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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수진 Jan 25. 2021

박주민 의원은 왜  12대 1로 싸워야 했나


4∙7 서울시장 보궐선거 불출마를 선언한 더불어민주당의 박주민 의원이 1월 21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 유튜브 방송 [JB 타임]에 나와서 이런 얘길 했습니다.


박주민 : 12월과 1월에 너무 힘들더라고요.

김종배 : 중대재해처벌법 심의 과정에서 엄청 힘들었죠?

박주민 : 힘들었죠. 그냥, 하아...정말...법제사법위원회 소위원회에서 논의하는데 거의 121로 싸웠어요. 제가.

김종배 : 여당, 야당 할 거 없이 다 싸웠구먼?

박주민 : 제가 무슨, 무술 고수도 아니고.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지난해 12월 30일에 열렸던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 회의장으로 가보겠습니다.      


그 날은 [인과관계 추정 조항] 반영에 대한 논의가 있었습니다.  [인과관계 추정 조항]은 “경영자에게도 중대재해발생의 책임이 있다”라고 ‘추정’할 수 있는 경우를 나열하고 있는데요.


예를 들어,

이전에도 안전 관리에 문제가 있어서 적발된 적이 있거나,

산업재해와 관련된 증거를 인멸하려 했다면  

CEO에게도 안전사고의 책임이 있다고 추정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즉, 사고 책임 가운데 일부를 CEO에게도 직접적으로 지울 수 있도록 하는,  [산업재해가 발생한 현장]과 [CEO 집무실]을 ‘다이렉트’로 연결하는 ‘다리’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에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입법 취지대로 기능하도록 하는 핵심 조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故김용균 노동자의 어머니 김미숙 활동가도 국회에 출석해 이 [인과관계 추정 조항]을 꼭 반영해 달라고 눈물로 호소했고, 박주민 의원이 제안한 원안에도 들어가 있습니다. 


     

이 날 회의에는 민주당에서는 백혜련∙김용민∙박주민∙송기헌 의원이, 국민의힘에서는 김도읍∙유상범∙전주혜 의원이 참석했고 법원행정처 김인겸 차장과 이용구 법무부 차관, 고용노동부 박화진 차관 등도 있었습니다. 회의록은 핵심 위주로 재정리했습니다.        


# 12월 30일 국회 법사위 회의장  


박주민 의원 : 의원님들이 이전에 인과관계 추정 조항에 대해 지적을 해주셔서 좀 수정해봤습니다. 의무 위반이 있고, 그래서 중대산업재해가 발생을 하고, 상당한 개연성이 있을 때는 인과 관계를 추정할 수 있도록요.

이용구 법무부 차관 : 굉장히 조심스럽습니다만 이 정도면 조건이면 인과관계 추정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송기헌 의원 : 저는 잘 이해가 안 가는데...

김인겸 법원행정처 차장 : 개연성 판단 요소를 이렇게 규정하는 건 매우 적절치 않다는 의견입니다.

전주혜 의원 : 유죄라는 것은 고도의 증명이 필요한 것 아니겠습니까? 형량이 높은 사건에서 증명 책임을 이렇게 더 낮춘다면 책임주의 원칙상 맞지 않는 것 같은데요.

박주민 의원 : 기계적으로 등치 시킬 수는 없겠습니다만 [환경범죄 등의 단속 및 가중처벌에 관한 특별법]에도 추정 조항이 있습니다. 위험한 물질이 배출된 사실이 있고, 그 인근에 그 물질에 노출됐을 때 사람에게 나타날 수 있는 현상이 나타난다면 ‘추정’을 해줍니다. 그런 입법 사례도 있기 때문에 ‘추정’ 조항을 갖고 온 것이거든요. 그런 점을 고려를 좀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송기헌 의원 : 제가 또 말씀을 다시 드려야 할 거 같은데요. 노동자가 작업을 하다가 떨어졌다면 원인은 본인 과실 아니면 발판이 잘못돼서죠. 원인은 발판이 잘못됐다는 것이고, 결과는 사람이 떨어졌다는 것. 이렇게 분명한데 인과 관계를 추정할 일이 뭐가 있나요? 기업주가 안전 관리 의무를 다 했는지 여부와 근로자 추락이라는 결과 사이에 그 중간을 잘라 버리려고 하니까 우리가 자꾸 오해를 하게 된다는 거죠.

이용구 법무부 차관 : 가령 발판에서 미끄러져서 넘어졌다는 게 확인이 됐다면 미끄러진 원인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랬을 때, CEO가 해야 될 의무가 제대로 수행이 됐는지 여부는 또 따져봐야 하는 문제일 수 있죠.

김도읍 의원 : 차관님, 송기헌 의원님이 말씀을 하시는 건 이런 거 같아요. 비가 오는 경우에는 비계 위에 올라가서 작업을 해선 안 된다는 의무가 있다면 거기에 대해 추정을 할 게 뭐가 있느냐는 말씀인 거 같아요. 안전화를 지급을 안 했다거나 안전화를 신도록 지도를 안 했다면 당연히 의무 위반이죠. 여기서 뭘 더 추정을 하자는 건지?

