을 기대했건만 솔직히 난 우리나라 시장논리에 실망 아닌 실망을 하기도 했다. 그래도 장롱 속, 혹은 중고시장에 잠들어있는 여러 가지 필름 카메라가 이대로 멸종되는 것보다는 세상 밖으로 나와서 다시 본래의 목적을 위해 기름칠되는 그 과정이 왠지 뿌듯했다. 여전히 필름 카메라로 인해 행복해지는 이들이 많이 생겼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 또한 여전하다.


필름도 가게마다 재고가 여유 있어서 여러 가지를 구입하여 시험해보는 재미가 꽤 쏠쏠했는데, 코로나의 여파와 함께 수요는 폭발하고 공급은 바닥을 치니 필름 카메라 생활에 큰 타격을 입은 이들이 여럿일 것이다. 서로 욕심내지만 않는다면 참 좋으련만 나 또한 그렇듯 한국인들은 세계 그 누구보다 빠르고 집요한 유전자를 소유하고 있어서 나로서는 참 성가신 경쟁자들이다. 사족이 길어지지만 질 수 없다고 하며 항상 한 발 늦는 본인은 너무 슬프다.


난 보통 사람들이 귀가하는 시간부터 일을 시작한다. 레슨이라는 게 보통 방과 후, 퇴근 후에 시작되는 일이기에 노을을 보는 일이 정말 하늘에 별따기 수준으로 잘 없었고 당시 주말에는 집에서 쉬는 일이 많아서 자연스레 그 시간에 하늘을 올려다보는 일이 없었다. 그런 사실에 자각조차 없다가 필름 카메라를 시작하면서 깨닫게 된 것이다. 사실 노을은 고사하고 그저 푸른빛 하늘, 비 오는 하늘, 지나는 가로수 잎의 색, 걸음마다 보이는 골목의 장면들이나 내 앞에 있는 사람의 어떤 표정과 얼굴 선 등등에 무감각한 일상을 보냈다. 자극적인 시청각 매체에 길들여진 한 인간으로서 자연스러운 모습들에 대한 감흥을 제대로 즐길 계기도 없었고, 방법도 몰랐다.



우리집 옥상에서 미놀타로 촬영한 달과 하늘



생각해보라.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음먹고 어딘가 여행을 가지 않는 이상 사진을 찍어서 남겨두는 일이 잘 없다. 다들 바쁜 걸음으로 본인의 하루를 살아내기에 바쁜 팍팍한 시간으로 하루를 가득 채울 것이다. 뭐 일단 최소한 나라는 사람은 그렇게 살았다. 사람들을 잘 쳐다보지 않는 건 모르는 이가 나를 쳐다보는 시선을 나 스스로가 싫어했기 때문에 지나는 사람들을 관찰하지 않았고, 그 결과 자연스레 주위 풍경에 시선을 두지 않는 습관이 생긴 것도 한몫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나보다는 해맑았을지 모르겠지만, 훨씬 차가운 사람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타인과 낯선 풍경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하지만 미놀타를 만난 이후로는 스마트폰으로도 의미 없는 풍경들에 의미를 두는 일들이 좋아졌다. 아니, 정확히는 내 주위의 풍경과 얼굴들에서 의미와 애정을 부여하고 찾아내는 방법을 나도 모르는 사이 터득했다.

내 사람들의 몰랐던 선과 면, 표정과 시선을 미놀타의 눈을 통해 정면으로 응시하는 일에 시간을 쏟았다. 수 초가 지나는 시간 동안 응시하다 나도 모르게 그 사실을 깨닫고 몰래 울 뻔했던 적도 있다.

내가 이렇게까지 누군가의 가장 예쁜 구석을 찾아내고 담아내고 간직하려 애썼던 적이 있을까. 애정을 담지 않으면 사랑스러운 부분 또한 찾을 수 없기에 자연스레 프레임 건너 피사체들에 마음을 주기 시작하면서 스스로에게까지 그 시선이 흘러 애정 어린 시선으로 나 자신을 바라볼 만큼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참 신기한 일이었다. 그 사실을 문득 깨닫고 보니 사람이 삶에 지치다 보면 어떤 대상에게 시선을 주는 일에도 품이 들어 힘겨울 수 있구나 했다. 그렇게 점점 여러 가지 장면들을 관찰하는 일이 너무도, 정말로 좋아져 버렸다.


그 어떤 대가를 바라지 않고, 소모하지 않아도 되는 일에 순수한 열정을 쏟는 시간은 우리에게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또 다음 시간을 살아갈 수 있는 에너지를 차곡차곡 쌓아 다시 앞으로 걸음 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이런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취미야 아주 많겠지만 나에게는 필름 카메라가 그랬고, 미놀타가 그랬다. 애틋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푼수같이 보일지라도 많은 이들이 필름 카메라를 경험해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오늘도 이렇게 미놀타를 향한 연서를 써본다. 이렇게 과거의 기억을 상기시켜보니 미놀타에게 참 고마운 일이 많다. 앞으로도 계속 많은 장면들을 함께 볼 수 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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