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정의에 대해
병실이 분주해졌다. 의료진이 바삐 움직이고, 지켜보는 가족들의 표정은 굳어진다. ‘삐…… 삐…… 삐…… 삐……’, ‘삐이이……’ 심전도(electrocardiograph) 소리가 한 음을 유지한다. 심장에서 전달되는 전기신호가 잡히지 않는다. 심정지(cardiac arrest)가 일어난 것이다. 의료진이 다급히 심폐소생술을 실시한다. 그러나 멈춘 심장은 다시 뛰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의사는 환자의 눈에 불빛을 비춘다. 확장된 동공에서는 동공반사가 일어나지 않는다. 환자는 죽음에 이르렀다.
우리는 죽음이라는 말을 안다. 그렇다면 죽음이란 무엇인가? 죽음이 어떤 것인지 잘 설명할 수 있는가? 알고는 있지만, 막상 설명해보려면 좀 막연하다. 죽음을 알아가는 첫걸음으로 죽음의 정의를 생각해보는 것이 그 방법이 될 수 있다.
‘죽음의 정의’에서 ‘정의’란 무엇인가? 정의(定義)란 ‘어떤 사물이나 현상, 단어 등을 명백히 밝혀 규정함’이며 보통 간결한 방식으로 표현된다. 우리는 어떤 물건이나 단어의 의미가 궁금할 때면 사전을 뒤적거린다. 죽음 또한 마찬가지다. 죽음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일단, 그 정의를 알아보는 것이 시작이다.
죽음의 사전적 정의는 ‘생물의 생명이 끝난 현상’이다. 생물은 다들 알다시피 동물, 식물, 미생물 등을 말하는데 그러면 생명(生命)은 무슨 뜻인가?
‘生命’에서 ‘생(生)’이라는 글자에는 ‘탄생’과 ‘살아감’의 뜻이 함께 있다. 또한 ‘명(命)’은 ‘수명’을 말하는데 이는 ‘살아 있는 기간’을 의미한다. 생명의 의미를 종합해보면 ‘어느 기간 동안, 태어나서 살아가는 존재’를 일컫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여기서 다시 죽음의 정의로 돌아가보자. ‘생물의 생명이 끝난 현상’은 ‘한 생명이 태어나 살다가 그 기간이 끝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죽음이다. 이렇게 보면 죽음의 정의에서 중요한 것은 기간, 즉 ‘삶이 지속되는 시간’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죽음은 의학적으로 어떻게 정의될까? 죽음의 의학적인 정의는 심폐사, 뇌사, 세포사의 세 가지로 나뉜다. 심폐사는 말 그대로 심장과 폐의 기능이 정지된 것다. 뇌사는 뇌기능이 멈춘 것을 말한다. 세포사는 인체를 구성하는 기본 물질인 세포의 죽음을 뜻하는데, 인체의 주요 장기, 즉 심장, 폐, 뇌 등의 기능이 정지해 생명활동이 중지되고 이후 세포들이 죽음에 이른 것을 말한다. 심장이나 폐가 멈추었다고 즉시 모든 세포가 사망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망 판정 이후 각막 같은 일부 장기의 이식이 가능하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부분은 심폐사와 뇌사이다.
죽음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과거부터 지금까지 호흡과 심장박동의 정지로 결정되었다. 심폐 기능이 멈추면 맥박, 혈류, 숨이 멎고, 이후 모든 생체기관의 정지가 뒤따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보통 장례를 3일장으로 치른다. 옛날에 누군가를 죽은 줄 알고 묻었는데 얼마 뒤 관 속에서 소리가 나 놀라서 열어보니 그 사람이 살아 있었다. 이후에는 숨이 멎은 뒤 최소한 3일을 지켜보고 매장했는데, 이것이 3일장의 유래라는 설이 있다.
과거에는 주로 자발적인 호흡의 유무만이 죽음을 판단하는 기준이었지만 18세기 말에 그 기준에 따라 사망했던 사람이 살아난 경우가 의학계에 보고되면서 완전한 사망판정을 내리기 전까지는 시간을 두고 관찰해야 했다. 그렇다면 죽음을 판정하는데 ‘호흡 정지와 심장 정지 중 어떤 것이 우선일까?’ 이런 문제는 과거에 심각한 고민이었다.
