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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수진 Apr 22. 2021

미술계는 경계 밖으로 나올 수 있을까?

상속세 미술품 물납법 근황 2.


상속세를 미술품으로 대신 낼 수 있도록 하는 ‘상속세 미술품 물납법’(상속세 및 증여세법 개정안)에 대한 글을 두  썼습니다. 미술품으로 상속세를 대신 낼 수 있게 한다는 발상도 재밌었고... 왠지 호기심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삼성 같은 재벌 기업관심이 큰 편인데 이런 점도 영향을 준 것 같습니다.


첫 번째 글 :

삼성이 상속세를 줄일 수 있는 신박한 방법(2월 3일)


두 번째 글 :

상속세 미술품 물납법 근황(3월 2일)

    

이 글을 보고 3월 초에 미술 전문지로 명성이 높은 <퍼블릭 아트>에서 원고를 부탁해왔습니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기에 설레기도, 신기하기도 했고 <브런치>에 고맙기도 했습니다. <브런치>라는 글쓰기 플랫폼의 저력도 새삼 느끼게 됐고요.   

 


<퍼블릭 아트> 측에서는 "상속세 미술품 물납법의 ‘허점’에 초점을 맞춰 글을 써주면 좋겠다."라고 했고 저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듣고, 정말, '허점'을 집중적으로 파고든 글을 써서 보냈습니다. "글이 너무 센 거(?) 같으니 수정을 원하시면 같이 방향을 상의해보자."라는 메시지와 함께.  

     

결과적으로, 글은 거의 수정되지 않은 채 <퍼블릭 아트> 4월호에 실렸습니다. '미술계는 미술계 경계 밖으로 나올 수 있을까?'라는 제목으로. 미술품 물납법이 통과되길 원하는 여론이 압도적인 미술계를 주요 독자로 삼는 전문지의 결정이라는 점에서 더 용감해 보였고 왠지 더 믿음이 갔습니다. 동시에, 법안의 허점에 대한 문제 제기가 미술계 내부에서도 '한 번 생각해볼 만한 의견'으로 받아들여지는 듯해 나름 뿌듯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글의 일부라도 공개할 수 없을까를 고민하고 있었는데요. 그러던 중...


더불어민주당 전용기 의원(출처:인스타그램)

   

또 다른 상속세 미술품 물납법안이 4월 7일 재보선 다음날 하나 더 발의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논문 두 편이 거의 똑같으면 뒤에 나온 논문은 표절을 의심받고 철회되기도 하지만 법안은 그렇지 않습니다. 비슷한 법안이 또 발의되고 또 발의되기도 하는데요. 또 다른 상속세 미술품 물납법안 발의자는 더불어시민당 비례대표 출신 전용기 의원(현재는 더불어민주당 소속)이었습니다.


잠깐 전 의원에 대해 간단히 말씀드리면 전용기 의원은 1991년생으로 21대 국회 '막내급' 의원입니다(막내는 전 의원보다 한 살 어린 정의당 류호정 의원). 전 의원은 한양대학교 총학생회장 출신인데 2017년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선 후보 캠프의 대학생 공동본부장으로 정치에 입문했습니다.   

-> 전용기 의원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고 오기


나무위키에 나오는 전 의원 소개글을 읽다 보면 아래 사진과 같은 대목이 나옵니다.



2021년 4월 19일 기준으로 전용기 의원의 법안 대표 발의 건수는 63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비슷한 연령대의 비례 대표 출신 초선 정의당 류호정 의원과 장혜영 의원이 각각 5건과 10건,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이 14건을 대표 발의했고 더불어민주당 이소정 의원이 15건을 대표 발의한 점을 감안하면 대표 발의 실적이 많은 건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법안 발의 개수에 지나치게 집중한 나머지 법안 품질에는 신경을 많이 못 쓴 걸까요? 지난해 11월 더불어민주당 이광재 의원이 발의했던 상속세 미술품 물납 법안과 비교해 보니, 발의 취지는 물론, 법안 내용도 거의 같았습니다. 이광재 의원이 간단하게 요약해 둔 조항을 전용기 의원이 풀어서 좀 더 자세하게 썼다는 게 다를 뿐 두 법안은 거의 같았습니다. 이광재 의원의 발의 이후 법안의 허점이 여럿 지적됐지만 보완하기 위한 노력을 전용기 의원 법안에서 찾아볼 수 없습니다.

