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LA 뜨는 곳이 어디에요? 라고 물으면 주저 없이 욕을 말한다
한국에서 온지 얼마 안된 C양이 묻는다. "LA에서 요즘 어디가 젤 힙해요?" 한참을 C양을 얼굴을 바라보며 되 묻는다. "어떤 쪽으로 힙한 곳을 찾는거야?" C양이 답한다. "아 왜 좀 한국 홍대 주차장 골목 같은 그런 곳이요?" (지난달 한국을 다녀온 나에게 홍대 주차장 골목이 힙한줄은 모르겠으나...) 여하튼, C양에게 난 주저 없이 답을 한다. '욕'. C양의 표정이 굳는다. "저한테 욕하신 거에요?" 난 답한다. 그래 '욕'
LA에서 요즘 뜨는 곳을 묻는 질문에 예전엔 실버레이크를 가보라고 했다. 석양이 질 때면 은빛 물결을 일으키는 실버레이크에는 건축가, 예술가, 맛쟁이, 멋쟁이 그리고 한량들이 대거 거주하고 있다. 맛있는 라밀 커피집도 있고, MILK 디저트 집도 있다. 요즘엔 이름 모를 로컬 브랜드 맛집과 편집숍도 많이 들어가는 모양이다. 그러나 난 요즘 실버레이크를 권하지 않는다. 조금 더 머리가 잘 돌아가는 창의적인 젊은 아이들이 대거 다른 곳으로 이주했기 때문. 그게 바로 '욕(York)'이다.
'욕(York)'은 하이랜드 파크라는 구역 내 블러바드(대로)의 이름이다. 본래 이 하이랜드 파크는 올드 파사데나에 부자들이 몰려들어 도시를 형성하고 로스앤젤레스를 들어가기 전에 나름대로 구축한 환경 좋은 공원 도시였다. 그런데 딱히 개발 요지가 없었던 탓에 이 일대는 약간의 슬럼화에 들어갔고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한 계층들이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 그러다보니 전체적으로 역사를 지닌 외관을 지녔지만 내실은 그리 방문하기에 썩 좋은 환경은 아니었다.
그러나 최근 로스앤젤레스시가 하이랜드 파크 주변을 재정비하고, 특히 욕 블러바드가 지나는 AVE 50부터 52까지를 비교적 잘 정리하기 시작했다. 공영 주차장을 만들고, 놀이터도 만들었다. 비슷한 시기 실버레이크의 거주 비용은 젊은 예술가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정도로 올랐고, 그들은 2번 프리웨이를 건너 이곳으로 하나 둘 이주를 시작했다. 아직도 하이랜드 파크 주변, 렌트비는 비교적 나쁘지 않다(그러나 곧 치솟을 것으로 보인다).
나는 이 같은 현상을 욕 블러바드에서 오랜 기간 비즈니스를 해오신 어떤 분에게 들었다. 그는 자기 집을 찾는 단골 손님이 실버레이크에 살았었는데, 어느날 보니 이곳으로 이주했다고 한다. 이유는 앞서 언급한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런 젊은이들이 하나 둘 셋 모여들기 시작하면서, 욕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다. 내가 이 지역을 유심히 살펴본지도 벌써 3년이나 지났다. 그 안에 새로 생겨난 가게도 많고, AVE 52까지 발전했던 상권이 이제는 53, 54까지 뻗어나가고 있다. '3년전 작은 커피집을 시작했어야...'라는 후회로 요즘 엄청나게 뒷목이 땡긴다. 지금은 너무 비싸서 들어가기도 쉽지 않고, 자리도 없다.
이렇게 많은 이들이 몰리다보니, 기존 가게들은 인테리어에 더 신경을 쓰게 됐고 이 욕과 어울리지 못한 업주는 퇴출 당하기도 했다. 그렇게 빈 자리엔 편집숍과 갤러리가 들어왔고, 유난히 건강을 따지는 이곳 주민들의 입맛을 반영하는 쥬스집과 커피집이 생겼다. 그리고 이런 트렌드를 귀신 같이 알고 자리를 차지하는 중국계 식당도 자리잡았다. 이 곳에서 20년 넘게 비즈니스를 하고 있다는 한 주인은 자기도 이제 이곳을 떠나야 할지 모른다고 말한다. 그의 비즈니스는 이 힙한 곳과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욕은 로스앤젤레스에서 가장 젊음이 느껴진다. 창의적이고 생동감이 있으며 사람들의 표정이 밝다. 소셜 스터디라는 편집숍에는 로컬 디자이너들의 패션 소품이 팔리고 있으며, 컬리지 커피는 독특한 타일 모양이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는다. 이곳의 자랑인 하이햇 라이브 뮤직바 1층에 자리한 버거집은 여전히 사람이 끊이질 않는다. 줄이 너무 길어서 차도로 돌아가야 한다. 최근 모습을 드러낸 암스테르담 모던은 로스앤젤레스에서 만드는 북유럽 가구점. 남가주에 몇개 지점이 있긴 하지만, 이곳 욕 지점은 단연 분위기에서 반은 먹고 들어간다.
개인적으로는 살랑살랑한 바람이 불 때면 욕을 찾아간다. 거리에 멋진 한량들과 함께 어울려 맥주 한잔을 하는 것이 지친 도시 생활에 위로가 된다. 내가 지난달 방문했던 뉴욕 윌리엄스버그의 그 창의적 골목들이 만들어낸 한량스러운 만족감을 이내 잊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곳 욕 때문. 이곳은 그런 매력이 너무나 넘치는 곳이다. 개인적으로는 욕이 딱 요 정도만 커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러나 욕의 이 뜨거운 용암은 이미 애로우 파크웨이까지 흘러 넘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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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Paul Hw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