김인겸 법원행정처 차장 : 이 추정 조항은 있어도 별로 도움이 될 거 같지 않습니다.

이용구 법무부 차관 : 저도 사실은 좀 그런 감이 있습니다. 굳이 이게 없어도 적용은 가능합니다.

박주민 의원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과관계 입증이 어려워서 사업주들이 제대로 처벌을 받지 않아 왔던 게 산업재해의 현실이기 때문에 이 조항이 필요한 게 아닌가...

송기헌 의원 : 그게 아니라는 거예요. 제 경험도 일천하지만 그런 사례를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유상범 의원 : 인과 관계는 다 증명이 되는데 다만 책임을 경영진 어느 선까지 지울 것이냐의 문제가 남은 건데 그게 쉽지는 않죠. 실제 오너의 책임이 어느 정도 인가를 증명을 해야 되는데 그 증명이 잘 안 됐기 때문에 처벌이 안 된 것이지 인과관계가 입증이 안 돼서 처벌이 안 된 게 아니라는 말이죠. 송기헌 의원님 말씀도 그런 것이고.

전주혜 의원 : 이 조항은 그냥 안 하는 걸로...

박주민 의원 : 많은 의원님 의견이 그러니까 제가 계속 고집하는 것은 좀 무리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한 번만 살려주시지요.      


박주민, "한 번만 살려주시지요."


박주민 의원이 발의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지난해 11월 12일에 접수된 뒤 같은 달 26일에 첫 회의가 있었고 12월에 세 차례, 올해 1월에 세 차례 더 논의가 진행된 다음 1월 8일에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는데요.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나오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회의 정보.


회의록을 뒤져본 결과, 회의는 주로 이런 구도에서 진행이 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즉, 박주민 의원이 제안하면 같은 당 송기헌 의원과 야당 의원들, 법원행정처, 법무부가 반대합니다. 그러면 박주민 의원이 수정안을 준비해와 다시 설득에 나섭니다. 


과정에서 법의 정합성이 높아진다고 볼 수도 있지만 동시에 경영계의 이익이 반영되기도 합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통과를 간절히 원하는 분들 입장에서 법안의 당초 취지가 자꾸 퇴색되는 겁니다. <인과관계 추정 조항>도 최종 법안에서는 빠졌습니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과 송기헌 의원


심의 과정에서 같은 당 의원들은 어떤 역할을 했을까요.


앞서도 얘기했듯 민주당 강원도 원주 지역구 송기헌 의원은 국민의힘 김도읍 의원, 유상범 의원과 합이 더 잘 맞았습니다. 박주민 의원 안에 찬성하는 경우도 없지 않았지만 반대하거나 수정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김용민 의원, 김남국 의원은 어땠을까요? 발언 횟수를 한 번 따져봤습니다.


12월 30일 회의에선 박주민 의원 120회, 김용민 의원 40회였습니다. 김남국 의원은 코로나 19 방역 문제로 청원 휴가를 갔습니다.        

12월 24일 회의에서 박주민 의원이 52회 발언할 동안 김남국 의원은 10회, 김용민 의원은 28회 발언했습니다. 12월 29일 회의의 경우 박주민 의원이 102회 발언할 동안 김남국 의원은 1회, 김용민 의원은 24회 발언했습니다.      


특히 김남국 의원의 경우, 이 법안을 박주민 의원과 공동 발의했는데도 불구하고 발언 횟수가 극히 적었습니다. 12월 29일에 김남국 의원이 했던 유일한 말은 “중대산업재해의 개념에 대해 성안 된 문안을 가지고 이야기를 하시죠.”였습니다.     


결과적으로, 박주민 의원이 '한 번만 살려달라'는 말을 야당 의원에게만 했던 건 아닌 것 같습니다.


끝으로, 박주민 의원과 김미숙 활동가가 꼭 넣고자 했던 [인과관계 추정 조항]의 원문을 그대로 옮기면서 글을 마칩니다.

   

제5조(인과관계의 추정)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 등이 제3조에서 정한 위험방지 의무를 위반한 행위로 인하여 중대산업재해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한다.

  1. 당해 사고 이전 5년간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 등이 제3조가 정하고 있는 의무와 관련된 법을 위반한 사실이 수사기관 또는 관련 행정청에 의해 3회 이상 확인된 경우

  2.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 등이 당해 사고에 관한 증거를 인멸하거나 현장을 훼손하는 등 사고 원인 규명, 진상조사, 수사 등을 방해한 사실이 확인되거나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이러한 행위를 하도록 지시 또는 방조한 사실이 확인되는 경우     


**<법안으로 세상읽기>는 국회의원이 발의한 법안을 통해 정치와 사회를, 그리고 우리를 들여다보는 연재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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