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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인상 Mar 31. 2018

LA가 좋아 뉴욕이 좋아?

흑과 백, 커피와 티...도저히 고를 수 없는 중간이 없는 선택

뉴욕에 가면 가능하면 C양을 만나고 온다. 별로 바쁜 것도 없는 친구인데, 항상 늘 바쁜척은 혼자 다한다. 그래도 혼자다니는 것보다는 밥이라고 한번 먹자고 달래서 C양을 만났다. 그녀는 늘 나에게 같은 질문을 묻곤 한다. "LA가 좋아 뉴욕이 좋아?". 글쎄, 이 질문은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보다 훨씬 어렵고 중간 지대가 없다. 


 



미국에 살면서 타주에서 온 사람들을 만나다보면 늘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된다. 그들은 늘 LA를 비교하면서 "우리 사는 곳은 이렇지 않은데..., 아 여기는 이렇군요..."라고 말이다. 대부분 자기가 사는 곳에 대한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사실 난 그런 부류의 사람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상당히 대화를 피곤하게 만든다. 


그런데 C양 앞에서 난 굉장히 피곤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야 너 지금 LA 날씨가 얼마나 좋은지 아니?" 체감 온도 영상 1도(한국 온도 기준)를 기록하는 뉴욕의 흐린 날씨를 탓하며 C양에게 먼저 펀치를 날렸다. "너나 많이 살어 그 촌스러운 동네" 돌아오는 대답은 역시 시니컬하다. 


뉴욕에 10년 넘게 산 그녀에게 LA는 사실 그렇게 매력적이지 못한 곳이다. 그녀가 LA를 놀러왔을 때, 머무는 동안 내내 별로 미소를 지은 적이 없다. 그런데 난 뉴욕에 오면 늘 미소가 저절로 지어진다. 내가 좋아하는 LA를 잠시 배반해도 괜찮을 정도로 뉴욕이 좋다. 특히 이번엔 더욱 그렇다. 나성 출신 촌놈의 마음을 쏙 사로잡는 곳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L트레인을 타고 베드포드에 내리면 윌리엄스버그를 찾아갈 수 있다


C양은 나를 '윌리엄스버그'라는 동네로 데리고 갔다. 이 동네는 브루클린에 자리하고 있다. "야 잠깐만, 브루클린 가지 말라고 하던데?" 난 어디서 그 동네가 무척 위험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C양의 째진 눈이 눈동자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변하며 나를 째려본다. "아무렴 다운타운LA보다 더할까?", 비교적 안전하다고 생각하하며 다니는 다운타운LA. 그러나 그녀의 기억 속 다운타운LA는 무척 좋지 않은 경험이 많은 듯하다. "거기 안전하거든?"라고 반문하니, "여기도 그렇거든"라고 답이 온다. 그래 난 닥치고 있는 편이 나았다. 



역 주변 모습. 윌리엄스버그의 첫인상은 안개 낀 날 꼭 와야하는 그런 곳이었다


우리는 태운 L열차는 베드포드(Bedford)역에 섰다. 윌리엄스버그를 가려면 이 역에서 내려야 한다. C양에게는 무서워서 물어보지 못하고, 오는 내내 이 동네에 관해 검색을 해봤다. 음...LA랑 비교해서 설명해보자면, 실버레이크라는 멋쟁이들이 사는 동네가 있는데 여기 집값이 너무 비싸서 요즘 이글락 주변 욕(York) 블러바드로 이사를 많이 했다. 이곳도 소호에 머물던 예술가들이 소호가 너무 비싸지자 견디지 못하고 윌리엄스버그 브릿지를 통해 이스트 리버를 건너 이곳에 정착한 모양. 사정이 이렇다보니 건물 주변마다 성한 곳이 없을 정도로 예술가의 흔적이 진하다. '아 여기 좀 하겠는데' 직감이 딱 온다.



난 지금도 낡은 책 냄새나는 동네 서점이 좋다



역에서 내려 베드포드 길을 따라 걸어본다. "야 잠깐만" 자꾸만 그녀의 발길을 멈추게 만들어야 하는 곳들이 너무나 많다. 프랑스 가정식 식당을 물론, 로컬 빵집, 커피 그리고 내가 젤 좋아하는 독립 서점도 눈길을 끈다. 이제 막 문을 열 준비를 하는 '스푼빌 & 슈가타운 북 셀러'라는 서점에 발길을 멈춰본다. C양은 사실 이런 서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녀가 잠시 길 건너 홀푸드 마켓에 들리는 동안 나는 서점 안을 둘러본다. 1999년에 문을 연 서점은 중고책과 예술하는 사람들이 좋아할만한 책들을 주로 팔고 있었다. 개인이 가지고 있는 책을 사기도 하고, 베드포드 길 외에 몬트로즈라느 곳에도 지점이 있다고 한다. 



차려입은 바리스타도, 멋진 인테리어도 없다. 동네 형들이 내려주는 그런 맛이 있는 블랙 브릭


창 밖에서 C가 빨리 나오라고 재촉이다. "LA에는 이런거 없냐?"라고 핀잔을 준다. 웬지 "LA에도 있어!"라고 답했다가는 조금 유치할 것도 같아 미소로 화답했다. C는 나를 '블랙 브릭' 커피집에 데리고 갔다. 이 집 카푸치노랑 디저트가 참 맛있다고 한다. 유쾌한 바리스타들의 맛있게 커피를 만든다. 꾸물꾸물한 날씨 속에서 카푸치노 한잔을 마시며 C양의 넉두리를 들어주기 시작한다. 


뉴욕에서 사는 것이 쉽지 않다는 C양. LA는 어떠냐고 묻는 질문에 LA도 쉽지 않다고 답하는 나. 평행선 같은 질문과 대답이 반복되며 우리의 대화는 결국 각자가 사는 도시를 떠날 수 없는 것으로 귀결된다. 동부 인텔리젠시아가 서부로 오고, 서부의 블루바틀이 동부로 가는 세상. 미 대륙 '동과 서'의 끝 자락에 살고 있는 우리들을 붙잡고 있는 도시의 매력은 무엇일까. 카페를 나오면서 결국 각자의 삶에서 더 열심히 성공하자는 다짐으로 헤어짐의 서운함을 달랜다. 

윌리엄스버그에서 이스트 강 끝으로 걸어가니 페리 선착장이 나온다


C를 보내고, 윌리엄스버그 브릿지가 보이는 이스트 리버를 향해 걷는다. 사실 맨하탄의 숨막히는 압박은 하루 빨리 LA로 돌아가고 싶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런데 이 곳은 여유가 있고 숨을 쉴 수 있다. 웬지 LA를 버리고 살아볼 수도 있을 것 같은 설레임. 감상에 젖어 있는 때 '까톡 까톡'이 울린다. C가 보낸 것. "촌놈은 촌스러운 곳에서 살아라. 잘가" 밉지 않은 그녀의 작별 인사. 그래 윌리엄스버그는 LA촌놈이 살기엔 너무 멋스럽다. 난 LA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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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Paul Hw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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