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겐 당연한 질문, 하지만 누군가에겐 설레는 궁금증
나성 새내기 J양이 묻는다. "LA에도 비가 오나요?" 한참을 J의 얼굴을 쳐다본다. "당연한 거 아냐?"라고 쏘아붙이기에는 J의 표정이 사뭇 진지하다. 그래서 다시 묻는다. "왜 안 올 것 같은데?" J는 환한 태양을 가리키며 말한다. "저렇게 매일 해가 뜨는데 무슨 비가 내려요?" J는 일기예보에서 이번 주 나성에 겨울폭풍이 온다는 사실을 여전히 믿지 못하고 있다...
LA에도 비가 온다. 10년째 이 곳에 사는 주민의 '촉'을 되짚어보니, 12월에서 1~2월 사이에 LA에도 나름 우기가 있다. 그래서 이 곳을 찾으려는 지인들에게 가능하면 그 시기를 피해서 오라고 당부한다. 처음 미국을 도미할 때 기억이 스친다. 인천공항에서 한 가족이 LA 여행으로 들뜬 듯 보였다. 아이는 "아빠, 거기 가면 반팔 입어야 해?"라고 자꾸만 되묻는다. 구름을 뚫고 비행기가 캘리포니아로 들어온다. LA 공항에 이르자 하늘이 뿌옇고 그리고 비가 내렸다. 반팔로 갈아입은 그 가족의 표정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오늘 나성에 비가 온다. 그것도 겨울 폭풍이 지난다고 한다. 이 동네 일기예보는 좀처럼 틀린 적이 없어 난 의심치 않았다. 한국에 있는 지인들에게 오늘 LA에 비가 온다고 하면 "3월에 무슨 비야?"라고 한다. 그래 사실 3월 말에 이렇게 많은 비는 사실 생소한 것이긴 하다. 지난해 말부터 올해 겨울은 봄처럼 뜨거웠다. 바로 지난달에는 LA온도가 100(F) 도까지 올라기도 했다. 그래서 다시 겨울 가뭄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고, 물 낭비하는 곳에 벌금을 부과하겠다는 뉴스도 있었다. 그런 기우를 씻기듯 이번 주 내내 많은 비가 내린다. 나는 참 반갑다. 산에는 분명 눈도 내릴 것이다.
나성 주민들은 우산 없이 비를 맞는다
그래서 나도 비를 맞고 걷는다
나성 주민들은 비가 내리면 우산 없이 걷는 이들이 많다. 나 역시 그렇다. 사실 이런 우기가 지나고 나면 우산 쓸 일은 거의 없다. 엔젤리노가 유일하게 유러피안이 되는 때가 바로 비 오는 날이다. 또 하나의 큰 이유는 한국처럼 비 내리기 시작하면 골목마다 들어서는 노점이 없다. 세븐 일레븐에 우산 하나 사러 들어가면 그 가격을 보고 이내 포기하게 된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나성에 내리는 겨울 폭풍이 오늘 밤을 고비로 물러간다고 한다. 아마 이것이 올해 마지막 겨울비가 아닐까 싶다. 그러면 한동안... 아니 한해 내내 J양의 생각대로 뜨거운 캘리포니아 태양이 이 곳을 달굴 것이다. 나성에 내리는 비는 이곳 주민들에게 말 그대로 '달콤한 비'로 통한다. 비를 무척 싫어하는 K군은 5년 넘게 나성에 살다 보니 비 내리는 날이 가장 좋다고 한다. 심지어 결근을 하기도. 건조한 날씨에 그렇게 오래 살다 보면 누구도 비를 싫어하지 않는다. K군은 오늘 출근을 했을까?
사실 비가 오는 날에는 이곳도 다른 곳과 큰 차이가 없다. 길은 막히고, 지하철이나 기차는 뭔가 쿰쿰한 냄새도 더 많이 난다. 배수가 잘 안 되는 지역 특성상 물 폭탄이라도 내리면 도로는 침수로 몸살을 앓는다. 그럼에도 나성 주민들은 비가 좋다. 일 년에 딱 지금 아니면 느낄 수 없는 이 촉촉함. 오늘 나성에서 비즈니스가 가장 잘 되는 곳은 아마 카페가 아닐까 싶다. 나도 오늘 점심은 칼국수보다 향 가득 내려진 드립 커피와 함께 스콘으로 때워보려고 한다. 누군가 또 "LA에도 비가 오나요?"라고 묻는다면, 지금의 이 신선함을 대답으로 대신 전해주고 싶다.
나성 주민의 일상다반사를 전합니다
글/사진 Paul Hw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