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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hee lee Nov 29. 2019

공중보건: 이것이 나의 길일까

MPH 석사 적응기 2탄 

아직 12월이 안되었지만 벌써 기말고사가 시작되었다.

오늘 오전, 지난 3개월 동안 내 머리를 하얗게 만든 통계학 시험을 보았고,

앞으로 2주 동안은 질병역학 시험공부를 하고, 마지막 과제 몇개 마무리하고, 파이널 프레젠테이션 준비하면 나의 석사 1학기가 끝이 난다. 돌아보면 지난 3개월은 참 빨리 지나갔다. 한편으로는 그동안 내가 무엇을 했는지 얼떨떨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정말 많은 걸 배우고 많은 사람들을 만났구나 라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다른 걸 떠나서 "나"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한 시간이 되었고 앞으로의 진로를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었다. 물론 '답' 이란 건 아직 없지만...


요 몇 주 동안 느낀 점을 정리해보려 한다.

마지막 통계학 강의 슬라이드!!! 이토록 기쁠 수가. 우리 당분간 만나지 말자.
1. 간호사의 길이 불투명해서 시작하게 된 석사, 그 길은 더 불투명 해졌다. 

난 대학원에 진학함으로써 그동안 품고 있었던 나의 커리어에 관한 답답함이 바로 풀릴 거라는 착각을 하고 있었다. "그래, 이 공부를 하면 답이 나올 거야! 나의 길이 바로 훤하게 열릴 거란 말이지"


간호사 일을 하며 번아웃이 심해서, 난 이 공부가 날 바로 살릴 거라는 엉뚱한 생각을 한 것 같다. 현실은 이 길이 맞다는 확신 대신, 내가 그동안 여유가 없어 진지하게 생각하고 고민하지 못했던 질문 '간호사가 아니면 무엇을 할까?'대해 궁리할 기회가 주어진 것 같다.


남을 위해, 남들과 함께, 늘 몸과 머리가 바쁘게 일을 하던 내가 이런 여유가 주어지니 나 자신을 갖고 어떻게 할지 몰라서 가끔 안절부절못한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건 무엇일까? 학사를 간호학을 안 했더라면 난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임상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나에겐 간호사가 천직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정말일까? 내가 좋아하는 일 보다 잘하는 일을 계속해야 하는 걸까? 


2. 내가 왜 이 길을 선택하게 되었는지 상기시켜 주신 교수님

며칠 전엔 보스턴 대학의 유명한 교수님이 오셨다. 그는 Dr. Sandro Galea. 그의 공중보건학 논문은 900개가 넘게 출판이 되었고, 구글에 그의 이름만 쳐도 프로필이 올라올 정도의 엄청난 공중보건의 인물이시다. 갈레아 교수님의 스토리를 알게 되면서, 그도 공중보건을 공부하게 된 계기가 나와 비슷한 점들이 있다는 것에 놀랍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나에게 위안을 주었다. 


그는 1992년도에 온타리오 토론토 대학에서 갓 졸업한 의사로서, 대다수의 졸업생들이 가기 꺼려하는 캐나다의 촌으로 가기로 했다. 의료진이 가장 부족한 곳들은 큰 도시가 아닌 작은 마을들이기 때문. 그래서 온타리오에서 가장 의사가 부족한 곳들만 찾아다니며 자신의 시간과 능력을 그 마을 사람들에게 선물하였다. 그렇게 시작한 갈레아 교수님은 더 많은 사람들을 돕기 위해 점점  험난한 곳을 찾기 시작하였고, 그 결과 '국경 없는 의사회'를 통해 소말리아에서 1년 동안 봉사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자신의 커리어를 바꿀 중요한 깨달음이 있었다고 한다. 


병원에서 의사나 간호사로써 하는 업무 중 부딪히는 문제들은 대부분 빠른 시간 내에 수습을 하고 바로 결과를 알 수 있기에, "instant gratification" (즉시 만족을 느끼는 것)을 느낄 때가 많다. 하지만 오래 하다 보면 사람을 살리는 일은 마치 강에 빠진 사람들을 일일이 강가로 끌어올리는 일 같다. 한명 한명 끌어올려 살리 때마다 느끼는 쾌감은 있어도 몸과 마음이 지치기 마련이고, 바쁘게 끌어올리다 보면 어느 순간 "왜 계속 사람들이 강에 빠지는가"라는 질문을 하기 시작한다. 


