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내가 좋아하는 일에 집중할 때조차 용기가 필요하다 02
그런 이유로 거의 10년 전부터 매년 새해를 보러 제주도로 떠났다.
20대 초반 결혼한 사촌언니가 제주로 시집을 간 이후로 여름 방학마다 언니를 보러 제주를 갔었는데, 처음엔 알려진 관광지들을 일부러 찾아다녔지만 그보다도 빽빽한 건물들과 사람들로 북적이는 도시와는 다른 제주의 풍경과 적적한 특유의 분위기가 너무도 편안했다.
게다가 집에 있는 것이 나에게는 언제나 신경이 곤두서는 일인 시기였기 때문에-아버지의 재혼으로 새로운 식구와 함께 생활했다-집에 자주 들어가지 않던 시기였기도 했다. 대학시절엔 자취하는 친구네 집에서 살다시피 한 적도 많았으니까.
필름 카메라와 재회했던 그날도 난 어김없이 제주에 새해를 보러 갈 계획을 하고 있었다. 마음 맞는 친구-이 친구와는 여행을 아주 자주 다녔다-심이 나에게 한라산에서 새해를 보면 어떻냐고 했다. 난 산이랑 친하지도 않았고, 체력도 거의 바닥 수준이어서 자신이 없었다. 체력이 좋던 고등학교 시절 진달래 대피소 까지만 갔던 그때도 내가 한라산 다시 오나 봐라 할 정도였기 때문에 지금 간다면 가다가 포기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게다가 눈 오는 한라산이라니, 엄청 춥고 미끄러울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눈이 온 뒤 한라산의 풍경 또한 살면서 한 번쯤은 봐야 할 절경 중에 절경이 아닌가. 결국 큰 맘먹고 한라산으로 새해를 보러 가기로 했고 보란 듯이 난 진달래 대피소에서 혼자 낙오된 채 몇 시간 일행을 기다리는 처지가 되고 말았었다. 미칠듯한 오한이 와서 도저히 정상까지 못 가게 된 것이 이유였다.
아침이 되어 일행의 도움으로 산을 내려와 숙소까지 가서 겨우 한라산 정상의 모습을 사진으로만 볼 수 있었는데, 얼마나 아쉽던지. 한라산을 너무 만만하게 봤던 걸까. 또 언제 입장 제한에 걸리지 않을 만큼의 눈이 쌓여 정상까지 갈 수 있을지 모를 그 소중한 기회를 놓쳐버렸다. 별다른 방법이 없었으므로, 다음번엔 체력과 장비를 제대로 갖추고 가리라 다짐했다. 그리고 새벽에 쓴 체력 보충을 위해 잠을 청하며 후발대로 오는 대학 친구들을 기다렸다.
그리고 친구들과 함께 떠난 다음 일정이었던 금오름에서 제주도에 도착했던 날 책방에서 만났던 일회용 카메라를 처음 꺼내 들었다.
36컷을 찍을 수 있었던 자그마한 일회용 카메라는 아주 가벼워서 무게감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꽉 움켜쥐지 않으면 떨어뜨려버릴까 봐 전전긍긍하며, 뜯었던 비닐 껍데기 안에 고이 모셔 놓고 찍고 나면 다시 뜯기 전처럼 보관했다.
36번 셔터를 누르면 더 이상 사용이 불가능한 물건. 네모난 플라스틱 통에 든 일회용 카메라를 손에 드니 참 생경한 기분이 들었다. 일상생활에서는 그 어떤 제약 없이 마음껏 남겨왔던 일상이 새로운 모습으로 눈 앞에 펼쳐지는 그 느낌과, 레버를 손으로 직접 돌릴 때 필름이 감기며 나는 드르륵 거리는 소리 조차 좋았다. 필름 카메라를 들고 서는 순간에 느껴지는 모든 감각에 스치는 모든 느낌들이 참 좋았다.
내가 서 있는 그곳이 마침 볕과 바람이 좋은 곳이었고, 내가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였고, 하필 제주의 오름이어서 그런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필름 카메라와의 첫 만남은 완벽했다.
그저 시간의 한 단면을 쪼개어 남기는 과정일 뿐이었지만, 이미 필름 카메라를 꺼내 들어 친구들을 뷰 파인더 너머로 마주 보는 그 시간 상의 나는 시각뿐만 아니라 장면에 담긴 오감을 오롯이 느끼며 즐기고 있었다.
첫 필름 카메라를 얼마나 신중하게 찍었냐면, 그때 이후 3박 일정에서 36컷을 모두 찍지 못하고 남겨 가지고 오게 되었을 정도였다. 컷을 모두 채우지 않고 인화를 맡기기엔 아무래도 남은 필름이 아까웠으므로, 찍었던 사진의 결과물을 만나게 된 건 거의 한 달이 더 걸렸었던 것 같다. 다행히 다음 여행 계획이 그 달의 마지막 주였기에 그나마 일찍 맡길 수 있었다.
