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명적인 정체. 디투어를 찾아 요리조리 달려봐도 결국은 똑같다
가끔 LA까지 카풀을 하는 K군이 있다. 이 친구는 LA에 인턴으로 온 혈기 넘치는 20대. 다른 무엇보다 운전을 할 때 그 혈기가 피크를 찍는데, 한국에서 무용담을 늘어 놓으며 LA 프리웨이를 달린다. '자기 사전엔 멈춤이란 없다'며 차가 막히면 프리웨이를 내려 로컬을 찾아 헤매는 K군. 난 매번 "야 그냥 가, 똑같아"라고 그를 달래본다. 물론 소용이 없다. 그는 이 길에서 처세를 더 배워야 한다.
나성의 출근길은 정말 전쟁이다. 그렇지만 한국의 외곽순환도로에 비할 정도는 아니다. 전쟁은 딱 이 동네 사람들 기준에서 전쟁이다. 채용 전문 기관 <로버트 하프>는 미국내 27개 도시 직장인들을 상대로 통근시간을 조사했다고 한다. 결과는 나성이 8위, 평균 53.7분이 걸린다고 한다. 그런데 지역 매체 <OC레지스터>에서는 스트레스 지수에서는 나성/오씨 주민들이 톱을 찍었다고 한다.
나성 직장인들의 평균 출근 시간은 53.7분
스트레스 지수는 탑이라고 한다
사실 이 같은 매체들이 떠들지 않아도, 출근길은 정말 최악이다. 특히 내가 있는 오렌지카운티에서 나성을 가기 위해 타는 5번 프리웨이는 말 그대로 움직이는 주차장이다. 출근길은 그나마 괜찮지만 퇴근길은 정말 화장실을 다녀오고 간식을 챙겨야 할 정도. 그러나 무척 다행인 것은 이 지역 프리웨이는 공짜에다 중간중간 빠지는 길이 상당히 많다. 대부분 이 지역 카운티들이 바둑판 모양의 도로 형태를 갖추다보니 웬만하면 로컬만 타고도 갈 수 있는 곳도 많다. 한국의 외곽순환도로는 지날때마다 통행료를 내고, 딱히 빠져나가기도 애매한 곳들이 많다. 그런 환경에 비하면 이곳은 정말 운전하기에 천국. 하지만 편도 6차선, 왕복 12차선이 그냥 멈춰있는 그대로 컨베이어 벨트처럼 움직이는 라임을 타다보면 말 그래도 '멍'...한 유체이탈이 일어나기도.
그래서 나도 처음엔 구글 지도를 켜고 정말 안 다녀본 로컬도로가 없었다. 막히는 구간이 나타날때면 일단 로컬로 빠져 최단 루트를 골랐고, 어떤 때는 기가막히기 빨리 나성에 도착한 적도 있었다. 이름도 희안한 도로들. 그 중에서도 5번으로 출퇴근하는 이들이라면 한번은 달려봤을 법한 '반디니'길과 '위티어', '워싱턴 블러바드'는 우리들에게 그냥 너무 지극하게 평범한 디투어다. 도시는 또 어떤가? 머리털나고 처음 들려본 헌팅턴파크, 버논, 사우스게이트..., 어떨때는 그 유명한 캄튼을 통해 올라가기도 해봤다. 아마 지역 이웃이라면 다들 고개를 끄덕일 길과 동네들.
보통 아침 7시에 집을 나서, 다운타운 나성에 도착하면 8시30분이 조금 넘는다. 그런데 길이 막히고 짜증이나고 마음이 급해질 때 디투어를 찾게 되고, 그렇게 프리웨이를 내려 요리조리 먹이를 찾아 헤매는 하이에나처럼 빠른길을 찾아간다. 그런데 말이다. 결과는 대체로 더 늦게 도착하는 경우가 많다. 오히려 잦은 신호로 인한 로컬 정체는 프리웨이보다 더 심한 스트레스를 준다. 아주 많이 이런 경우를 겪다보니 배운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정도'를 걷는 것이다.
최첨단 기기가 발달한 요즘은, 스마트폰에서 예상하는 도착시간이 거의 틀리지 않는다. 로컬로 루트를 바꾸면 오히려 시간이 더 걸리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기에 일단 프리웨이에서 일탈해 신나게 달려본다. 하지만 또 막힌다. 그래서 난 대형사고로 프리웨이가 셧다운 되거나, 간혹 폴리스가 막는 경우가 아니라면 가능하면 프리웨이를 쭉 타고 달린다. 발버둥치며 이것저것, 당장 눈에 보이는 것이 더 빨리 갈 수 있다며 택했던 과거의 순간들. 지금 돌아보면 결국 정도를 걸으며, 꾸준함으로 승부를 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일들이 참 많은 것 같다. 미국 속담에 '천천히 서둘러라'라는 말이 있다. 아마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우리 속담과 뜻이 통하는 것 같다. 40대를 눈앞에 두고 있자니, 이런 말들이 참 마음에 와닿는다.
오늘도 난 정도를 달려 다운타운 나성에 도착했다. 이 지역 직장인들의 평균 출근 시간을 훨씬 넘기긴 했지만 결국 이렇게 오는 것이 가장 빠르다. 하지만 K군은 아마 인정할 수 없을지도. 옆에서 답답해하며 "아까 거기서 빠졌으면 좀 더 일찍 왔을거에요"라며 타박을 한다. 물끄러미 그를 바라보며 말한다. "이봐 K군, 우리 카풀 그만할까?", K군의 '하핫'하는 표정이 참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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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Paul Hwang