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간호대 졸업 후 캐나다 대학병원에서 근무한 경험을 바탕으로 적은 글이기에 한국 간호사들의 경험과 사뭇 다를 수도 있다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이제는 간호학과 학생 시절은 오래된 이야기지만, 졸업후 신규 간호사로써 병원에 처음 입사했던 시절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이제 6년차 간호사인 나는, 신기하게도 학생 시절엔 주변에서는 내가 졸업 후 하루도 임상 간호사로써 일을 할거라는 생각을 안했었다. 그토록 난 실습이 싫고 두려웠으니까. 졸업이 다가올수록 간호사의 길이 내 길이 맞는지 정말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일단 돈은 벌어야겠으니 두눈 감고 뛰어 들었다. 그리고는 나름 일이 즐겁다는걸 배웠다. 오늘은 지나온 시간동안 나에게 힘든 시간을 이겨 낼수 있었던 몇가지 조언을 나와 비슷한 신규 간호사인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까 싶어 이 글을 남긴다.
1. 너는 유노윤호다
4학년 2학기에 들어섰을 때는 겁이 덜컥 났었다. 실습은 2학년 때부터 해왔지만, 실습 대한 두려움은 똑같았고 내가 어떻게 몇 개월 후 혼자 환자를 담당할 수 있는 간호사가 되겠나 싶었다. 병원에서 일을 척척 해내시는 간호사분들 볼 때마다 감탄하였다. 하지만 나 자신을 볼 때는 참 하염없이 부족해 보였다.
마지막 2학기 실습을 신장내과 (nephrology) 간호사 선생님과 풀타임 스케줄을 함께 뛰기 시작했을 때, 내가 홀로서기하려면 얼마나 갈길이 먼지 뼛속으로 느꼈다. 그래서 마음먹고 마지막 실습 학기는 두 팔 걷어붙이고 뛰어들었다. 흔히 영어로 "fake it till you make it"이라고 하는데, '지금이 마지막이다'라고 생각하고 하나하나씩 간호사의 업무를 배워갔다. 모르면 당당히 모른다고, 실수를 하면 당당히 죄송하다고 하며. 매일 같이 '나는 지치지 않아!! 힘들지 않아! 즐거워!'를 머릿속으로 외쳤다. 그렇게 4개월동안 프셉 선생님의 2교대 DDNN 스케줄을 따라 하며 그가 맡은 환자들을 위한 모든 업무는, 몇 가지 제외한 (예. 의사에게 직접 오더 받는 거) 것들 빼고는 내가 책임졌었다. 늘 긴장을 낮추지 않고 double check, triple check를 해가며 실습을 마쳤다.
그렇게 졸업하고도 첫 직장은 비슷한 다짐을 하고 시작하였다. 꾸중도 많이 들었고 눈치도 꽤나 보였다. 캐주얼-파트타임이라는 x 같은 스케줄 때문에 첫 6개월은 온콜 생활을 하였지만, 그게 어느 순간 날 더 강하게 만들어 주었다. 언제 일을 할지 몰라 늘 긴장을 하고 있었고, 부르면 나가야 하는 입장이어서 늘 같은 병동이라도 땜빵해주는 역할을 하느라 시프트마다 어싸인먼트가 바뀌었다. 힘들었지만 심장 내과에 시작한 나는 여러 심장 질환을 가진 환자들을 간호하게 되었고, 그저 눈 꾹 감고 일하면서 배우다 보니 어느 순간 둔했던 나의 일손도 빨라지기 시작했다.
2. 딱 8개월만 참아봐
졸업할 무렵 한 간호 교수가 우리 반 학생들에게 하셨단 말씀이 생각났었다.
"병원 일이 힘든 건 알아. 하지만 딱 8개월만 버텨. 8개월 후 그 일을 네가 계속하고 싶은지, 다른 길을 선택해야 하는지 알게 될 거야"
교수님은 8개월이란 시간은 한 병동/부서의 분위기를 파악할 시간과, 간호사로써의 루틴, 그리고 동기들이 전체적으로 어떤지 알 수 있게 되는 시간이라고 말씀하셨다. 1년이면 더 좋지만, 1년이 너무 길어서 시작하기도 전에 마음이 괴롭다면 8개월만 참아 보라고 하셨다. 그리고 8개월 후, 일이 자신에게 안 맞다고 생각한다면 그때는 조금이라도 경험이 있으니 병원 내에 이직이 쉽게 될 것이고, 혹은 아예 병원에서 나올 수도 있다고 하셨다. 특히 간호사는 병원에서 커뮤니티로 빠지는 건 쉽지만 반대 방향은 좀 더 어렵기 때문에 가능하다면 병원에서 시작하는 것이 좋고 하셨다.