결과물을 만나기도 전에 필름 카메라에 대해 좀 더 알아가고 싶은 마음이 움트기 시작했던 것을 생각하면 난 아마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필름 카메라를 만났던 제주에서의 경험이 많이 좋았었나 보다. 그렇게 다음 여행을 위해 미리 여러 종류의 일회용 카메라들을 몇 대 더 구입하였고, 그 일정 중에 몇 대의 일회용 카메라들의 필름을 무사히 채워 첫 필름 카메라와 함께 인화를 맡길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신중할 수밖에 없었던 내가 이해가 되면서도, 돌아오지 않을 장면들에 스스로 인색했던 기억이 조금은 아쉽다. 좀 더 여러 가지 장면들을 자유롭게 남기는 배포가 있었다면, 그때를 돌아보며 추억할 장면들이 더 많이 남아 있을 텐데 말이다. 잘하고 싶은 마음을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잘하지 않아도 의미는 충분하다는 사실을 이후로 서서히 알게 된 것 같다. 필름 카메라를 접하고, 또 미놀타를 만나 여러 가지 장면들과 만나게 되면서, 또 그 장면들을 담아내고 결과물들을 만나면서 말이다.
혹시나 그 장면을 내가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잘 담아낸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서툴러도 얼마든지 괜찮았다. 숨을 참고 카메라를 고정시켜 대상을 관찰하는, 가장 만족스러운 선이 우연을 가장하여 나타날 때 그 찰나를 담아내는 그 시간 자체가 의미 있다는 것을 미놀타는 천천히 나에게 가르쳐 주었다.
필름 카메라의 결과물에서 만큼은 나 스스로 나를 평가하려 들지 않았기 때문에 가장 큰 자유로움을 느꼈다. 다른 누군가에게 평가를 받는 것보다도 스스로에 대한 기준을 설정하여 스스로를 채찍질했던 바로 나 자신이 제일 힘들고 버거웠던 것이다.
그리고 타고난 성정 자체가 뭔가를 빨리빨리 처리해야 하고, 급하게 진행되어야 마음이 편했던 나는 뭔가를 기다리는 일이 힘들고 버거웠는데, 필름 카메라의 한 롤을 가득 채우지 못해 몇 달을 지나 현상을 맡기게 되었을 때도 미놀타는 기다림의 즐거움을 알게 해 주었다. 기다리는 일이 이렇게 설레고 벅찬 일이었나 싶을 정도로, 그 기다림이 좋았기 때문에 계속해서 새로운 필름을 감아 또 한 번 새로운 장면들을 담아낼 수 있는 힘이 생겨났다.
기억력이 좋지 않은 내가 잊고 있던 장면들이 세상에 드러나면서 그때의 기억이 새삼스럽게 떠오를 때면 참 기분이 묘할 때도 있었다. 필름 카메라의 그 자글자글한 질감과 오묘한 색감은 기억의 질감과 닮았는지, 기억에서 꺼내온 것 마냥 그때의 분위기를 잘 담고 있었다. 물론 어떤 카메라로 남겨놓든 그렇겠지만, 나만의 착각이라고 믿어도 좋을 정도로 필름 카메라로 담아낸 장면들은 신기할 정도로 그때의 오감을 깨워 끄집어내어 주었다.
필름 카메라의 그런 특징은 사람마다 기억과 시점이 다르게 추억되는 일과 닮아있다. 가끔 왜곡되어 저장되는 고유의 색감들은 스스로 가늠하지 못했던 내 시선 속 또 다른 풍경을 만나게 해 주었다. 마치 또 다른 내가 기억하고 있는 장면인 듯 새롭지만 익숙한 장면들을 보여주었다. 지루할 틈이 없었다.
가끔 사진은 카메라가 찍어주고, 난 프레임 너머의 장면을 지켜보는 관찰자가 된 것 같은 착각이 들 때가 있다. 난 그저 그 시간을 즐기면 되었고, 숨을 잠시 멈춰 뷰 파인더에 눈을 맞춰 정성을 들이는 그 시간 자체가 사랑스럽고 값지게 느껴졌다. 어쩌면 어떤 일에 공들이고 노력하는 시간이 나에게 필요했었나? 모든 것에 지쳐 될 대로 되라는 마음이 나에게 너무 하릴없고 머물 곳이 없어 되려 버거웠나? 가끔 사람들은 머릿속을 비운채 온전히 쉬는 시간이 필요하니 난 그런 시간들이 필요했던 걸까?
때로는 어떤 이유도 뜻도 없이 스스로를 내버려 두는 일도 필요하니까. 의미가 없다고 해서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니까.
물론, 어떤 이유였던지 지금의 나에게 있어서 정답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미놀타와 함께하는 시간이 소중했던 것은 정답이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던 시간 그 자체였기 때문일 것이므로.
가끔 우리에게는 결과와 정답이 중요하지 않은 온전한 과정만을 위한 일 또한 필요하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