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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수진 Jan 18. 2021

'정인이 법'... 우리는 최선을 다했을까

충분히 빨랐지만 충분하진 않았던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뉴스들 가운데 툭 하고 떨어진 뒤 그냥 그 자리에 자리를 잡고 사는 것들이 있습니다.   

내 일이 분명 아닌데도 떠올리면 맘 아프고 누가 먼저 얘기를 꺼낸다면 외면하고 싶은. 그렇지만 끝내 외면되지(?) 못한 기억으로 박제돼 끝내, 내 일부가 돼버리는...


일러스트레이터 o_deng96님이 그린 정인이


이번 생후 16개월 학대 여아 사망 사건이 제게는 그런 뉴스로 남을 것 같습니다.

아마 많은 분들이 비슷할 텐데요. 비극적인 사건과 제대로 살아내는 방법은 그 사건 자체와, 그 사건이 처리되는 과정 과정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마치 일종의 자기 객관화처럼. 또 그것이, 내 분노를 나와 우리 사회에 좀 더 가치 있는 일로 만드는 방법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1월 8일 국회를 통과한 이른바 '정인이 법' 즉 <아동학대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논의되는 과정을 살펴보는 것은 저한테 그런 의미였습니다. 그때 오간 대화를 들여다보면 무엇이 부족했는지,  앞으로 더 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짐작해볼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이 사건에 대한 우리의 진심도요.


전체 회의록 58페이지 가운데 언론에서 잘 다루지 않아 알려지지 않은 부분, 눈여겨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발췌했습니다.


[정인이 사건 일지]
2020년 2월 정인이 입양 신고
             5월 1차 아동학대 의심신고,  경찰 내사 종결
             6월 2차 아동학대 의심신고,불기소의견 송치    
             9월 3차 아동학대 의심신고, 경찰 내사 종결
            10월 13일 정인이 사망(생후 16개월)

회의 참석자들. 윗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유상범 의원(국민의힘), 송민헌 경찰청 차장, 전주혜 의원(국민의힘), 김남국 의원/박주민 의원(민주당), 최종균 보건복지부 아동정책관


2021년 1월 7일 10:30 am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회의실


Scene #1. 경찰이 ‘아동학대 수사 의무화’에 반대하는 이유      


유상범 의원 : 정인이 사태가 벌어진 이유가 신고 의무자는 신고를 했는데 경찰이 조사를 안 했기 때문 아닌가요?

경찰청 차장 : 예. 맞습니다.

유상범 의원 : 이 부분이 제일 중요한 거 같은데요. 이건 우리가 어떤 식으로든 입법화를 해야지 안 그러면 개선했다고 국민들한테 설명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전주혜 의원 : 현장 출동은 했죠?

경찰청 차장 : 4번 했습니다.

전주혜 의원 : 조사나 수사도 했나요?

경찰청 차장 : 1차, 2차는 내사 단계에서 종결했지요. 그러니까 충분한 수사가 못 이루어진 데서 이 사건이 촉발된 측면이 있기 때문에 수사를 의무화한다는 것은 좀...(중략) 아동학대 신고가 한 해 3만 건 정도 들어오는데 범죄 신고 측면도 있지만 경제적 목적, ‘애들이 굶고 있는 것 같아요’ 이런 신고도 많습니다. 이런 게 다 아동학대 신고로 들어오기 때문에 그 모든 것을 조사하는 것은...

김남국 의원 : 부담된다고요?

경찰청 차장 : 오히려 부작용이 생길 수 있습니다. 수사와 조사는 당연히 저희가 하는 거지만 수사를 의무화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김남국 의원 : 신고 건수가 많아지면 정말 수사해야 될 아동학대 범죄를 제대로 수사하지 못하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단 건가요?

경찰청 차장 : 그런 업무부담 측면이라기보다 경찰이 출동하는 것을 원치 않는 신고도 많습니다. 조사와 수사를 의무화하는 부분은 좀 신중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단 뜻입니다.      


 

Scene #2. 경찰이 ‘아동학대 신고 시 즉각 수사 착수’에 반대하는 두 번째 이유    

  

경찰청 차장 : 정인이 사건은 조사나 수사를 안 한 게 문제가 아니라 조사와 수사가 부실했다는 게 결과적으로 (문제였습니다).