공중보건에선 구조 방법을 쓰는 병원이나 다른 의료 시스템의 역할을 "downstream" (하류)이라고 하고, 공중보건처럼 예방에 집중하는 건 "upstream" (상류)이라고 한다.   


갈레아 교수님도 생과 사에  머무는 환자들을 끌어올리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을 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나도 병원에서 근무하며 나날이 늘어나는 환자 수, 해마다 길어지는 응급실 대기 시간에 '어떻게 하면 아픈 사람들이 덜 생길까'라고 자주 생각했었다. 그래서 강 하류에 빠진 사람들을 구조하는 일을 돕는 것보다는 상류에서 덜 빠지게 하는 게 오히려 더 큰 역할을 하겠다 싶어서 공중보건을 공부하게 되었다. 


난 요 몇 달 동안 이 이유를 잠시 잊고 있었던 것 같다. 


보스턴 대학의 Sandro Galea 교수님의 강연.


3. '건강함'에는 의료 시스템이 전부가 아니다

한 평생을 살며 우리 건강을 컨트롤하는 건 의료 시스템이 얼마나 좋으냐 나쁘냐가 전부가 아니다. 우리가 자란 가정환경, 매일 먹는 음식, 잠버릇, 만성 스트레스, 사회 경제적 지위 등 여러 가지가 '건강'을 만든다. 하지만 병원에 입원하게 되면서 치료를 받는 이유는 xx병/질환이라는 진단을 받았기 때문이다.  병을 치료하는 만큼이나 중요한 건 병을 일으키는 사회적 문제들을 고쳐야 한다. 예를 들어 빈곤이 사람에 미치는 수많은 영향들을 알아보면 왜 사람이 아플 수밖에 없는지 쉽게 답이 나온다. 빈곤 때문에 교육을 받지 못해서 직업이 없고, 안정된 집이 없고, 그러므로 만성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건강한 식생활을 하지 못하면 어떻게 건강할 수가 있는가.


난 간호학에서 배우지 않았던, 질병을 일으키는 '몸 밖의' 이유들 대해 알아가는 게 너무 흥미롭다. 나의 세상을 더 조심히 관찰하게 되는 것 같고, 의료계 이슈뿐만이 아니라, 정치, 환경, 경제적인 이슈들을 접하게 되므로 매일매일 배우는 게 참 많다. 자세히 보면 모든 것이 공중보건과 연결이 되어있다. 


4.  나의 다음 도전, research


병원 유니폼을 입고 목에 청진기를 두른 지 벌써 몇 개월이 지났는가. 그때는 일에 지치고 싫증을 느꼈어도 일에 대한 내 능력엔 충분한 자신감이 있었다. 하지만 20대 후반에 다시 학생이 되고 나니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 같은 느낌이 들 때가 많고, 나의 가치가 무엇인지 우울한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새로운 도전을 한다는 게 정말 쉽지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조금씩 시간이 지나면서 여러 대학원생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교수님들도 알아 가다 보니, 우린 다 똑같은 '사람'이라는 걸 깨닫고 있다. 우린 모두 이 세상에 우리의 자리가 어디인지, 우리의 역할은 무엇인지 궁리하며 새로운 도전에 끊임없이 시도해보는 중인 것이다. 


그 도전 중 하나는 나에겐 "연구"다. 석사와 함께 유엔 대학교와 공부를 하면서 벌써 몇몇 학술대회 참가하게 되었고, 앞으로는 유엔 연구원과 작은 국제보건 프로젝트를 함께 할 예정이다. 연구를 한 번도 해본 적이 없기에 설렌다. 연구 주제는 월경 위생 관리. 여러 빈곤국의 여자 아이들이 월경과 관련된 시설 및 이해 부족으로 인해 교육의 기회를 제한받고 있고, 성인이 돼서도 경제적으로 활발하게 활동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앞으로 연구원과 함께 세계적 여성들의 월경 위생 대해 알아가게 되어 벌써부터 기대된다.

얼마 전 공중보건 컨퍼런스의 학술대회에 참가하면서 다른 참가자들에게 포스터 설명 중인 모습. 찍어주신 작가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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