지난해 11월 25일 이광재 의원이 발의했던 상속세 및 증여세법 개정안
올해 4월 8일 전용기 의원이 발의했던 상속세 및 증여세법 개정안


두 법안은 발의 취지도 비슷합니다. '문화유산 해외 유출 방지' '공공 자산화를 통한 문화 향유권 확대'.


혹시, 미술품 상속세 법안이 더불어민주당의 당론으로 정해지기라도 한 걸까요? 그래서 여러 의원이 나선 걸까요? 현재로선 '아닐 가능성'이 무척 높습니다. 세금 관련 법안을 담당하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문위원실 관계자는 "민주당 당론이 아닌 걸로 알고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다른 의원실 관계자 역시 "당론은 아니고 이 의원님 개인적인 생각으로 알고 있다."라고 했습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법안의 발의 취지 두 개,  '문화유산 해외 유출 방지' '공공 자산화를 통한 문화 향유권 확대'는 그럴싸해 보이지만 허점이 있습니다. 어떤 게 허점인지, 구체적인 내용은 <퍼블릭 아트> 4월호 글, <미술계는 미술계 경계 밖으로 나올 수 있을까?> 내용으로 대신하려고 합니다. 갑자기 서술어가 바뀌지만 당황하지 마시길. 칼럼 인용은 <퍼블릭 아트> 측의 사전 허가를 받았음을 알려드립니다.





상속세 미술품 물납법의 가장 큰 허점은 미술품의 가치를 공정하고 객관적이며 투명하게 평가하는 방식이 빠져있단 거다. ‘가치 평가’는 평가자의 주관성이 개입될 수 없는 객관적 지표에 따라, 당사자 아닌 외부 기관에 의해 이뤄질 때 공정성이 담보될 수 있다. 그래야 그 권위를 인정받는다. 그런데 현재 감정 업무를 수행 중인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 한국화랑협회 미술품 감정위원회, 한국미술품감정연구센터 등이 그런 ‘감정 시스템’을 갖췄는지 의문이다. 감정 담당자를 어떻게 선발/선정하는지, 어떤 과정과 기준으로 감정을 하며 그 기준은 또 어떻게 정해지는지, 감정 결과가 틀렸을 땐 어떤 제재가 주어지는지...


 공정성과 객관성을 판단하기 위한 많은 것들이 공개되지 않은 채 평가자 개인의 지식과 경험, 개인의 권위에 의지하는 가치 평가 방식은 미술계 외부에서까지 그 신뢰성을 온전히 인정받기에는 한계가 있어 보인다. 비유를 하자면 미술품을 거래하는 화랑으로 이뤄진 화랑협회가 감정을 하는 현재 상황은 마치 고3 수험생의 수능 점수를 수험생 담임교사가 매기는 것과 비슷하게 느껴진다. 가치가 높게 평가되면 그만큼 국고 손실이 발생하고 반대로 낮게 평가되면 납세자의 이익이 침해받지만 현재 ‘감정 시스템’으로는 이 두 상황이 발생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가치 평가의 공정성을 담보하지 못하면 징수 체계 자체에 대한 신뢰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라고 경고하고 있다.   


<에코와 나르키소스> 존 윌리엄 와터하우스(1849~1917) 作



다른 납세자와의 형평성,

그리고 여론


두 번째 문제는 다른 납세자들과 형평성 문제다. 조세 납부의 원칙은 현금 납부다. 물납, 즉 유가증권이나 부동산으로도 낼 수 있지만 형평성이라는 가치를 지키기 위해 전체 상속분의 절반 이상일 때만 가능하도록 제한을 뒀다. 미술품이 물납 대상이 되려면, 마찬가지로 ‘특정 조건’ 하에서만 가능하도록 해야 하는데 개정안에는 그런 내용이 없어서 형평성 문제가 제기될 우려가 더 크다.   