그의 말은 신기하게도 맞아떨어졌었다. 하루하루가 무섭고, 가슴이 뛰던 내가 정말 8개월쯤 지나니 어느덧 나도 놀랄 정도로 일을 즐기며 하고 있었다. 동기들로부터 신뢰를 받기 시작했고, 함께 근무하는 까다로운 심장 전문의들도 나의 의견을 들어주시기 시작하였다. 그리고는 그 부서에서 3년이라는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3. 분명 너에게 맞는 부서가 있다.
해외에서는 간호사들 대한 이런 말이 있다: “A nurse is a nurse is a nurse”.
간호사=간호사=간호사. 즉 간호사는 다 똑같다는 말이다. 내과 간호사, 외과 간호사, 중환자실 간호사, 수술실 간호사, 호스피스 간호사, 모든 간호사들이 다 똑같다는 의미다. 그러므로 간호사는 어디를 가던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난 동의하지 않는다. 물론 기본이 가춰졌다면 어느 일이라도 이 악물고 억지로는 할수 있다. 하지만 사람마다 성격이 다르듯이, 맞는 일이 있고 안 맞는 일이 있다. 간호사도 마찬가지다.
부서마다 그쪽으로 끌리는 간호사들이 따로 있다. 예를 들어 응급실로 입사한 친구들의 성향을 보면 여러 가지 multi-tasking을 하는 걸 좋아하고, 한 환자를 오랫동안 간호하는 것보다는 응급 환자들을 스테이블 할 때까지 간호하고 병동으로 보내는 걸 즐긴다. 그러므로 매일매일이 새롭고 여러 가지를 배우게 된다. 반대로 중환자실 간호사들은 한 환자의 상태를 정확히 파악하고 섬세한 디테일까지 알아 가며, 시간이 흘러 조금이라도 이상 신호를 발견하면 바로 조치를 취하는 꼼꼼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처음 졸업해서 입사하는 병동은 나에게 안 맞을 수도 있다. 졸업 후에 바로 나에게 딱 맞는 곳을 찾기는 어려울 수 있으니, 마음을 열어두고 일을 배워가며 나 자신 대해서도 알아가야 한다. 그리고 관심 있는 부서가 있다면, 가능한 대로 그 부서에서 현재 근무하시는 분들에게 업무와 환경이 어떤지 물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다른 사람 경험을 통해서라도 어느 정도는 내가 좋아할 만한 부서인지 감이 올 거라 생각한다. 또 한 가지 방법은 해당 부서 매니저에게 "shadow shift"를 요청하는 것이다. 내가 근무한 중환자실 매니저는 쉐도 시프트를 원하는 타 부서 간호사들에게 흔쾌히 허락하셨다. 그래서 병동이나 응급실에서 중환자실로 이직 선택을 하기 전에 데이 근무 하루를 중환자실 간호사와 함께하며 이곳이 나의 자리가 될 수 있는지 알아보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4. 임상만이 답이 아니다
병원 근무가 정말 싫은 사람들이 있다. 그럴 땐 혼란스럽고 앞으로 간호사로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될 때가 있다. 하지만 병원이 싫다고 해서 좌절 할 필요는 없다. 난 올해 처음으로 병원을 퇴사하고 커뮤니티로 나왔는데, 막상 나와보니 간호사가 할 수 있는 일은 생각보다 더 많아서 놀랐다. 캐나다는 병원 간호사가 아니라도 primary care nurse, public health nurse, wound care nurse, research nurse, home care nurse, nurse consultant 등 길이 참 많다. 그러니 혹시 누군가 '간호사는 병원에서 일을 해야 간호사다'라고 말을 한다면 흘려 들어라. 나도 졸업할 당시 주변에서 늘 acute care에서 일을 안 하면 '진정한' 간호사가 아니라고 해서 걱정했는데, 시간이 지나니 그건 그들만의 헛소리였다. 병원에서 근무 안 한다고 해서 훌륭하지 않은 간호사는 없다. 가장 멋진 간호사는 자신의 유니크한 능력과 스킬을 최대한으로 쓸 수 있는 곳에서 최선을 다하는 간호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