유상범 의원 : 그러니까 부실한 게 왜 문제냐면 당사자 부모한테 얘기 한마디 듣고 그냥 끝냈기 때문에 그런 거 아니에요? 만약 조금만 더 확인해봤으면 알 수 있었던 것 아닙니까? 의사에게 자료를 받아봤으면 바로 알았을 거 아니에요? 그렇지 않아요?

경찰청 차장 : 아닙니다. 의사 의견도 받은 부분이 있습니다. 모두 세 번의 신고가 있었는데 두 번째 신고에 대해서는 의사가 아동학대로 보이지 않는다는 소견을 냈기 때문에 아동보호전문기관과 경찰이 내사 종결로 그친 부분입니다.

유상범 의원 : 첫 번째, 세 번째는 학대로 보인다고 했고요.  

경찰청 차장 : 세 번째 신고가 들어왔을 때 즉각 분리하려고 했었습니다. 하려고 했었는데 당사자인 피의자(정인이 양부모)가 아주 뭐 굉장히 심하게 울면서 굉장히 심하게 항의를 했습니다. 그래서 조금 더 지켜보자고 좀 소극적으로 대응했기 때문에 사망하게 된 겁니다.

유상범 의원 : 그러면 결국은 처음 조치에서 의사의 판단을 믿고 그냥 진행했으면 그런 일이 생기지 않았을 텐데 결국 거기서 잘못을 한 거네요?

경찰청 차장 : 그렇습니다.

유상범 의원 : 그런데 그 짧은 기간에 세 번이나 신고가 들어오면 당연히 학대가 있었다고 의심되지 않나요?

경찰청 차장 : 그래서 분리 조치를 하려고 했는데 피의자가 아주 울면서 강력하게, 그렇지 않다고 항변하고...

전주혜 의원 : 그러니까 지금 차장님 말씀을 들어보면 경찰이 잘못한 거는 하나도 없어요. 맞아요?

경찰청 차장 : 아니요. 잘못했다고 제가 말씀드렸습니다.

전주혜 의원 : 그런데 지금 제대로 다 했으니까... 아동학대 신고가 들어왔을 때 조사나 수사 의무화는 필요 없다는 의견이시잖아요?

경찰청 차장:아닙니다. 필요하다고 보는 부분도 있는데... 수사 의무화 부분은 좀 신중 검토가 필요하다는 부분을 말씀드리는 겁니다.


Scene #3. 경찰이‘아동학대 신고 시 즉각 수사 착수’에 반대하는 세 번째 이유      

 

경찰청 차장 : 저희가 112 신고 등 아동보호전문기관 요청에 의해 나간 게 1년에 한 만 5,000건 정도 됩니다.

전주혜 의원 : 그러면 학대 경찰관은 전문성이 있는 분이에요?

경찰청 차장 : 그 부분이 저희가 가장 미진한 부분인데요. 통상의 수사라는 것은 외관상의 어떤 상처라든지 관련된 사람들의 진술을 합해서 폭행인지 등을 판정하게 되는데 영유아의 경우는 전혀 그런 게 안 됩니다. 의학적 판정이 굉장히 중요한데 직원들이 상당히 어려워하기 때문에 학대 경찰관의 평균 근무 기간이 1년이 채 안 되고 경찰청에서 가장 기피 부서가 돼 버렸습니다. (중략)

유상범 의원 : 1년씩 돌아가면서 근무를 하고 가장 기피하는 사람들한테 아동학대 업무를 맡겨 놓았다는 것은 사실 사건이 제대로 해결이 안 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거든요. 경찰에서도 가장 말 안 듣는 사람을 보낸다는 거거든. 우리가 말하는 가장 비선호 부서인 거예요. 맞죠?

경찰청 차장 : 경찰 경력이 짧은 사람들이 많이...

유상범 의원 : 이런 상황이면 경찰만 출동해서는 적절한 대처를 못한다는 얘기예요. 일단 의무화를 시킨 다음에 부족한 부분은 내부적으로 정리가 될 수 있지 않겠어요?     



Scene #4. 복지부 아동 정책관, 넋이 나가다


박주민 의원 : 아동 정책관님!

아동 정책관 : 예.