 더군다나 물납제가 국고 손실을 유발한다는 사실이 입증된 상황에서 세정 당국은 더 보수적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다. 국회 기재위와 입법조사처 자료를 보면 물납된 재산을 매각해 환수한 금액의 비율이 78.2%(2009년부터 2015년까지)에 불과했다. 국세청이 세금 1조 1500여 억 원어치를 부동산이나 유가 증권으로 받았는데 환수한 돈은 9천여 억 원이란 뜻으로, 2,500억 원이 매각 과정에서 증발했다. 2009년부터 2020년 8월까지 이렇게 발생한 국고 손실액이 모두 4,870억 원에 이른다. 현금으로 받았다면 생기지 않았을 손실이다.  


 형평성 문제가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여론’과 직결돼 있기 때문이다. 세금을 내지 않는 국민은 없기에 상속세 및 증여세법 개정안의 영향을 받는 건 전 국민이다. 미술품 물납제에 대한 국민 여론은 어떨까? 본격적으로 공론화되지 않아 직접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러나 힌트가 될 수 있는 사건이 최근 있었다. 4.7 재보선에 출마한 한 후보의 부인이 파블로 레이노소(Pablo Reinoso)의 조형물을 10억 원에 주상복합 아파트에 납품한 사실이 알려졌는데 이걸 다룬 기사나 인터넷 게시판에는 이런 댓글이 달렸다. ‘저게 왜 10억이나 하지?’, ‘재료비랑 인건비를 아무리 많이 잡아도 1억이면 충분할 거 같은데?’, ‘그럼 나머지 9억은 어디로?’ 이 사례는 미술품에 대한 ‘일반인’의 인식이 어떤지를 보여준다. ‘저게 왜 10억 원인지’를 이해할 수 없는 납세자들이 많다. 그런데 많은 납세자들이 이해할 수 없는 걸로 세금을 내겠다는 게 상속세 미술품 물납제다.


<Busan Infinity Lines>, 파블로 레이노소 作 (출처 : ㈜엘시티 PFV)



미술품 물납제

찬성 논리의 허점


미술계나 문화체육관광부는 상속세 미술품 물납제가 도입돼야 하는 이유로 ‘문화유산 해외 유출 방지’, ‘공공 자산화를 통한 문화 향유권 확대’를 내세우고 있다. 그런데 ‘문화유산 해외 유출 방지’에서 말하는 ‘문화유산’이 문화재를 뜻하는 듯 보여도 문화재는 될 수 없다. 제작/형성된 뒤 50년 이상 되거나 문화재로서 가치가 있으면 어차피 국외 반출이 안 되기 때문이다(문화재법 60조). 그렇다면 ‘문화유산’은 미술품 등을 말하는 것일 텐데 ‘해외 유출을 막아야 할 정도’의 가치 있는 미술품을 세금 대신 낼 수 있는 납세자는 극소수다. 특혜 논란이 제기될뿐더러 극소수 작품을 지키기 위해 상대적으로 가치가 덜한 미술품의 물납까지 허용하는 게 맞을까라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공공 자산화를 통한 문화 향유권 확대’라는 주장도 마찬가지다. 세금 대신 받은 작품을 국민이 ‘향유’ 하기 위해서는 국세청이 매각하는 대신 갖고 있으면서 국립현대미술관 같은 곳에 전시를 맡겨야 한다. 즉, 세금 수입 감소를 통 크게(?) 감내해야 하는 것이다. 요약하면, 상속세 미술품 물납제 도입의 근거로 자주 거론되는 논지 두 개는 언뜻 그럴싸해 보이지만 면밀하게 따져보면 특혜 논란과 세수 감소를 동반한다. 이런 비판적 시각에 대해 ‘미술을 잘 몰라서 하는 소리’로 여기는 분들도 있을 테지만 간과하지 말아야 할 점은 물납제 주무부처가 문화체육관광부가 아니라 세금을 한 푼이라도 더 걷으려는 기획재정부라는 사실이다.



