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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익재 Sep 27. 2019

'시간'의 의미.

시간에도 매뉴얼이 필요해

지난 5일, 한국에 잠시 들어와서 지내고 있는 동안, 유독 '시간'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된다.


https://brunch.co.kr/@stillwithyou/21


아마도 한국이 내가 나고 자란 곳이기는 하지만, 최소한 지금은 내 삶이 독일에 있으며, 독일로 다시 돌아갈 날이 정해져 있다는 것 때문이리라.


사람들 생각이 그런 것 같다.


풍요롭고 여유가 있을 땐, 주변에 있는 것들이 마치 공기와도 같아서 그 소중함을 느끼지 못하는 것만 같다.


하지만, 여유가 없고 갈급할 땐, 하나하나가 다 신경쓰이고, 지나가는 모든 것들이 아깝기만 한 것이다.


지금 나에게 시간이 그렇다.


애시당초 알고 있었다. 이번에 한국에 들어올 때,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만 1개월이라는 것을.

그리고 매번 독일에서 비자를 받을 때도 

"당신에게 얼마동안만의 시간을 드리지요."
라는 의미이기도 하고.


삶의 모든 것들이 시간과 관련되고 그 시간은 때로는 타이밍을, 그리고 그 타이밍과 시간이 쌓이고 쌓여 한 사람이 지나 온 타임라인(Timeline)을 형성한다. 그리고 그걸 우리는 인생이라고 한다.


'시간'이라는 아젠다로부터는 사실 지금 뿐 아니라, 내가 태어난 그 순간부터 이 세상을 떠날 그 순간까지도 자유로워지기 힘들다.


그렇다면, 그런 와중에서도 최대한 자유로워질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시간으로부터 항상 쫒기는 삶을 살게 될테니.


사람마다 방법은 각자 다 다르겠지만, 나도 하나의 방법을 정했다.

게획을 잡는 것은 쉽지만, 그 계획을 습관적으로, 지속적으로 실천하는 것은 힘들다는 사실을 잘 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을 수 만은 없지 않은가.


"시간을 최대한 쪼개보자"


꽤나 거창하게 적은 글치고는 클래식한 방법론이다.

하지만, 클래식한것이 때로는 잘 먹히기도 한다.


지난 수 개월 동안, 사실 갈피를 못 잡고 방황했었다.

그 시간들은 한편 나름 바쁘게 지나온 시간들에 치여 하지 못했던 고민들을 한꺼번에 할 수 있었던 그런 시간이기도 했다.


생각해 보면, 지나온 시간들에 있어 내가 주도권을 쥐고 온 시간들이 얼마나 있었을까 싶었다.


이참에 어짜피 흘러갈 시간이라면, 그 고삐를 내가 쥐어보기로 했다.


처음에야 마치 새 구두를 신으면 발 뒤꿈치가 벗겨지고 아프듯 힘든 시간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시간들이 지나고 나면 내가 쥐고자 했던 그 고삐도 어느새 내 손안에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누구나 고민이 많고 힘든 그런 세상이다.

나 역시도 앞서 쓴 글처럼 여러 글들을 쓰고 있는 것이, 때로는 일종의 '발버둥'으로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발버둥'의 결과는 크게 둘 중 하나일 것이다.


"빠져나오거나, 빨려들어가거나."


이왕 둘 중 하나라면, 가능한 전자에 희망을 걸어보는 것이다.


브런치에 있는 내 소개에 난 이렇게 적었다.

"여유가 생길 때마다 글을 씁니다. 주로 훗날 저 스스로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들을 담습니다." 라고.


훗날, 이 글을 보게 될 나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이 글 이후의 시간 동안 발버둥의 결과는 어땠을까.


전자였을까. 후자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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