19세기에 서양에서 소아마비가 유행하면서 아이들이 숨을 쉬지 못해 죽어갔는데, 이를 계기로 인공호흡기가 개발되었다. 인공호흡기 덕분에 스스로 호흡하지 못하더라도 기계를 통한 호흡 유지가 가능해졌다. 자발적인 호흡이 불가능해도 기계를 통해 가능해졌으니 자연스럽게 심장 정지가 사망을 판별하는 데 주요한 기준이 되었다. 그러면 죽음을 결정하는 문제가 더 간단해졌을까?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인공호흡기의 발명은 ‘뇌사’라는 새로운 죽음 기준을 만들어냈을 뿐이다.
뇌는 심장, 폐 등 인체의 모든 장기를 조절하는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한다. 그 때문에 보통 뇌의 모든 조직이 파괴되면 뒤이어 자연스럽게 호흡과 심장의 정지로 이어지고 결국 심폐사하게 된다. 그러나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해 인공호흡기 같은 생명유지 장치가 개발되면서 뇌사라는 또 다른 죽음 정의 기준이 나타나버린 것이다.
뇌가 죽으면 인간은 중요한 두 가지 기능을 상실한다. 첫째는, 소뇌와 뇌간에서 수행되는(호흡, 맥박 등을 지속시키는) ‘생명 유지 기능’ 상실이고 둘째는, 대뇌피질에서 수행되는(사고나 감각을 가능하게 하는) ‘정신적 기능’ 상실이다. 생존에서 중요한 것은 특히 뇌간에서 수행하는 자율적인 생명 유지 기능이다. 우리는 잠을 자다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어이쿠 숨 쉬는 것을 깜박했네’ 또는 ‘아, 맞다. 심장을 뛰게 해야지’라고 마음먹지는 않는다. 뇌의 기능은 우리가 의식하지 않고도 호흡하고 심장을 뛰게 하는데, 뇌사는 이러한 기능을 중지시키는 것이다. 영화에서 의사가 사망 여부를 확인하려고 눈꺼풀을 들어 불빛을 비추는 장면을 본 적 있을 것이다. 뇌기능 정지가 일어나면 자율적인 동공반사 반응이 없어진다. 영화 속 장면은 뇌사로 죽음이 확정되었음을 상징하는 표지다.
정리하자면 호흡과 심장박동, 뇌반사 정지가 ‘불가역(不可逆)적’인 경우를 의학적으로 죽었다고 정의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가역(可逆)’은 ‘되돌릴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이므로 불가역은 ‘되돌릴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뜻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정의란 ‘어떤 단어나 사물의 뜻을 명백히 밝혀 규정함’이다. 그리고 ‘규정’은 ‘어떤 것의 내용이나 의미를 정한다는 뜻이다. 여기에서 ‘정함’이라는 말은 무언가 ‘굳어진’ 뉘앙스를 풍긴다. 정해졌다는 말에는 왠지 모를 위험성이 있는 듯하다. 자연환경은 역동적으로 변하고 있고 자연법칙의 원리를 분석해 제시하고 규정하는 과학도 시대가 흐르면서 수정되어왔기 때문이다. 아직 밝혀내지 못한 비밀도 많다. 따라서 의과학적으로 죽음을 규정하는 기준 또한 변화할 수 있다. 최근 들어서는 ‘뇌 이식’을 둘러싼 논의도 있지 않은가.
인간은 삶에서 2번, 판사가 아닌 의사에게 선고를 받는다고 한다. 바로 태어날 때와 죽었을 때다. 출산이 진행되고 태아가 모체 밖으로 나온 뒤, 의사와 보호자는 아이의 신체를 살펴본다. 이상이 없으면, “0000년 0월 0일, 0시 0분, 000가 탄생했습니다”라는 출생선고가 내려진다. 삶이 끝날 때도 그렇다. 의료진이 다급히 심폐소생술을 실시하며 최선을 다해보지만 결국 따듯한 피를 순환시켜 생존을 가능케 하던 심장이 멎는다. 심장박동이 돌아오지 않으면 한 인간의 삶에서 “0000년 0월 0일, 0시 0분, 000님께서 사망하셨습니다”라는 마지막 선고가 내려진다. 죽음의 정의를 생각해보는 것은 이 마지막 선고가 어떤 과정을 통해 내려지는지 알아보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