박주민 의원 : 지금 넋이 나가 계시면 안 됩니다. 학대 아동 보호 시설이 그렇게 부족합니까, 어떻습니까?

아동 정책관 : 저희가 사실은 현재 2회 이상 신고가 들어오고 멍이 발견된 경우에는 분리보호를 하는 걸로 매뉴얼을 개정했는데요. 다만 현장에서는 분리 보호 수요가 늘어나다 보니 보호시설이 좀 부족하단 얘기가 많이 들려오고 있습니다.

유상범 의원 : 통계를 좀 줘보세요.

박주민 의원 : 어느 정도 부족한지를 알아야 아동보호시설에 머물 수 있는 기간을 일주일로 정하든 5일로 정하든 할 거 같은데요.

유상범 의원 : 그 자료 갖고 있죠? 현재 수용된 현황요.

아동 정책관 : 현재 그게...

아동 정책관 : 저희가...

유상범 의원 : 자료를 줘보세요. 그걸로 판단을 빨리 해봅시다.

아동 정책관 : 현장에서 지역별로 또 어려운 경우가 있어 가지고요.

백혜련 위원장 : 당장 자료를 주세요.

유상범 의원 : 늘 관리하는 자료 아닌가요? 복지부에서는 꽉 찼으니까 어렵다고 하는데 그게 맞는지를 빨리 판단을 해봅시다.

아동 정책관 : 제가 드리는 말씀은 정원도 있지만 지역별로도 편차가 있기 때문에 전체 정원만으로는 판단할 수 없다는 말씀...

유상범 의원 : 정책관님. 자료 좀 주시라니깐요. 통계자료요. 자료 준비 안 돼 있어요?

아동 정책관 : 알겠습니다. 제가 파악해보겠습니다.

{보건복지부, 자료 배포}

유상범 의원 : 숫자가 이렇게 틀리네요. 꽉 찼다고 하더니 뭐...

박주민 의원 : 여유가 있는데요.

유상범 의원 : 정책관님, 통계를 이렇게 자꾸 틀리게 얘기를 해가지고...

아동 정책관 : 학대 아동 분리 조치가 강화된 다음의 자료는 현재 파악을 못하고 있습니다. 이 자료를 또 아동 일시보호시설 같은 경우는 없는 지자체가 굉장히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미스매칭이 많이 발생하고 있다는 말씀드립니다.     



#5. 법원행정처 차장이 시간이 없는 이유      

 

법원행정처 차장 : 이건은 좀 더 추가로 확인해야 될 부분이 있습니다. 지금 저도 검토할 시간이 없어서 제대로 못 봤는데요.    

(중략)

법원행정처 차장 : 그것을 좀 확인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확인해보겠습니다.

(중략)

법원행정처 차장: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좀 연구를 해 봐야 될 것 같습니다. 계속 중대재해 법 때문에 제대로 검토할 시간이 없어 가지고...     


● 이 날 논의 후 <아동학대 신고 시 경찰의 즉각적인 조사, 수사 착수>는 의무화됐습니다. 그렇지만 수사 의무화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경찰이 수사를 잘하게 만드는 방법을 찾는 것 아닐까요.


●  아동학대 3회 중복 신고 시 부모와 아동을 분리하는 제도가 지난해 하반기부터 시행됐기 때문에 보호 시설 수요가 급증하리라는 예상은 가능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건복지부 아동 정책관은 <전국 학대아동보호시설 수용 현황> 최신 데이터가 없었습니다. 아동보호시설을 체계적으로 관리하지 않고 있단 뜻입니다.


● 법원행정처는 대법원 소속으로, 법이 개정되거나 새로 생길 때 다른 법들과 부딪치지 않는지, 조문이 제대로 작성됐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의견을 제시합니다. 이 날 회의에서 법원행정처 김인겸 차장은 <중대재해처벌법> 보느라 "시간이 없어서 제대로 못 봤다"는 말을 여러 번 했습니다.   


16개월 입양 여아 학대 사망 사건이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 보도된 것은 올해 1월 2일.

개정된 <아동학대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것은 그로부터 불과 6일 후인 1월 8일이었습니다.


충분히 빨랐을지는 몰라도... 이 법들로 과연, 충분하다 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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