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전통시장과 비슷한 그곳, 우리말로 지어 부르다 보니...
"오늘 일 끝나고 몇 시에 어디서 봐요?" J양에게서 문자가 왔다. "중앙시장으로 와" J에게 짧게 문자를 보낸다. "네?" 무척 놀라는 눈치. "퍼플 전철 타고 퍼싱 스퀘어 역에서 내려서 중앙시장으로 오라고" 다그치듯 다시 보내는 문자. J가 보낸 답장은 이랬다. "..."
나성에 살다 보니 몇몇 지명을 한국 이름으로 지어 부르는 경우가 생긴다. 이유는 그곳에 가면 마치 한국에 온 듯한 어떤 정서를 느끼기 때문. 나만 그런 것이라 여기기도 했지만, 생각보다 산타모니카 피어를'나성의 월미도'로 부르는 이들도 많았다. 나성의 월미도..., 만약 당신이 백팩을 메고 무척 기쁜 마음으로 산타모니카 피어에 도착했다면 그 멋진 관람차와 야시장에서 본 듯한 게임, 피어 위로 펼쳐진 노점상의 행렬을 보면서 외칠 것이다. "뭐야 여기 월미도야?"
내가 중앙시장이라고 부른 곳의 정확한 명칭은 다운타운 LA에 자리한 'GRAND CENTRAL MARKET'이다. 다운타운의 명소를 통틀어 이곳을 빼고는 서운하다 할 정도로 그랜드 센트럴 마켓은 나성 주민들의 영육 간의 쉼이 있는 곳. 물론 한인타운을 벗어나면 큰일이 나는 줄 아는 일부 한국인들은 제외다.
중앙시장은 지난 1917년 문을 열었고, 지금도 같은 자리에서 영업 중에 있다. 손가락으로 세보니 벌써 100년이 넘었다. 당시 마켓 주변은 무척 화려했다. 마켓을 내려다보는 언덕을 벙커힐이라고 부르는데, 이곳에는 빅토리안풍 맨션이 가득했다. 마켓을 지나는 브로드웨이길은 이름에서 보듯, 당시 엘에이의 엔터테인먼트의 중심이었다. 지금도 이 길에 자리한 밀리언 달러 극장으로 보러 오는 이들이 많다.
그랜드 센트럴 마켓을 난 '나성 중앙시장'이라고 부른다. 처음엔 앞에 '대'자를 붙이기도 했지만 그냥 '중앙시장'이 입에 더 붙는다. (딱히 해석이 틀린 것 같지도 않다) 중앙시장에 오면 엘에이의 생명이 느껴진다.
1920년대 당시 100여 개의 상점이 자리했다고 하니, 정말 큰 시장임이 분명했다. 1984년에 개발업자 아이라 옐린이 이 마켓은 물론 주변 일대를 사들이면서 역사적 가치를 보존하면서 발전해왔고 2002년에 그가 사망하자 뒤를 이어 에이들 옐린이 지금과 같은 멋진 마켓의 면모를 지니게 만들어오고 있다.
중앙시장에 오면 들리지 않으면 섭섭할 것들이 몇 개 있다. 새로 생기는 브랜드는 언제 없어질지 모르니 이곳에서 언급하지는 않겠다. 중앙시장이 사람들의 시선을 끈 것은 뭐니 뭐니 해도 지난 2016년에 개봉했던 영화 <라라랜드> 때문. 영화 속 미아와 세바스찬이 데이트를 나누며 맛있는 음식을 먹은 식당인 'SARITAS PUPUSERIA'가 이 바로 이 시장 안에 있다. 엘살바도르의 전통 음식인 푸푸사스를 즐길 수 있는 곳으로 영화 속 두 주인공이 앉았던 코너 자리가 인기다.
그랜드 센트럴 마켓은 나에게
나성 중앙시장이 되었다
개인적으로 음식을 먹거나 배를 채우려 중앙시장을 가지 않는다. 힐 스트리트 방향에서 들어오면 바로 만나게 되는 골든 로드 하우스 맥주집은 내가 이곳을 찾는 이유. 로컬 브루잉 맥주에서부터 꽤 괜찮은 맛을 내는 생맥주도 즐길 수 있고, 안주거리도 일품. 게다가 탁 트인 시장 입구에서 사람 구경하며 하루의 일과를 털어놓는 것이 퇴근길 재미 중 하나다. 그래서 J에게 이곳을 오라고 했지만 아마 오지 않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이유는? J는 아직 LA 지하철 타기를 겁낸다. 그래 다음엔 지하철 이야기를 해봐야겠다.
글/사진 Paul Hw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