상속세 미술품 물납법

진행 상황


국회 절차가 시작되면 좀 더 깊이 있는 논의가 이뤄질 텐데 이광재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은 지난해 11월에 발의, 회부됐으나 상정되진 못하고 있다. 법률 일부만 고치는 개정안은 상임위원회에 회부된 뒤 45일이 지나면 자동 상정된 걸로 보지만(국회법 59조) 세법 논의 절차의 특수성 때문에 여전히 ‘회부’ 상태다.


 법안에 대한 1차 검토 보고서를 쓰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 따르면 세법 개정안 논의는 매년 8월 기재부의 <세제 개편안>이 나오면 9월 정기국회에서 본격적으로 다뤄진다. 따라서 상증법 개정안이 설사 상정되더라도 본격적인 논의는 9월이 돼서야 시작될 가능성이 높다. 기재위(여야 의원 26명으로 구성)를 통과한다면 법제사법위원회(여야 의원 18명으로 구성)로 올라가게 되고 법사위도 통과되면 국회 본회의에서 전체 의원의 표결을 받는다. 기재위에서는 상속세 미술품 물납제가 도입됐을 때 국민이 얻게 되는 이익이 무엇인지를 중점적으로 따지고 법사위에서는 법이 개정됐을 때 다른 법률과 충돌하지는 않는지 등을 살핀다.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사안이 아니라면 법사위까지만 통과하면 ‘거의 됐다’고 보기도 하는데 확언할 수는 없다.     


<선의 경계>, 김옥선 作


미술계 바깥으로

나올 수 있을까 


지금까지 나온 논의로는 감정 업체, 경매 업체, 화랑 등 미술계와 상속세를 미술품으로 낼 수 있는 극소수의 계층만이 상속세 미술품 물납제도의 수혜자로 보인다. 따라서 세정 당국과 미. 알. 못. 일반 납세자도 설득될 수 있는 논리를 개발하는 일이 앞으로 미술계의 숙제인 듯하다. 지난해 12월 초 관련 토론회를 열기도 했던 문화체육관광부 담당자는 “당장은 미술품 물납제 도입과 관련해 추가 계획은 정해진 게 없다.”라고 밝혔다. 법리적 허점과 부정적 여론을 일거에 뛰어넘을 수 있는, 굉장히 파워풀하고 드라마틱한 어떤 사건이 생기는 경우의 수도 배제할 수는 없다.   




"(상속세 미술품 물납법안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일거에 뛰어넘을 수 있는 굉장히 파워풀하고 드라마틱한 어떤 사건이 생기는 경우의 수도 배제할 수 없다."


이 표현은 사실, 삼성의 '특대 규모' 미술품 기증을 염두에 두고 썼던 표현이었습니다. 사람들의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의 매우 놀랄만한 규모, 매우 큰 가치를 지닌 미술품들이 통 크게 기부되고  그 규모가 워낙 역대급이어서 "상속세를 좀 어떻게 조정을 해줘야 하는 거 아냐?" 하는 여론이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겁니다. 이로 인해 상속세 미술품 물납 법안에 대한 긍정적이고 우호적인 분위기가 생겨 이 법안에 대해 전향적으로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마련되는 상황... 그때는 '세정 행정의 관점'이 아니라 좀 다른 눈으로 이 법안을 볼 수 있을까요?


삼성이 다음 주에 고 이건희 회장 소유의 미술품들 이른바 리 컬렉션 기부 계획을 밝힌다고 합니다. 이 이벤트가 현실의 장벽을 뛰어넘는, 마치 영화 같은 결말을 현재 수감 중인 이재용 삼성 부회장은 물론 상속세 미술품 물납 법을 바라는 미술계에도 선사할 수 있을까요? 일단, 다음 주 삼성의 발표를 한 번 봐야겠습니다.

-> 관련 기사 보고 오기 


** ---b---로 표시된 부분은 <퍼블릭 아트> 4월호 '미술계는 미술계 경계 밖으로 나올 수 있을까?'에서 직접 인용했습니다. 전체 내용이 궁금하신 분들은 <퍼블릭 아트> 4월호를 참고해주세요.


** <법안으로 세상 읽기>는 국회의원이 발의한 법안을 통해 정치와 사회를, 그리고 우리를 들여다보는 연재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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